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같이 어두운 숲 속, 길을 잃은 이들에게 스스로를 길잡이라 자처한 무리가 나타난다. 그들은 앞장서 길을 알려주며 부드러운 말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이 길만이 안전합니다!”
그들의 언어는 달콤하고 설득력 있게 포장되어 있지만, 진실을 왜곡하는 주문에 불과하다. 불의와 불법은 조작의 손길을 거쳐 새로운 얼굴을 얻는다.
“이것은 질서 있는 퇴장을 위한 최선의 조치입니다.”
폭력은 안정이라는 말로 둔갑하고, 책임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마치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의 입구에 새겨진 글귀처럼, 그들의 말은 스스로의 기만을 인정하며 지옥으로 이끈다.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
누구보다 신뢰를 심어주는 태도를 취하지만, 그들의 내면은 제일 먼저 도망칠 길을 계산하고 있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모순의 언어처럼, 이들은 권력에 기대어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낸다.
“전쟁은 평화요, 자유는 예속이며, 무지는 힘이다.” ― 조지 오웰, 1984
이와 같은 언어는 진실을 숨기고 권력을 영속화하는 도구로 변질된다. “질서 있는 퇴진”이라는 반헌법적 논리는 교묘하고, 구호는 은근하다. 하지만, 그 뒤에 숨은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탐욕일 뿐이다. 그것이 바로 부역자의 정체이다.
이들은 언제나 자신의 행동을 “현실적인 선택”으로 합리화한다. “국민을 위한 결정”이라는 외피를 둘러쓰고, 불의를 정당화하며 범법행위를 자행한다. 그러나 그들의 연극이 끝나는 순간, 구해진 것은 오직 그들 자신의 사리사욕임이 드러난다.
그들은 가장 낮은 도덕적 기준을 합리적인 행동이라 치켜세우며, 비판의 목소리를 반국가세력이라 몰아세운다. 그들의 모든 언사는 결국 자기 보신의 명분으로 귀결된다.
“국민과 나라를 위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국민은 일을 맡긴 주권자가 아니라, 선거 때 필요한 숫자이다. 그들이 국민을 섬긴다고 주장할수록, 사실은 자신의 이익을 추종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정의의 파도 앞에서 부역자들은 시대를 늘 등지는 선택을 하며 이속을 챙겨 왔다. 그럴 때마다, 역사는 그들을 묵묵히 기록한다. 질서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안정을 외치며 안락함을 도모한 내란동조자들에게 우리는 물을 것이다.
"그날,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리고 누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사진출처: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