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는 알아도 ‘아보하’는 낯설다. 친구가 끝인사로 ‘아보하’를 건네길래 이 용어가 소개되었다는 <트렌드 코리아 2025>를 읽어 보았다. ‘아보하’는 ‘아주 보통의 하루’의 줄인 말로, <트렌드 코리아 2025>에서 내년을 이끌어갈 주요 키워드 중 하나로 선정됐다. 이는 2018년에 처음 알려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출현과 같은 맥락으로, 변화하는 가치관을 보여주는 새로운 흐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소확행’은 불확실한 미래의 성공을 좇기보다, 일상에서 작고 성취 가능한 행복을 찾으려는 태도를 대변하며 일상어가 되었다. 소확행의 출현 이후, 나도 ‘소소한’이란 단어를 즐겨 사용했다. 소소하고 소박하지만 '소중하다'는 의미가 담긴 듯해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랫동안 인간의 궁극적 목표였던 ‘행복’에 대한 관점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듯하다. 예전에는 행복을 떠올리면 즐겁고 웃음이 가득한 환희 찬 상태가 떠올랐다면 지금은 잔잔하고 편안한 일상이 행복이라 여겨지는 것도 아보하의 탄생과 결이 닮아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5>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무탈하고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자 하는 욕구가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대단히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바라는 심리와 연결된다. 번아웃으로 알려진 소진증후군이 만연한 사회에서 ‘이대로도 괜찮다’는 방어기제가 자연스럽게 작동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런 경향은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최근 2년간 ‘무탈, 평범, 보통’과 같은 단어의 온라인 언급량이 꾸준히 증가했다고 한다. 이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과시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과 일상에 집중하려는 움직임이다. 더 이상 외부의 인정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를 긍정하려는 변화의 모습이다.
책에서는 ‘아보하’가 단순히 개인적인 선택이 아닌, 사회적·경제적 구조를 반영한 결과라고 본다. 젊은 세대가 느끼는 좌절감, 즉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보다 행복해질 것 같지 않다는 인식이 이러한 변화를 이끌었다는 분석은 설득력을 갖는다. 줄곧 Go만을 외치던 한국 사회는 이제 곳곳에서 한계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세대 전반에 걸친 절망감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아보하’는 단순히 이러한 비관적 세태의 반영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대안적 태도로 보여서 긍정적이라 느껴진다. 대단히 행복하지 않아도, 특별한 일이 없어도 하루를 보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의미 있는 위로가 될 수 있다. 거창하지 않지만, 무탈한 하루의 가치는 어쩌면 우리가 잊고 지낸 가장 소중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사히 지나가는 일상이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는 아침부터 한숨이나 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금의 노력이 모여서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너의 눈치를 살핀다>
김설 작가의 이 문장은 무사히 보낸 오늘 하루도 거저 얻어지는 일상이 아니며 나의 숨은 노력이 베인 진정한 행복일 수 있다고 알려준다. 찬란하지 않아도, 삶은 그 흐름 속에서 우리를 다독인다. 우리가 오늘의 작은 숨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면, 그 평온이야말로 가장 빛나는 행복 아닐까. '아보하’가 과연 ‘소확행’을 잇는 또 하나의 메가히트 신조어로 떠오를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늘도 아주 보통으로 하루 잘 보내면 된 것이다. 모두 아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