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잠을 깨기 위해 휴대폰부터 연다. 밤에 잠들기 전에도 손에 든 건 역시 휴대폰이다. 그러다 문득, 나를 번쩍 깨우는 단어를 마주했다.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 이름부터 강렬한 ‘브레인 랏(Brain Rot, 뇌부패)’. 이쯤 되니 진지하게 묻게 된다. "내 뇌, 정말 괜찮은 걸까?"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는 2004년부터 매년 한 해를 정의하는 단어를 발표한다. 이 단어들은 그저 유행어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2013년에는 Selfie(셀카)로 SNS 문화의 폭발을 담았고, 2015년에는눈물 흘리는 웃음 이모티콘(Tears of Joy)으로 감정 표현의 변화를 드러냈다. 그리고 2019년 Climate Emergency(기후 비상사태)는 환경 위기를 대변했다.
옥스퍼드 언어학자들은 사용 빈도 및 확산, 시대적 반영, 지속성을 고려해 ‘올해의 단어’ 후보를 선정한다. 이 과정은 전문 분석과 대중 투표를 통해 최종 결정되며, 올해는 6개의 후보가 이름을 올렸다
1.Brain rot(브레인 랏): 뇌부패. 과도한 디지털 콘텐츠 소비로 정신적·지적 능력이 저하되는 현상.
2.Demure (드뮤어): 겸손하고 얌전한 태도. 특히 패션이나 행동에서 강조되는 단정함.
3.Dynamic Pricing (다이나믹 프라이싱): 수요와 공급에 따라 실시간으로 가격이 조정되는 방식.
4.Romantasy (로맨타시): 로맨스와 판타지 장르의 융합.
5.Slop (슬롭): AI를 활용해 대충 만들어진 콘텐츠. 스팸의 사촌
6.Lore (로어): 전통적 지식이나 이야기, 주로 게임, 팬덤, 신화와 관련된 맥락에서 사용.
올해의 위너는? 디지털 홍수 속에서 3만 7천 명이 압도적 지지를 보낸 ‘브레인 랏’이다. 이 단어는 묵직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우리 뇌는 정말 괜찮을까?" 과연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로 남아 있는가?
‘브레인 랏’은 뇌부패라는 번역 그대로 뇌가 썩어가는 현상을 말한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과도한 디지털 콘텐츠 소비이다. 특히 저질 가짜뉴스에 찌든 뇌의 무서움을 우리는 경험한 바 있다. 숏폼이나 릴스를 보며 무의식적으로스크롤을 끊임없이 내리는 동안 뇌는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깊이 생각하는 힘이 약해져 그저 자극만 찾아다니는 수동적 수용자로 전락한다.
특히 이 단어가 유의미한 이유는, 바로 디지털 세상을 주도하는 Z세대와 알파세대가 직접 이 단어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함께한 ‘디지털 네이티브’로 불리는 그들이지만, 이제는 그 편리함 뒤에 숨은 정신 건강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사실 나도 브레인 랏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않았다. 다행히 2024년 하반기,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브런치에 입문하면서 스크린 타임이 확 줄었다. 브런치에서다양한 생각과 사연이 담긴 글을 읽다 보니, 어느새 유튜브 스크롤을 멈춘 지 오래이다. 내가 읽고 싶은 책 이외에도 브런치를 열면 각양각색의 이야기와 생각을 담은 글들을 늘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빼앗겼던 시간을 되찾았다는 만족감이 든다. 내년에도 이 흐름을 이어서 취향의 허들을 넘어,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읽어보고자 한다. 특히 시를 많이 읽어아름다운 시어들로 나의 뇌를 즐겁게 해주고 싶다.
새해에는 화면 대신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내어 보는 게 어떨까. 디지털 콘텐츠가 아닌, 깊이 있는 사유와 따뜻한 대화로 하루를 채우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 뇌는 한결 가벼워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