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오른쪽으로. 네, 거기요.”
철제간판이 매달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당신의 이야기를 써드립니다>
수줍은 열두 글자가 하얀 벽 위에 붙자, 입꼬리가 내 의지와 무관하게 반응했다. 처음이었다. 무언가를 걸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사다리에서 내려온 간판 기사님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물었다.
“그래서 여긴 뭐 하는 데예요? 이런 간판은 처음 보네. 카페도 아닌 것 같고, 책 만들어주는 덴가?”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입까지 차오른 말을 꾹 눌렀다.
“뭐 비슷해요. 돈을 받는 건 아니지만.”
간판만큼 흐리멍덩한 대답이었다. 아저씨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더니, 간판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내가 먼저 시선을 피하며 멋쩍게 웃고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여덟 달의 공백이 냄새로 남아 벽과 바닥을 덮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 부재의 흔적을 지우려 부지런히 중고거래 사이트를 뒤졌다. 텅 빈 공간은 하나씩 물건을 들일 때마다 생기를 되찾았다. 한쪽 벽엔 책장 두 개를 나란히 세워 이전 세입자가 남긴 얼룩을 가렸다. 맞은편 낮은 선반에는 커피포트와 찻잔,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올렸다.
가장 공 들인 건 사무실 중앙에 놓은 둥근 테이블이었다. 앉았을 때, 어색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감을 찾느라 발품을 팔았다. 글을 쓰는 이와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가 마주 앉아 진심을 꺼내놓으려면, 분명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가 필요했다. 진짜의 것이 흘러나오기 위해선, 숨을 틀어쥐고 버틸 수 있는 간격이 필요한 법이다.
나는 의자에 눕듯이 몸을 기댄 채 문을 바라보았다. 어떤 이야기가 저 문을 열고 들어설까. 그 순간마다 나는 어떤 얼굴로 그 말들을 받아 적을까.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들이 공기 중에 떠 있었다. 타이핑 첫 줄을 앞둔 손끝의 긴장처럼, 공간도 숨죽인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십 년 전, 집 대신 8평짜리 이 상가를 분양받았다. 작아도, 내 이름으로 된 벽과 천장이 생겼다는 사실에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 그동안 모아 온 돈을 쏟아붓고, 나도 월세 받는 인생에 올라타보자며 들뜬 마음으로 상가주인이 되었다.
글만 쓰고 살아보고 싶었다. 집필에만 전념하려면, 많진 않아도 매달 들어오는 임대료만큼 든든한 것도 없었다. 외곽이긴 하지만 도로변이라 유동 인구가 있어 입지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몇 해 동안은 별 탈 없이 내 지갑이 되어주었다. 그 월세 덕에 꼬박 삼 년간 공모전에 몰두할 수 있었다. 가끔은 그 돈으로 문학상을 수상한 내 얼굴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상상한 대로 이뤄질 것만 같았던 그 꿈은, 꽃집이 들어서면서 달라졌다. 소박하지만 감성적인 공간을 만들겠다며 너스레를 떨던 젊은 사장은 보증금을 끝까지 다 까먹고 어느 날 기척도 없이 사라졌다.
처음엔 기다렸다. 곧 누군가 들어오겠지. 옆 상가, 또 그 옆 상가까지 빈 채로 방치되는 걸 보고서야 기다림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텅 빈 공간을 바라보는 동안, 통장 잔고도 함께 공허해졌다. 은행 앱을 열면, 숫자보다 허기가 먼저 튀어나왔다. 무얼 써야 할까를 고민하던 자리에서 어떻게 먹고살까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 공간을 비워두는 게 사치라는 걸 인정하는 데 꼬박 여덟 달이 걸렸다. 드디어 나는 결심했다.
내가 이곳에 들어와야겠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논술학원을 해. 초중학생 데리고 책 읽고 글쓰기 시키면 딱이네.”
해수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몇 달 전부터 호시탐탐 이 자리에 네일숍을 차리고 싶어 들썩이던 동생이었다.
“경력에 뭐라고 써? 애들 가르친 적도 없는데.”
“국문과 나왔잖아. 그거 적고, 책 몇 권 썼다고 끼워 넣고.”
허탈한 웃음 사이, 오래 묵은 쓴맛이 번졌다.
“책? 내 이름으로 낸 책은 한 권도 없어.”
“대필이었다고 쓰면 되지.”
그렇다. 나는 대필작가였다. 스무 해 가까이 글을 썼다. 쉬지 않고, 기한을 맞춰, 누군가의 말투를 외워가며. 하지만 단 한 줄도 내 이야기로 남은 문장은 없었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하나로 국문과에 입학했다. 문학 수업은 짜릿했고 장학금도 놓치지 않았다. 3학년 때까지는 그야말로 순탄했다. 대학원 하정선배가 나를 부르기 전까지는.
민주야. 너 방학 때 알바 구했어?
그 여름, 도서관 복도에서 마주친 그녀가 말을 걸었다. 학부 수업 과제를 채점하며 내 글을 눈여겨보게 되었다고 말한 선배였다.
“아뇨, 아직요. 알아보는 중이에요.”
“잘 됐다. 너한테 딱 맞는 일이 있어. 어떤 어르신이 회고록 쓰고 싶어 하시는데, 말로 푸는 걸 잘 못 하셔서. 인터뷰하듯 대화 나누고 초안만 써주면 돼. 교정은 내가 볼 거고, 페이도 괜찮아. 생각보다 훨씬.”
‘생각보다 훨씬’이 메아리쳤다. 나같이 돈 없는 대학생 하나 낚는 일, 참 간단하구나 싶었다.
