기록 번외편, 명절연휴에 쓴 짧은 상상일기
※본 일기는 작가의 상상에 기반한 창작물로 특정인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비조합원 A의 일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노조가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노조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됐다.
맨날 싸운다고 뉴스에 나오고, 구호 외치고, 시위하고…
“회사를 왜 그렇게 힘들게 만들까?”
그게 내 솔직한 생각이었다.
노조가 생긴 지 3년이 넘었다지만
위원장은 아직도 해고 상태라고 한다.
솔직히 회사가 노조를 확실히 제압하는 모양새다.
그런데도 “정의”를 말하고, “권리”를 말한다.
나는 그런 걸 들을 때마다 좀 피곤했다.
“그럴 시간에 그냥 일이나 하지…”
이게 내 마음속 한 줄 요약이었다.
윗사람들이 예전엔 말했다.
“노조 가입하면 인사 불이익 있을 수도 있어.”
요즘은 그런 말은 안 하지만,
“노조 때문에 회사 망한다”는 소리는 종종 들린다.
그래서인지, 노조는 왠지 ‘피해야 하는 곳’이 됐다.
마치 가까이하면 안 되는 뜨거운 물건처럼.
그런데 요즘 회사가 이상하다.
물량은 줄고 인력은 안 뽑고 남은 사람들만 더 일을 떠안는다.
야근은 늘었는데 수당은 안 늘고 결국 내 월급은 그대로다.
윗사람은 “다들 힘들어, 버텨야지”만 반복한다.
어느 날, 괜히 화가 났다.
그래서 인터넷에 채용공고를 찾아봤다.
이직을 결심했는데, 결과는 탈락.
게다가 그 사실이 어쩌다 사내에 퍼졌다.
팀장이 “다른 데 지원했대?”라고 웃으며 말했는데
그 웃음이 너무 불편했다.
그날 이후
노조에 가입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뭔가 보이지 않는 차별이 느껴졌다.
‘그래, 이렇게 불합리한 건 말이라도 해야지.’
그런데 그다음 순간, 머릿속에 또 이런 생각이 스쳤다.
‘가입했다가 더 찍히면 어쩌지?’
‘나중에 인사이동이라도 생기면 불이익 받는 거 아냐?’
그렇게 며칠 고민하다가, 결국 가입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또 조용히 일하기로 했다.
적당히 눈치보고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불평하고 적당히 버티는
그게 지금의 나다.
내가 노조에 가입안해도 누군가는 가입해 있다.
그러니 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겠지.
조합원 B의 일기
A를 안다.
회의 시간엔 고개 숙이고, 일이 몰리면 욕 대신 한숨만 쉰다.
“형, 진짜 너무하죠?”
그럴 때마다 나는 묻는다.
“그럼 같이 말하자.”
A는 늘 같은 대답을 한다.
“형은 노조간부니까 괜찮잖아요.”
나는 그 말이 제일 싫다.
마치 권리를 지키는 게 ‘직책 있는 사람의 일’인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웃긴 건
그 ‘괜찮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서
괜찮지 않음을 각오한 조합원들이 있어서
A가 지금 이 회사에서 그나마 ‘괜찮은’ 거다.
A는 말한다.
“내가 가입 안 해도 누군가 하잖아요.”
맞다.
그 누군가가 밤새 교섭장에 있고
공문 쓰고 욕먹고 버티고 결국 해고까지 당했다.
그 ‘누군가’가 있어서 지금은 그나마 연장근로도 편하게 올리고
그 ‘누군가’가 있어서 연차수당도 받는다.
A는 그 사실을 모른다.
아니, 모르는 척 한다.
그래도 나는 A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의 눈치와 두려움은 어쩌면
이 사회가 길러낸 가장 흔한 방어기제일지도 모르니까.
다만 언젠가 A가 알았으면 좋겠다.
지금 그가 편히 숨 쉬는 공기에는 누군가의 싸움이 섞여 있다는 걸.
기록하는 나의 생각
노동조합은 거창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누군가의 ‘적당함’을 대신 견뎌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결국, 버티는 건 노조가 아니라 사람이다.
이 기록은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노동자의 기록이며, 모든 연대를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