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말, 푸바오의 중국 반환 소식에 중국인 친구가 푸바오 걱정으로 며칠 밤낮으로 연락해 왔다. 그때서야, 나는 푸바오 열풍을 제대로 체감했다. 이 친구는 중국에서 함께 유기견 구조 활동을 했던 동물보호 활동가로, 열악한 중국 동물권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다. 돕고 싶었지만 중국이 판다 반환 요청을 공식적으로 취소한 사례는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뉴스에 제보는 해볼 수 있어. 근데 계약관계가 이미 정해진 일이잖아.”
“그 센터장 회초리로 판다 때리기도 해서 문제가 된 사람이야. 답답하네. 에버랜드가 천국일 텐데.”
결국 푸바오는 돌아갔고, 걱정하던 일들이 현실이 되기도 했다. 아뿔싸 싶었지만, 다행인지 칭다오 판다센터가 이목이 집중된 상황을 의식하고 조심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상대는 중국이다. 이쯤에서 나의 9년 거주 경험에 의한 중국 이야기로 흐르면 끝이 없을 것이다. 다시 푸바오로 돌아오자. 이 경험 이후, 나는 푸바오가 이 정도로 대접받는 국보급 귀요미가 된 이유가 늘 궁금했다. <트렌드 코리아 2025>를 읽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푸바오는 트렌드 코리아가 선정한 2024년 10대 트렌드 상품 중 최상단에 위치했다. AI 스마트폰, 숏폼 음원, 일본 여행, C커머스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말이다. 왜? 사람들은 더 이상 복잡한 것, 해를 끼치는 것에 지쳤기 때문이다. 카페에서커피가 세상은 못 구해도 당신의 하루는 바꿀 수 있다는 문장을 읽고 웃은 기억이 있다. 맞는 말이다. 사람들은 세상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나의 하루가 평안하기를 원한다. 이 바람에딱 맞는 무해한 녀석들의 등장은 앙증맞고 가소로운 존재가 세상은 못 구해도 우리의 마음을 구원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게다가 ‘무해력’은 2025년을 대표할 10대 트렌드 키워드로도 뽑혔다. 옴니보어, 아보하, 페이스테크, 토핑경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 놀랍다. ‘무해력’은 작고 귀엽고 순수한 것에 열광하는 트렌드로 경제 불황과 불안한 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푸바오는 이런 무해력의 대명사다. 동글동글 깜찍한 외모와 느릿하고 엉뚱한 몸짓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보고 있으면 그냥 풉 하고 웃음이 터진다. 어떤 존재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그렇게 미소 짓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푸바오 신드롬은 2025년의 주요 트렌드로 떠오른 '무해력'을 미리 예언한 예고편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통제할 수 없는 삶에 지쳐 있지만 인간의 본능인 ‘돌봄’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열등함을 계속 느껴야 했던 정신적 피로에서 벗어나 ‘내가 우월하다’는 안도감과 통제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해롭지 않고 순수한데 귀엽기까지 한 물체들에 애정을 느끼고 빠져든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 영상을 찾아보는 이유도 같다. 이런 존재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낮추고, 행복할 때 분비되는 옥시토신을 팡팡 터뜨린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면 행복감이 올라가는 것과 같은 효용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열광하는 무언가는 역설적으로 그 공동체에 가장 결핍된 요소라는 책 속 구절이 와닿는다. 푸바오의 인기가 한국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팍팍한 세상, 끝없는 경쟁, 사람들은 외치고 싶다. "이제 좀 덜 상처받고 싶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다."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를 바라는 마음과도 통한다. 무해력은 그저 귀여움을 넘어선 생존 전략이다. 이제 사람도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철철 흐르고 파이팅 넘치는 쪽보다는 있는 듯 없는 듯 편안하게 상대방의 말을 경청해 주는 무해한 사람이 환영받는 세상이 왔다.
2025년에는 귀여움에게 곁을내주시라. 이리저리 긁히고 팍팍한 인생에, 귀염 뽀작한 것 하나 품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씩 번지는 순간이 선물처럼 날아올 것이다. 무해력을 갈망하는 시대, 제2의 푸바오 탄생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