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콩쿨 날짜가 다가왔다. 콩쿨 대비로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연주를 봐주기로 했다. 세현의 연주가 끝나고, 창준의 차례가 되었다. 모두의 시선이 창준에게 집중되자, 창준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피아노를 한 번 눌러보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뛰쳐나갔다.
작은 연습실로 들어간 창준은 속상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뒤를 따라온 세현이 그를 위로했다. 창준은 피아노를 취미로만 하기에는 아까운 천재적인 실력을 가진 아이였다. 취미 동호회 안에도 실력 있는 전문가들이 있었고, 그들이 창준의 피아노를 우연히 듣고는 그가 전문적으로 피아노를 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창준은 부끄럼이 많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했다. 한 사람 이상의 관객은 그에게 버겁기만 했다. 창준은 그 문제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 날 이후, 창준은 며칠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콩쿨 하루 전, 그는 다른 사람처럼 나타났다. 분위기가 밝아지고, 당당해진 듯한 모습이었다. 세현은 창준의 달라진 모습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며칠 사이에 많은 생각이나 일이 있었을 거라 생각할 뿐이었다.
콩쿨 날, 세현은 여전히 창준이 걱정되었다. 콩쿨 무대는 심사위원들에게 실력을 평가받는 날이라, 서로를 경쟁자로 봐야 할 날이지만, 세현은 오직 창준이 잘 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차례를 기다리며 대기실에서 피아노를 쳐 손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창준은 그 자리에 앉아 사람들 앞에서 현란하게 손을 풀었다. 세현은 그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세현이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창준이 그 앞에 서 있었다. 세현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누구세요? 창준이 맞으세요?”
창준은 당황하며 얼버무렸다. 세현은 웃으며 한쪽 팔로 창준의 목을 감아 장난치듯 말했다.
“장난이지.”
그러나 그 순간, 창준이 힘없이 주저앉았다. 세현은 당황하며 창준을 부르지만 대답이 없었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깨를 잡고 흔들며 깨워도 창준은 일어나지 않았다. 세현은 급히 주변을 살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주저앉아 있는 창준을 힐끔 쳐다보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다.
그때, 저 멀리 모자를 쓴 진짜 창준이 나타나 주저앉아 있는 창준의 뒷목을 눌렀다. 그 순간, 주저앉아 있던 창준이 일어났다. 세현은 놀라 뒷걸음을 쳤다. 두 창준은 비밀을 지켜달라고 말했다.
“이건 창준이 너야?”
세현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물었다.
“AI야,”
창준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너무 힘들었어. 그래도 내 연주를 보여주고 싶어서…”
창준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피아노 연주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AI 로봇을 대회에 내보내기로 했다. 사람들 앞에서의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AI가 대신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세현은 그 말을 듣고 놀라움을 넘어 혼란스러웠다.
“근데 이건 공정하지 않아. 콩쿨은 네 실력을 평가하는 자리잖아. AI는 너의 연주를 흉내 낼 뿐이지 네가 아니잖아.”
“그래도… 내 마음은 같아. 나도 이 피아노를 누구보다 진심으로 사랑하잖아.”
창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세현은 창준이 느꼈을 좌절과 두려움을 이해하면서도, AI를 이용해 자신을 대체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 의문이 들었다.
창준의 차례가 되었다. 스텝이 창준을 애타게 불렀다. AI 창준은 무대 위로 올라갔다. 창준은 처진 어깨로 대기실 복도를 벗어났다. 세현은 창준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처음부터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서운함이 남았다.
심사위원들 앞에서 AI 창준은 놀라운 연주를 선보였다. 그러나 세현의 마음속에는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 연주는 누구의 것일까? 창준인가? AI인가? 진짜 창준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세현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자리로 걸어가며 심사위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AI에 대한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창준의 진심과 연주의 아름다움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