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많았던 해리는 톱스타가 된 이후부터 한정된 삶을살게 되었다.
외출도 자유롭지 않았고, 남자친구를 사귀는 일도 힘들었다.
집 앞까지 따라오는 데스패치들 덕에 일상과 사생활은 모두 공개되었고, 그 스트레스는 점점 커져만 갔다.
해리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이 점점 더 좁아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스케줄을 소화하며, 더 이상 자신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중에, 인터넷 아바타 세상이 생기고, 해리는 스케줄이 끝난 후 그곳에 빠져들었다.
해리는 아바타가 되어 그곳에서 원하는 삶을 살았다.
현실에서는 누릴 수 없었던 자유를,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그곳에서만큼은 진정한 자신이 되어갔다.
인터넷 세상의 아바타는 해리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였다.
해리가 사람들의 시선에 갇혀 살아간다면, 아바타 제리는 특수부대 출신의 자유롭고 강한 캐릭터로, 어떤 모습의 해리이든 모든 모습을 사랑해주는 팬이었다.
아바타 제리는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고, 해리는 매일 아바타 제리로 살아가는 것을 즐겼다.
그곳에서 아바타 제리는 해리의 팬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존재였고, 해리는 그 속에서 가짜 자신을 만들어가며 행복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도 불편한 감정이 쌓여갔다.
아바타 제리를 통해 해리 자신을 비난하는 팬들이 보였고, 해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하루는, 해리가 아바타 제리로서 그들을 비난하는 팬에게 반격을 했다.
그 결과, 아바타 제리의 주변에 남은 팬들은 떠나갔고, 다른 팬들이 아바타 제리를 왕따시키기 시작했다.
해리는 이 상황이 너무 불편했지만, 아바타의 힘을 빌려 결국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뚜렷하게 느껴졌다.
매일 밤, 그는 습관처럼 아바타 제리에게 말했다.
"난 너밖에 없어..."
그러던 어느 날, 연예 기사와 SNS에 해리의 열애설이 퍼졌다.
해리는 그 기사를 보고 당황했다.
기자들이 뭐라고 써놓았는지, 그 진위는 알 수 없었지만, 광고 몇 개가 취소됐고, 회사는 그에게 계속해서 해명하라고 압박했다.
해리는 더 이상 이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다시 아바타 제리의 세계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바타 제리의 세계에서도 그 문제는 떠올랐다.
해리는 아바타 제리에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연예인이 무슨 죄야. 없는 남자친구도 진짜 있는 것처럼 되는데…”
제리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자신 있게 말했다.
“나 있잖아. 내가 네 남자친구인데.”
“무슨 말이야? 너 혹시…”
“응. 내가 소문 낸 거야. 아무도 너 건들지 못하게 하려고.”
해리는 충격을 받았다.
제리가 자신을 위해 열애설을 퍼뜨린 것이라니.
제리는 가상세계에서 존재하는 캐릭터일 뿐이고, 그런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너가 힘들어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 내가 네 남자친구라면 아무도 네게 해를 끼칠 수 없잖아.”
그 말이 해리에게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가상세계에서의 아바타 제리와 현실 세계의 해리는 너무나 다르다.
그게 그저 가짜일 뿐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런데 그 일이 현실로 번지기 시작했다.
해리는 자신이 가상세계에서 도피해 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지만, 이 일은 자신을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매니저에게 그 상황을 이야기하며 속상한 마음을 토로했다.
"오빠, 나 연애 안 해. 나는 단지 이 현실에서 잠깐 도피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해리는 기자들이 또 몰려왔을까 봐 불안한 마음에 조용히 인터폰을 확인했다.
매니저 오빠였다.
"오빠?"
해리는 아무 의심 없이 문을 열었다.
"왜, 또 무슨 일 터졌어? 지금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야?"
매니저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제리야."
해리는 그 말을 듣고 생각이 멈췄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천천히 생각하며 이해하려 했지만, 도무지 그 말이 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제리라고. 해리야."
매니저는 그동안 해리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가지고 제리의 캐릭터를 재설정하고, 해리를 가지려고 했던 것이다.
해리가 가상세계에 빠져 집 안에서 나오지 않고, 아바타 제리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매니저는 해리 모르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해킹해 아바타 제리를 남자친구로 설정했던 것이다.
그의 변명은 해리를 보호하려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내가 네 남자친구가 되어주면, 아무도 너를 건드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해리는 기가 막힐 뿐이었다.
"왜, 감동이지 않아? 내가 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건데."
매니저는 웃으며 덧붙였다.
해리는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믿었던 사람의 민낯을 보게 된 기분이 치가 떨리도록 더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