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둘째 날, 편집자님의 메일로 하루가 시작됐다. 에세이 분야가 전반적으로 조용한 시기인데, 책이 발매 첫날부터 순위에 올랐다는 소식이었다.
“요즘은 이런 시작이 드물어요. 작가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앞으로도 쭉쭉 힘쓰겠습니다.”
출간 나흘째 새벽 2시 반, 인스타 DM을 받았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널 보낼 용기> 독자입니다. 제 친동생이 일주일 전, 스물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녀는 에두아르 르베의 <자살>을 검색하다가, 알고리즘이 추천한 내 책을 발견했다고 했다. 엄마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해서 읽게 되었다고.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들을 조금이나마 정리할 수 있었고 어머니의 남은 생을 더 아름답게 해드리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님께서 출간하신 목적과는 다르게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제게 이 책은 위로가 되고, 고통을 견디게 하는 용기를 줍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녀에게 마음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이 책의 목적이 당신이 생각하시는 게 맞다고. 상실을 겪은 분들이 이 시련을 지나며 그래도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삶을 붙들기를 바란다고.
브런치에 연재하는 동안 10‧20대 독자들에게서 많은 메시지를 받았고, 그들과 소통해 왔다. 그중 한 명이 책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윤지다. 하지만 첫 독자와의 대화를 통해, 이 책이 자살유가족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누군가의 상실을 위로할 수 있다면, 그 사실만으로 책은 제 자리를 찾은 셈이다.
브런치의 <널 보낼 용기>는 그날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날로 열지 않고서는 그 뒤에 이야기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2월, 한파가 몸도 마음도 얼어 붙이는 어느 날, 나는 출간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 자리에서 편집장님이 제안을 주셨다.
“책의 시작을 윤지와의 만남으로 여는 건 어떨까요?”
탁견이었다. 독자에게도 숨을 주고 책의 주제와도 맞닿은 제안이었다. 그렇게 책은 브런치와 다른 리듬으로 문을 열었다.
브런치가 20화였다면, 책은 30개의 꼭지로 확장되었다. 1부는 상실 이후 한 계절을 건너는 나와 가족의 시간, 2부는 딸이 남긴 신호를 따라 청소년 정신건강과 자살 문제를 다룬 르포르타주, 3부는 다시 살아가려는 여정과 그 속의 사람들을 그렸다. 2부와 3부에는 새로 쓴 에피소드가 열 편이 넘는다.
브런치 초고와 달리, 가장 용기가 필요했던 일은 서진이의 유서를 책 전반에 조금 더 녹여내는 것이었다. (책에서는 유서라는 말조차 쓰지 못했다. 그 사이 나는 또 조금 더 강해진 게 분명하다.) 고통을 다시 불러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연재 당시엔 공개된 플랫폼이라는 이유로 망설였고, 무엇보다 슬픔이 좀처럼 놓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자살자의 40%만이 유서를 남긴다’는 통계를 마주하며 생각이 달라졌다. 서진이가 남긴 긴 마음에 우리는 아이의 진심을 뒤늦게나마 따라갈 수 있었다. 내가 독자라면, 그 마음의 온도가 가장 궁금했을 것이다. 그래서 담았다. 여전히 읽을 때마다 울음이 터지지만, 그것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전달이라 믿었다.
가장 큰 변화는 등장인물이다. 책에는 서진이 외에도, 그녀와 닮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청춘들이 등장한다. 또 나와 같은 상실을 겪은 유가족도 이야기를 건넨다. 그들과의 만남은 내 삶의 방향을 더 또렷하게 보게 했다. 이제는 말하는 사람보다, 들어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책에서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숨기지 않았다. 엄마로서의 흔들림,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고민,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재정립.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서진이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할 때 마음이 움직이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글 속에서 배워갔다. 그 시간은 아이가 내게 다시 살아보라고 건넨 선물이었다.
5개월 동안 32편의 원고를 다듬어 30편으로 추렸다. 그 뒤 두 달은 교정의 시간이었다. 편집자는 목차와 제목, 그리고 구성을 세밀하게 정리하며 감정의 과잉을 덜어냈다. 편집자의 손을 거치며 글은 감정에서 서사로, 개인의 기록에서 이야기로 정돈되었다. ‘나의 편집자님’ 편에서 그녀와의 작업의 즐거움을 따로 쓰고 싶다.
돌이켜보면 브런치는 초고의 저장소였다. 든든했다. 하지만 초고와 책 사이에는 문장 이상의 변화가 있었다. 글이 기록에서 증언이 되었고, 개인의 고백이 사회의 이야기로 확장되었다.
"연재보다 훨씬 더 풍성한 구성에 등장인물들과의 만남에서는 작가님의 부캐, ‘당신의 이야기를 써드립니다’ 속 민주의 모습도 어렴풋이 겹쳐 보였고요. 슬픔을 마주하고 극복해가는 여정에서 늘 크나큰 영감을 얻습니다. 어쩌면 작가님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순례길에 나선 성자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널 보낼 용기>를 엄청 여러 번 읽었잖아요. 그것두 꺽꺽거리면서요... 그런데 책으로 읽으니 완전히 다른 무게로 다가오더라고요. 주변 사람들 이야기와 배경 설명도 더 깊이 담겨 있어서 작가님뿐 아니라 따님, 그리고 가족분들도 더 여러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었어요. "
글벗들이 해준 피드백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널 보낼 용기>는 슬픔의 기록이지만, 그 슬픔 안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브런치에서의 글이 씨앗이었다면, 책은 그 씨앗이 제자리를 찾아 뿌리내린 풍경이다. 슬픔이 남긴 자리에서, 나는 그렇게 다시 자라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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