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3일 ~ 10월 19일 주간기록
이번 주는 ‘결단’에서 ‘일상’으로 넘어가는 다리였다.
10월 14일, 조합원들의 압도적인 신임 속에 위원장에게 교섭권이 위임되었다.
그 믿음은 단순한 표결의 결과가 아니었다.
“책임을 지워준 것”이 아니라 “함께 버텨보자는 손을 내민 것.”
15일, 그 신임은 현실이 되었고 노동조합은 조건 없는 위임을 통해 ‘신뢰의 시금석’을 세웠다.
16일, 서서울공장의 교섭장은 여전히 답답했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변화의 미세한 온도를 감지했다.
그리고 17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조합 차량 세차, 텀블벅 정산, 주말의 소소한 시간.
버티는 이유가 곧 삶의 이유가 되던 시간이었다.
이번 기록은 ‘신뢰를 결단하고, 사람의 온기로 버티는 한 주’에 대한 이야기다.
싸움의 한가운데서도 인간으로서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시도.
그 작은 온기가 노동조합을 지탱하고 있다.
10월 13일, 책임의 무게, 연대의 온도
아침 8시부터 긴급총회를 시작했다.
전자투표의 장점은 미투표자에게 투표 독려 메시지를 계속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첫 한 시간 만에 투표율 62%.
출근 전 바쁜 시간에도 참여해준 동지들의 마음이 고맙다.
하루 종일 투표율을 지켜보며, 임금교섭의 방향을 다시 고민하게 된다.
이번 투표는 2025년 임금교섭 권한을 위원장에게 위임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총회다.
‘위임’이란 결국 믿음이다.
그 믿음에 부합하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동종업계 계열사는 회사에 교섭을 위임하고 평균 2.7% 인상에 합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조건 없는 위임을 받아도 같은 수준의 인상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조건을 건 위임은 곧장 거부할 것이다.
결국, 대화의 합리성을 만들어가는 싸움이 남는다.
지금까지는 ‘거절에 대한 반발’이었지만,
이제부터는 ‘거절을 넘어선 대안’으로 가야 한다.
가끔씩 텀블벅 출판 프로젝트 현황을 들여다본다.
목표금액에 거의 도달했다.
정말 많은 동지들과 지인들이 함께해주고 있다.
그 마음이 고맙고, 한편으로는 두렵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저녁 무렵, 최종 결과가 나왔다.
투표율 88.18%, 찬성률 98.32%.
압도적인 신임이었다.
결과를 공지하면서 묘한 감정이 몰려왔다.
마치 심해로 잠수한 듯, 숨이 턱 막히고 사방의 수압이 온몸을 짓누르는 느낌.
그만큼 무겁고 진지한 신임이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이건 짐이 아니라 손이다.
동지들은 나에게 책임을 씌운 게 아니라
더 강한 연대의 손을 내밀어준 것이다.
태풍이 몰아쳐도 끊기지 않도록 그 손을 단단히 잡아주었다.
오늘도 우리는 그렇게 손을 맞잡은 채 전진한다.
10월 14일, 대화의 문을 두드릴 준비를 하며
하루가 길었다.
어제 긴급총회의 결과를 토대로 고민이 이어졌다.
내일 있을 조합 월례회의에서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지만
그 전에 대의원들과 간부들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나눴다.
우리 노동조합은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회사는 대화를 열어가고 있고 우리는 그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대화는 신뢰 위에서만 자란다.
신뢰가 쌓이면 비로소 서로를 인정하고
그 인정을 바탕으로 상생의 동력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회사는 노동조합을 여전히 달가워하지 않는다.
사회 전반에 퍼진 부정적 인식이 그 시선을 더욱 굳게 만든다.
노동조합이란 결국
회사가 ‘편의상 해오던 관행’에 제동을 거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는 불편해하고 우리는 그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 불편이 결국 회사의 건강한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를 보여야 한다.
하지만 진정성을 증명한다는 건 언제나 어렵다.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3년 가까이 싸워왔다.
나는 여전히 부당해고 상태로 그 싸움의 한가운데에서 복귀를 기다리고 있다.
명분과 실리는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두 가지를 동시에 얻기는 참 어렵다.
회사는 실리를 택하고 노동조합은 명분을 잃지 않으려 한다.
그 틈에서 우리는 늘 흔들린다.
그래도 믿는다.
오늘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과거의 반복이 아닌 미래를 향한 투자이길.
그렇게 또 치열한 하루가 흘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오늘은 알 수 있었다.
회사가 우리를 완전히 외면하지 않았다는 걸.
어쩌면 아주 조금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10월 15일, 믿음이라는 결단
오늘은 노동조합 월례회의가 있는 날이자
텀블벅 출판 프로젝트의 마감일이다.
아침부터 사무국장님과 함께 조합 사무실을 정리하고 밀린 업무를 빠르게 처리했다.
그 와중에 텀블벅 프로젝트가 106% 달성된 상황을 확인했다.
우리의 기록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함께해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출판 관련 업무를 마무리하고 나니
어느새 월례회의 시간이다.
노동조합 사무실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모두가 깊이 고민했다.
‘지금처럼 버티며 싸울 것인가,
아니면 위임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열 것인가.’
