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7일 ~ 11월 2일 주간기록
10월은 언제나 길고 고단하다. 하지만 올해의 10월은 유난했다.
긴 갈등의 끝자락에서 대화의 문이 열렸고
버티고 써온 기록이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올 준비를 마쳤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불안 속에서도 서로의 손을 잡았고 그 손 위에서 다시 한 번 ‘연대’의 의미를 배웠다.
그렇게 10월은 검수의 달이었고 11월은 드디어 기록이 기적으로 완성된 달이 되었다.
10월 27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매주 월요일은 지난주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사용에 따른 업무일지를 회사에 통보하는 날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공문 형식이 아닌 클라우드 공유 시스템으로 바꾸고 싶다.
인쇄를 하지 않더라도 이 일은 꽤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
엑셀 서식으로 정리해 회사와 실시간으로 공유하면 서로에게 더 효율적일 것이다.
루틴한 행정을 마치고, 결혼을 앞둔 조합원과 통화를 했다.
축하 인사와 함께 노동조합이 준비한 축하 화환과 축의금 전달에 대한 안내도 전했다.
조합원의 경사를 챙길 때면 참 기분이 좋다.
조사(弔事)보다 경사가 더 많은 조직이 되면 좋겠다.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10월의 마지막 주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듣는 노래가 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사실 나는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음악을 틀면 나도 모르게 잠이 드는 편이라서다.
하지만 이 노래만큼은 다르다.
원래는 봄을 표현한 곡이지만
가사를 ‘10월’로 바꾸면 이상하리만큼 지금의 계절과 닮아 있다.
왜일까? 지금은 가을인데
이 노래를 듣고있자니 우리 노동조합에도 이제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난 3년은 혹독했고 잔인했다.
하지만 우리는 연대의 온기로 쓰러지지 않았고
단결의 에너지를 연료 삼아 여기까지 왔다.
이제 동토가 물러나고 따스한 볕이 내리쬐는 대지가 눈앞에 있다.
아직 마음을 놓기엔 이르지만 조심스레 천천히 동지들과 함께 걸어가야겠다.
10월 28일, 완벽과 불안 사이
텀블벅 출판 프로젝트의 최종 원고 확정이 또 미뤄졌다.
검수를 마칠 때마다 이상하게도 새로운 수정사항이 눈에 띈다.
완벽한 책을 후원자들에게 내놓고 싶지만, 현실은 늘 그 마음을 비껴간다.
페이지는 애초 예상했던 250쪽을 훌쩍 넘어 이제는 320쪽에 가까워졌다.
보면 볼수록 고쳐야 할 부분이 나오고
또 고치다 보면 처음의 문장이 더 낫기도 하다.
책이 아니라 미로 같다.
연말 인쇄소 일정이 밀리고 있다는 연락까지 받으니 마음이 더 급해진다.
최소한 오탈자라도 없기를 희망한다.
그저 그 바람 하나로 원고를 다시 열어본다.
특별후원자 명판도 시안을 잡고 명단을 다시 확인했다.
그 중 익명으로 후원한 한 사람.
전체 후원금의 20%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이름을 알 수 없어 명판에는 ‘익명(금액)’만 새기기로 했다.
명단을 바라보다가 문득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 사람들 덕분에 이 기록이 세상에 나올 수 있다.
그 마음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된다.
그나저나 최종안은 언제쯤 완성될까?
완벽을 향한 불안이 오늘도 나를 몰아세운다.
10월 29일, 10월의 기록을 마감하며
노동조합의 한 달을 정리했다.
모레면 10월 활동보고를 배포해야 하기에
항상 2~3일 전쯤에는 미리 내용을 정리하는 편이다.
이번 달은 유난히 길고도 굵직했다.
연휴로 시작했지만, 그 사이에도 쉼은 없었다.
연휴를 이용해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연휴가 끝나자마자 긴급총회를 열어 전자투표를 실시했다.
