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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학생

by 서리가내린밤 Jan 27. 2025



아침부터 학생이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웃 중년 남자는 헐렁한 옷차림에 슬리퍼를 질질 끌며 나와 혀를 찼다. 담배를 입에 물려다 이내 멈추고 학생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 동네 길고양이가 왜 죄다 여기로 모이나 했더니, 네가 그랬구나? 고양이한테 밥 주지 마!”


학생은 고양이들 사이에서 고개를 들고 중년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왜요?”


질문에 당황한 듯했던 남자는 이내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왜긴 왜야! 병균 옮기지, 시끄럽지, 쓰레기 헤집지... 아무튼 사람한테 안 좋은 영향만 끼친다고!”


남자는 더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는 듯 담배를 손에 쥔 채 집으로 들어갔다. 학생은 아무 말 없이 고양이들이 밥 먹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람은 좋은 영향만 끼치는 줄 아나 봐.”


얼마간 동네는 조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에 갑자기 경찰차와 구급차가 들어섰다. 학생은 여느 때처럼 태평하게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주민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504호 아저씨가 죽었대. 부녀회장이 발견하고 신고했대.”

“그 술 취해서 고양이 발로 차던 아저씨? 왜 죽었대? 자살인가?”


주민 몇몇은 학생 쪽을 힐끔거리며 수군댔다.


“저 학생, 뭔가 이상하지 않아? 가까이 가지 말자.”


그들은 고개를 저으며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경찰은 참고인 조사를 위해 학생에게 몇 가지 물었다.


“학생, 504호에 사는 아저씨를 잘 알아요?”

“잘 알지는 않아요.”

“싸운 적은요?”

“싸운 건 아니고요, 아저씨가 고양이한테 밥 주지 말라고 화낸 적은 있죠.”

“주민들 다 싫어하는데 왜 계속 밥을 줬어요?”


학생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럼 아저씨는 왜 밥 먹어요?”


질문을 받은 경찰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사람은 자기가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잖아요. 고양이는 그렇지 않죠. 얘네도 결국 사람이 버린 생명들이잖아요. 제가 챙겨주지 않으면 누가 하겠어요?”


경찰은 고맙다며 학생을 돌려보냈지만, 어딘가 찜찜한 표정을 지웠다.

며칠 뒤, 아파트 부녀회는 고양이 몰살에 대한 동의서를 돌렸다. 이에 반대하는 학생은 아파트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시작했다.


‘말 못 하는 동물은 버려도 됩니까?’

‘존재 자체를 거부당합니다.’

‘고양이 몰살도 살인입니다.’


주민들은 의견이 엇갈렸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이들은 학생을 지지했지만,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들은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원성만 더해갔다. 홀로 싸우던 학생은 결심한 듯 고양이들을 한곳에 모았다.

많은 주민과 행인들이 그 광경을 지켜보는 가운데, 학생은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고양이들에게 밥을 준 이후로 당신들한테 피해 준 적 있나요? 오히려 당신들이 얘네한테 피해를 줬죠. 504호 아저씨는 그러더라고요. ‘사람한테 안 좋은 영향만 끼친다’고. 웃기죠? 동물 버리는 건 사람인데, 싫다고 죽이는 것도 사람인데. 그래서요... 내가 죽였어요. 504호 아저씨.”


순간, 주변은 침묵으로 얼어붙었다. 주민들과 행인들은 학생을 지켜보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수군댔다. 학생은 고양이들에게 다가가 앉으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사는 것도 지겹지 않냐? 우리가 발버둥 쳐도 봐주는 사람 하나 없잖아. 다들 구경하거나 방관만 하지.”


그때였다. 먹이를 먹던 고양이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학생은 미친 듯이 웃었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싫다는데... 우리가 꺼져줄게.”


그리고는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충격에 말을 잃은 사람, 미쳤다며 웃는 사람, 당황하며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속에서 쓰러진 학생의 얼굴엔 기괴한 미소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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