수많은 의견이 오갔고
'신뢰를 얻기 위해 우리가 먼저 줄 수 있는 신뢰는 무엇일까?'
그 질문을 놓고 치열한 토론이 이어졌다.
회의 초반 어두웠던 간부들의 얼굴이 논의가 깊어질수록 조금씩 밝아졌다.
결국,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다.
나는 말없이 회의록을 덮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조건 없는 위임 그리고 조합원의 총의를 담은 공식 의견서로 가겠습니다.”
임금교섭에서 위임이란 곧 신뢰의 시금석이다.
조건을 거는 순간 신뢰는 계산이 된다.
차라리 무조건적인 위임이 더 큰 부담을 줄 것이다.
회사는 스스로 그 무게를 느낄 것이다.
교섭 관련 서적에서 읽은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긴장된 협상일수록, 상대에게 공을 넘겨라. 공을 쥔 쪽이 더 무겁다.”
왜인지 오늘 그 문장이 현실처럼 다가왔다.
간부회의를 마친 뒤 늦은 밤까지 위임장 문구를 다시 손봤다.
그리고 조합원의 총의를 담은 공식 의견서를 완성했다.
이제 결정은 회사의 몫이다.
우리 노동조합은 회사를 신뢰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신뢰에 신뢰로 보답해주길 조용히, 간절히 기도하며 하루를 마쳤다.
10월 16일, 믿음을 거네는 자리
제6차 임금교섭은 사전에 합의한 대로 서서울공장에서 열렸다.
오전 10시, 교섭이 시작됐다.
처음부터 위임장을 바로 건네진 않았다.
먼저 회사의 입장을 다시 한 번 듣고, 여러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여전히 같았다.
“노력하겠다.”
“우리의 입장을 이해해달라.”
말은 부드러웠지만, 가슴 한쪽이 답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음을 주기로 했다.
순간, 영업하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의사결정권자는 아니지만 현장 담당자가
“노력하겠다”는 말을 꺼내면, 그건 대부분 거절의 신호였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시로 현장을 찾고, 결국 본사 임원이나 소장을 만나
계약을 따냈던 기억이 있다.
노사관계는 다르지만, 어쩌면 본질은 같다.
결국 의사결정권자에게 진심과 의지를 보여주는 일.
우리가 회사를 신뢰한다는 그 믿음을 직접 전달하는 일.
그것이 변화를 만들어내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3년 전에도 우리는 회사를 믿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거절이었다.
그때 우리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한 번 회사를 믿어보기로 했다.
이제는 기다릴 차례다.
회사의 대답이 어떤 형태로 돌아오든 그 방향이 우리를 향하길 바랄 뿐이다.
교섭이 끝나고 “11월에는 같이 저녁 한 번 합시다.”
그 말이 오갔다.
짧지만 낯설지 않은 온기였다.
조금씩은 변하고 있는 걸까?
회사도, 노동조합도, 그리고 나 자신도.
10월 17일, 조합의 금요일 오후
퇴근 이후 조합 차량 대여 일정이 잡혀 있었다.
오전에는 어제 임금교섭 결과를 정리해 공지했다.
이후 텀블벅 프로젝트 정산과 인쇄 수량에 대해 논의하고 인쇄 일정도 함께 조율했다.
어느덧 오후 3시.
이제 차량을 점검할 시간이다.
조합 차량은 대여 전 반드시 가득 주유와 세차를 해야 한다.
차량용 청소기를 꺼내 뒷좌석을 한 번 정리하고
주유소로 향했다.
외관이 제법 지저분해 세차도 함께 맡겼다.
세차장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노동조합의 재정이 좀 더 여유롭다면
복지사업도, 지원사업도 더 많이 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아직 녹록지 않다.
그래도 주어진 여건 안에서 최선을 다해보는 수밖에 없다.
세차를 마친 차량을 조합 사무실 앞에 주차해두고 대여 예정인 조합원에게 연락했다.
집이 근처라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좋은 세상이다.
이제는 차 주변에 없어도 스마트폰으로 문을 열어줄 수 있다.
차키를 안쪽에 두고 문을 잠근 뒤 조용히 기도했다.
“아무 사고 없이 잘 다녀오길.”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급격히 피로가 몰려온다.
그래, 금요일 오후가 맞다.
10월 18일~19일, 버티는 이유
아내의 외출로 토요일 점심, 아들과 단둘이 데이트를 했다.
고장 난 안경을 고치고 아들이 좋아하는 국밥집에 들렀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돌며 쇼핑도 하고 아들 취향의 티셔츠 한 벌을 샀다.
그렇게 단순한 하루였지만
이런 소소한 행복을 지키기 위해
나는 버티고 또 버틴다.
노동조합 위원장이기 이전에 나는 한 사람의 가장이다.
내가 갈려나가더라도 버티고 서 있어야 한다.
그게 나의 숙명이다.
다만, 너무 갈려 닳아 없어지지 않도록
다시 채우는 일도 필요하다는 걸
요즘 들어 절실히 깨닫고 있다.
그래서 주말에는 어떻게든
비워두고, 채우고, 숨을 고르려 한다.
그렇게 오늘도 살아간다.
이 기록은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노동자의 기록이며, 모든 연대를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