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낡은 골목을 걷고, 휘트니 미술관을 누비는 경험을 영화 한 편으로 즐길 수 있다면? 리클라이너에 몸을 맡기고, 에드워드 호퍼의 94점 작품을 대형 스크린으로 감상하는 호사를 누릴 기회가 있다. 거기에 세계적인 도슨트들의 해설까지 곁들여 준다고 하니, 눈과 귀가 동시에 행복해지는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에드워드 호퍼>는 단순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이 영화는 ‘비주얼 아트멘터리(Visual Artmentary)’라는 특별한 형식을 통해 우리를 호퍼가 사랑했던 도시 풍경과 그의 시선이 머문 작품들 속으로 안내한다. 예술 여행에 초대된 관객은 단지 그림을 보는 것을 넘어, 그의 세계를 걷고 느끼며 생각하게 된다.
에드워드 호퍼 (1882-1967)
영화는 미국 현대미술의 대표화가의 생전 인터뷰로 문을 연다. 고집스럽고 예민한 모습의 그는 단호히 말한다.
“많은 현대미술가들이 이 말을 들으면 경멸하겠지만... 모든 예술은 내가 보고 느낀 세계를 재현하는 것일 뿐이다.”
괴테의 말을 인용하며 "예술은 나 자신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비평가들이 붙이는 수식어들—“고독한 미국인의 초상”이나 “물질만능주의 시대의 고립된 인간상”—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퉁명스럽게 한 마디를 던질 뿐이다.
"비평가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그냥 나를 표현한 것뿐이다."
그의 직설적이고 삐딱한 태도에 피식 웃음이 난다. 사실, 이 인터뷰를 보기 전까지 나 역시 비평가들의 분석에 따라 "호퍼의 그림은 고립된 도시인의 외로움을 표현했다"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웬 걸. 호퍼 할아버지의 진짜 속마음은 이랬다. "그딴 건 모르겠고, 그냥 혼자 있고 싶은 나를 그렸을 뿐이라니까!"
아침 태양(Morning Sun), 1952
그의 내성적인 성격은 성장 배경과 연관이 있다. 그는 190cm가 넘는 장신으로 인해 학창 시절 따돌림을 경험한 후, 더욱 내향적이게 되었다. 그와 관련해 내면적 고독과 우울증적 경향이 계속 언급되어 왔다.단순히 키만의 문제는 아니고 어릴 적부터 소심하고 여린 성격의 소유자였을 거라고 추측된다. 다행히 어머니의 권유로 그림을 시작했고, 독서광인 아버지 덕분에 예술적 감수성을 키웠다. 뉴욕 예술학교에 입학한 그는 로버트 헨리라는 스승을 만나 예술적 세계를 뒤흔드는 가르침을 받게 된다.
"위대한 화가는 할 말이 있는 사람으로 단순히 사람, 풍경, 가구를 그리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를 표현해야 한다." 로버트 헨리
이 말은 호퍼의 작품 세계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단순히 시각적 감상을 넘어 작품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발견하려는 본능적인 호기심이 솟구친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는 그 풍경 속에 누가 있었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계속해서 "왜?"를 묻게 된다.
와이오밍의 조(Jo in Whoming),1946
호퍼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 사건은 아내 조세핀 니비스턴(조)과의 결혼이었다. 파리에서의 유학 시절은 고립 그 자체였고, 오랜 시간 짝사랑했던 여성과의 이별은 그를 더욱 깊은 고독으로 몰아넣었다. 마흔이 넘도록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생계를 위해 마음에도 없는 삽화를 그리며 버텨야 했다. 그런 그에게 조는 구원 같은 존재였다. 뉴욕 예술학교에서 시작된 인연은 결국 결혼으로 이어졌고, 호퍼는 조의 도움으로 예술가로서의 제2의 삶을 시작했다.
뉴욕 영화관(New York Movie),1938
조는 단순한 뮤즈가 아니었다. 재능 있는 화가였던 그녀는 내성적이고 고지식했던 호퍼와 달리 활발하고 사교적이었다. 그의 그림 속 여성들은 모두 조를 모델로 했으며, 그녀는 모델 이상의 역할을 했다. 주제와 구도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전시를 위해 발로 뛰며 호퍼의 경력을 함께 만들어갔다.
자동판매기(Automat), 1927
하지만 그런 조의 삶은 늘 호퍼의 그늘 아래 있었다. 그녀는 화가로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추구하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었지만, 호퍼는 그녀가 자신의 작업에만 헌신하기를 원했다. 이로 인해 조는 심한 스트레스를 겪었고, 갈등은 그녀의 일기 속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이가 좋을 때는 "Eddy"라고 불렀던 남편을, 갈등이 깊어지면 단지 "E"로 기록했는데, “E”의 기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하니, "아, 호퍼형!"을 부르고 싶다.
두 코미디언(Two Comedians),1965
다행히 그는 생의 마지막 작품 "두 코미디언"을 통해 조를 향한 헌사를 남겼다. 이 그림에서 그는 무대 위에서 손을 맞잡고 인사를 하는 두 사람을 그렸는데, 이는 자신과 조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조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그의 작품 세계를 함께 완성한 동반자였음을 암시한 것이다.
이 영화를 본 뒤, 호퍼의 작품을 ‘고독의 상징’으로만 보긴 어려워진다. 그의 작품 속에는 언제나 조의 흔적과 이야기가 함께 흐르고 있다. 호퍼의 삶과 작품은 조 없이는 완성되지 않았고, 이는 반 고흐와 테오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반 고흐에게 테오가 없었다면, 그의 그림과 유산 역시 남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천재의 고독에만 주목하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조력자가 있다. 에드워드 호퍼에게 있어 조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 이제 그의 작품을 바라볼 때, 그 속에는 고독만이 아닌, 두 사람이 함께 그려낸 이야기들이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Nighthawks,1942
더하여, 내 곁의 조력자들을 생각한다.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완성되는 삶은 없다. 빛나는 순간도, 고독한 시간도, 그들의 격려가 있었다. 누구에게든 자신만의 '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