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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의 잘못된 고백

by 서리가내린밤



선물 상자를 열자마자, 그는 뒤로 한 발 물러섰다.

상자 속 다이아 반지를 낀 피 묻은 새끼손가락을 보고서였다.

며칠 전부터 집 앞에 선물 상자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처음엔 단순한 장난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선물이라고 할 만한 것 대신, 편지 한 장만 들어 있었다.

편지에는 "언제나 너를 바라보고 있어. 널 사랑해."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고, 현준은 그것이 누군가의 사랑 고백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이번에는 더 이상 편지나 메시지가 아닌 끔찍한 물건이 들어 있었다.

현준은 당황하고 겁에 질렸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손이 떨렸다.

그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상자 속 새끼손가락을 증거로 수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주변에 설치된 CCTV는 며칠 전 누군가에 의해 고의로 파손된 상태였고, 단서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현준은 그날 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계속해서 상자 속 장면이 떠올랐고, 그 손가락의 주인이 누구일지 상상하면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 날, 경찰은 현준의 주변 사람들부터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편지 속 내용이 자신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 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준은 자신을 좋아한다고 했던 여직원들, 그리고 가까운 후배들을 떠올렸다.

그는 일터에서 평소 자신에게 호감을 표현했던 여성들의 손끝까지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런 그의 행동은 곧 주변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비춰졌다.

동료들은 그를 피하기 시작했고, 몇몇은 직접적으로 불쾌함을 표현했다.

현준은 점점 더 강박적으로 행동했다.

매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회사에서도 낯선 시선들이 자신을 주시하는 것 같았다.


며칠 뒤, 오랜 친구 혜성이 현준을 찾아왔다.


"너 요즘 왜 그렇게 예민해 보이냐? 무슨 일 있어?"


현준은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그게..x친 스토커 새끼가 매일 이상한 고백 편지를 보내더니, 이젠 하다못해 피 묻은 새끼손가락을 보냈어.

소름끼치고 무서워죽겠어."


혜성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말했다.


"새끼손가락? 와 소름.. 근데 새끼손가락을 보냈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 거 아닐까? 뭐..약속이라던가.."


"약속? x친. 약속은 무슨. 그리고 의미는 무슨. x나 소름끼칠뿐이지."


현준은 몸서리치며 고개를 저었다.

혜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네가 싫다면 싫은거지..그런데..그 새끼손가락 주인공은 네가 정말 소중했나보다."


현준은 혜성이를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는데 혜성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왼손과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너 그 깁스는뭐냐?" 현준이 물었다.


혜성은 당황한 듯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냥 좀 부딪혔어. 별일 아니야."




며칠 뒤, 혜성은 현준의 집에 또 찾아왔다.

현준은 음식과 술을 내놓았다.

두사람은 함께 게임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대화 중 혜성이 갑자기 며칠 전 있었던 일에 대해 조심스레 물었다.


"그 새끼손가락 말이야. 생각해봤어? 왜 보냈는지.."


현준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걸 생각해서 뭐해. 그냥 소름끼친다니까. X발, 그 얘긴 그만 꺼내. "


혜성은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그럼..누군지 짐작가는 사람은 있어? 모른채로 계속 지낼 수는 없잖아.."


"경찰이 찾고는 있는데 쉽지 않나봐...지문이 뭐 어쨌다나 뭐라나.."


현준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혜성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어딘가 불안정해 보였다.


다음 날, 현준은 경찰서에 가서 형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경찰은 "새끼손가락에서 나온 DNA 결과가 곧 나올 예정"이라며 조금 더 기다려 보라고 했다.

하지만 현준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불안해졌다.

혹시 다음 상자가 또 올까 봐, 매일 집에 들어가기 전 초인종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며칠 뒤, 퇴근 하던 늦은 밤. 도착한 집 앞에는 선물상자가 또 놓여있었다.

새끼손가락이 든 선물상자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러나 현준은 새끼손가락이 든 상자를 열어본 뒤로 예쁘게 포장된 선물상자를 열어보는 것이 두려웠다.

상자를 열어볼까 말까 망설이며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집어 들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형사였다.

형사는 손가락의 DNA 결과를 전해주었다.


"손가락은 장혜성이라는 분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현준은 충격에 빠졌다.

그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선물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마지막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널 좋아했던 시간들은 내 인생의 전부였어. 하지만 내 마음은 끝내 너에게 닿을 수 없었지. 이제 난 너에게 더 이상 짐이 되지 않을 거야. 행복해야 해, 현준아."


현준은 편지 내용을 찍어 형사에게 보내며 말했다.


"혜성이... 자살할 것 같아요. 얼른 혜성이 집으로 가주세요."


현준도 혜성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혜성은 이미 하루 전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그의 왼팔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새끼손가락이 사라진 것을 본 순간, 현준은 모든 힘이 빠져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와 함께했던 10년의 시간이 그의 머릿속을 휘몰아치며 스쳐갔다.

혜성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그가 놓쳤던 신호들이 이제야 선명히 다가왔다.


친구라 믿었던 그가 품었던 마음도, 그가 해왔던 행동도...소름돋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화를 내거나 원망하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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