“글 써보고 싶었는데,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그 선택이, 오래도록 남의 인생에 갇히는 족쇄가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첫 회고록 작업은 예상보다 재미있었다. 질문하고, 듣고, 문장을 다듬는 일. 말의 숨결을 옮겨 적는 듯한 작업이 적성에 맞았다. 의뢰인은 고맙다며 내 손을 꼭 잡았고(따로 봉투하나도 끼워주셨다.) 선배는 네 덕에 작업이 수월했다며 곧 다른 일을 넘겼다.
대기업 임원의 자서전부터 성공한 스타트업 대표의 브랜딩 에세이까지 점점 더 많은 일이 들어왔다. 한 사람의 인생을 그 자신보다 더 정확히 서술하는데 익숙해졌다.
그렇게 열여덟 해를 나는 나 아닌 사람들의 인생을 썼다. 몇몇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서점의 매대를 차지했다. 진열대엔 내가 품었던 이야기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그 어느 표지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친구들이 과외며 아르바이트로 숨 가쁘게 움직일 때, 나는 고고하게 한 자리에 앉아 글을 썼고 돈을 벌었다.
이번만 하고 내 글 써야지.
같은 생각만 공회전하던 세월 끝에, 마흔이 되었다. 그사이 드라마 작가가 된 친구도 있었고, 문예지에 이름을 올린 이들도 있었다. 영화 시나리오로 대박을 터트린 동기의 소식엔 몇 달을 방황해야 했다. 정작 대학 시절 그들의 부러움을 독차지했던 나는 단 한 편의 소설도 세상에 내놓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출발선 위에 발이 묶인 듯 덩그러니 서 있었다. 인생이 다 그렇지 뭐, 담대한 척 중얼거리다가도 이내 쭈그러든 발끝을 내려다보며 한없이 작아졌다.
3년 전 가을, 원고를 넘기며 출판사에 말했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하겠습니다.”
이듬해 봄부터, 공모전에 응모하기 시작했다. 그땐 자신감이 있었다. 아니 자만심이 그득했다.
'지금은 남의 이야기를 써서 그렇지, 내가 쓰기 시작하면 장난 아니게 잘하지 또.'
현실은 전혀 달랐다. 남이 불러주는 말을 조합하고 연결하는 습관에 길들여진 나는 혼자 글을 쓰는 일이 버거웠다. 누군가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끝없이 생겨났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떠올랐지만, 치고 나가는 힘이 없었다. 첫 문장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지우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동안 나는 창작의 힘을 완전히 잃을 걸까. 몇 번의 인터뷰만으로 책 한 권이 뚝딱 완성되는, 타인의 인생을 쓰던 리듬에 깊숙이 젖어 있었다. 계속되는 공모전의 고배와 투고 거절에 답답할 때면, 빈 상가에 나와 커피를 마셨다. 얼마 전부터 이곳을 작업실 겸 카페처럼 사용했다. 새 주인을 기다리며 정처 없이 비어 있던 이 공간처럼, 나도 정체불명의 시간 속에서 자꾸만 나를 잃어갔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메마른 마음 위로 젖어드는 물의 촉감이 싱그러웠다. 후드득 빗소리에 이진여 회장을 인터뷰했던 비 내리던 봄날이 떠올랐다. 홀몸으로 자수성가해 '진여푸드' 프랜차이즈를 일군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회장님이라고 불렀더니 두 손부터 내저었다.
“지금은 나를 그냥 이야기해 주는 할머니로 대해야 말이 술술 나와 불제.”
스스로를 낮추며 분위기를 풀 줄 아는 정 많은 분이었다. 한참을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틈엔가 중심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때, 마음속에 오래 머물던 질문을 꺼냈다.
“할머니, 어머니랑 헤어지실 때 어떤 감정이셨을까요?”
안락의자에 기대어 있던 대표님이 얼굴이 확 달아오르더니,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이고, 겁나게 열불 났제. 며칠을 드러눕다시피 했는디 뭐.”
“가장 먼저 올라온 감정이 뭐였을까요? 막연히 슬펐던 건지, 아니면 화가 났던 건지.”
“속이 그냥 드글드글 끓어 불더라. 이를 악물었지라. 엄마 없이도 기어이 살아낼 거라고. 오기가 뻘겋게 치솟았당께.”
숨이 가빠진 그녀의 말끝을, 창밖의 비가 대신 식혀주는 듯했다. 그녀는 이내 처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웃긴 게 뭔 줄 아냐, 김작가? 결국 그 노친내가 만들어준 떡볶이로 내가 사람 구실을 했당께. 나가 할 줄 아는 게 그거밖에 없었거든. 허벌나게 떡볶이만 쑤고 또 쑤고 했는디, 왜 그랬을까 생각혀보믄... 엄마 품이 그리웠던 게지. 평생 그런 생각일랑 안 해봤는디, 김작가랑 수다 떨다 보니 그래서였구먼 싶네이.”
그날, 이 회장은 자주 눈가를 훔쳤다. 그 쓸쓸한 기운이 빗방울처럼 내 어깨 위로 가만히 내려앉았다.
그 시절 나는, 분명 살아있었다. 대필작가라는 이름이 주눅 들게 했지만, 실은 나는 그 일을 좋아했다. 누군가의 삶을 같은 호흡으로 따라가며 그 결에 꼭 맞는 문장을 길어 올리는 일. 말과 말 사이를 응시하며, 감정을 가장 정확한 언어로 빚어내는 일. 나에게 희열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그 일을 꽤 잘했다.
그제야 알았다. 잘하는 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걸. 이번엔 타인의 이야기를 빌려, 내 이름으로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작은 공간에서, 내가 만든 세계의 문을 처음으로 두드릴 첫 번째 의뢰인을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