그리고 마침내 2025년 임금교섭 위임을 결정했다.
회사와의 대화도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아직 조심스럽지만 조합원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잠시 일손을 멈추고
며칠 전 들었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다시 틀었다.
가사보다 멜로디가 마음을 먼저 파고든다.
“이제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구나.”
그 노래를 들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올해 10월은 유난히 길고 아팠던 시간의 끝에서
비로소 ‘노동조합의 봄’을 예감하게 한 달이었다.
10월 30일, 함께 본다는 것
화학연맹 사무처 동지들에게 텀블벅 출판 프로젝트 최종 원고 검수를 부탁했다.
며칠째 원고에 매몰되어 있다 보니 이젠 내가 쓴 글인데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역시나 그들이 잡아낸 오류는 수십 개였다.
심지어 목차와 본문 제목이 불일치하는 부분도 나는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머리가 굳어버린 건지.
눈이 익어버린 건지.
인쇄소 일정은 빠듯하고 출판사에서도 연신 재촉이 온다.
11월 11일 배송 시작을 목표로 협의 중이지만
이대로라면 원고를 제때 넘기기도 버겁다.
그래도 ‘함께 본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인지 알았다.
나 혼자였다면 놓쳤을 수많은 부분들을 동지들이 하나씩 찾아냈다.
조용히 수정사항을 공유하는 그 대화창에 묘하게 위로가 스며들었다.
마음은 급하고 글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덜 완벽해도 괜찮을 것 같다.
혼자가 아니니까.
10월 31일, 검수의 끝에
아침부터 분주했다.
10월 활동보고 소식지를 만들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때 카톡과 메일로 알림이 동시에 왔다.
텀블벅 정산이 완료되었다는 소식.
곧바로 출판사에 제작비, 인쇄비, 배송비를 송금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처음엔 텀블벅 정산이 ‘결제일로부터 7영업일’이라 알고 일정을 짰다.
그런데 알고 보니 프로젝트 마감 다음날부터 7일간 결제가 진행되고
그 마지막 결제일로부터 다시 7영업일 후에 정산이 되는 구조였다.
결국 약속했던 대금이 일주일 늦어졌지만
출판사 대표님은 사정을 듣고 흔쾌히 이해해 주셨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또 좋은 인연으로 이어질 것 같다.
활동보고 안내 문자를 발송하고 다시 최종 원고를 열었다.
출판사 작가님과 늦은 밤까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번 주말까지 한 번만 더 보죠.”
“인쇄 일정은 일단 잡아두고, 마지막까지 꼼꼼히 챙기자구요.”
그 대화로 오늘의 하루가 마무리됐다.
눈이 시리고 손끝이 굳었지만 마음은 묘하게 평온했다.
그렇게 10월은 검수지옥 속에서 그러나 감사와 함께 조용히 끝나갔다.
11월 1일 ~ 11월 2일, 기록이라는 기적
텀블벅 출판 프로젝트의 최종본을 보고 또 보다 보니 주말이 다 지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최종본이 나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출판 자체가 기적인가 싶다.
무엇보다 ‘기록으로서의 의미’를 담고 싶었는데
그게 과연 후원자들의 마음에도 닿을지 걱정이 앞선다.
텍스트가 많아 가독성이 떨어질까 불안하고
표현이 서툴러 감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까 두렵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 책은 최선과 애정이 닿은 결과물이니까.
지난 5월, ‘텀블벅 출판’을 결심했을 때
나는 출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원고 정리도, 인쇄 일정도, 정산도 모두 낯설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왔다.
이건 내 힘이 아니라 동지들의 연대가 만든 결과다.
한 문장, 한 페이지를 함께 붙잡아준 사람들 덕분에
이 기록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또 버티어내며
또 기록하며
오늘도 살아가고 올해도 버텨간다.
이 기록은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노동자의 기록이며, 모든 연대를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