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앞에서 울음을 보이는 거 좋아할 사람이 있겠냐마는, 나는 유독 서투르다.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는 일도 늘 민망하다. 내 슬픔은 이미 벼락처럼 떨어진 사실이고, 다시 고칠 수 없는 현실이니 우는 건 나 하나로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글을 붙든 데에는 한 가지 질문이 있었다. 우리의 시각이 조금만 달라진다면 지킬 수 있는 생이 더 많지 않을까. 그리고 그 절박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그 이야기를 써야 하는 건 아닐까.
지난주, <톱클래스> 12월호에 실릴 인터뷰를 했다. 질문지가 도착했을 때부터 가슴 한켠이 불규칙하게 쿵쾅거렸다. 원고를 쓰던 시절의 날 것 같은 감각이, 왜인지 다시 가까워져 있었다. 인터뷰 장소로 향하는 길, 눈가가 뜨거워질까 봐 마음을 꽉 조였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한 시간 반 동안 애써 목울대를 누르며 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마지막 질문인 건지 울음이 터져 마지막이 된 건지, 대화의 끝머리에서 참던 숨이 흔들렸다. 책을 낸 지금 심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이었다. 갓 출간한 작가에게 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질문 아닌가.
“이 여정이 어디로 흘러갈지 저도 두렵지만, 그냥 그 흐름에 몸을 맡기려 해요.”
그 말을 내뱉자마자 작은 사각 휴지에 얼굴을 박아야만 했다. 시야를 가렸는데도 옆자리에서도 휴지가 건네지는 자그락거림이 들렸다. 한판 쏟고 나서 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어색하고 얼띤 표정으로 몇 컷을 찍다가 입을 뗐다. “그만 찍으면 안 될까요...?”
기자님의 보정기술에 모든 것을 맡길 뿐이다. 돌아오는 길, 받은 메일함에 또 하나의 인터뷰 제안이 와 있었다. 그날은 조금 더 정갈한 상태로, 이 책을 왜 세상에 내놓았는지 흐리지 않는 언어로 말하고 싶다. 뭔가 답답한 마음에 글벗에서 벗이 된 지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 연재할 때부터 책이 나오면 함께 알려나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그의 말에 다시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는 참 쉬운 사람이다. 쉽게 비관을 떨치고, 또 금세 행복해진다.
집으로 돌아와 슬리퍼를 끌고 남편과 동네 선술집에 갔다. 뜨끈한 전골에 맥주잔을 비우며 오늘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술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터라 금방 취기가 돌았다. 그 덕에 입이 터졌다. 아뿔싸. 그렇게도 자제하던 당스파이크의 고삐는 순식간에 뚫려, 소파에 누워 320kcal 마이쭈 한통을 우적우적 씹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수능을 끝낸 친구 아들에게 치킨 사 먹으러라고 상품권을 보냈다. 아들은 뒷전이고, 친구에게서 무심한 듯 툭 한 줄이 도착했다.
“오늘 인터뷰는 어땠고?”
“쉽진 않더라. 감정적으로”
그 짧은 한 줄에서 귀신같이 내 마음을 읽어내고 답장이 왔다.
“십자가를... 누군가는 져야 하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큰 사명보다 니가 더 중하다.”
참 이상하다. 한참 버거운 날이면 꼭 누군가 나타난다. 거대한 사건으로 기울어진 내 감정의 시소를 주변 사람들이 조금씩 들어 올려왔다. 그렇게 기어코 중심을 회복한다. 소파에 누워 친구의 메시지를 되새기고 있는데, DM 한 통이 도착했다.
“예전에 브런치에서 작가님 글을 보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다가 책이 출간되었다고 해서 바로 책을 구매해서 읽고 이렇게 DM을 보냅니다. 저는 19세 학생입니다. 고1 때 우울증을 심하게 겪고 자해와 자살시도를 여러 번 하다 정신과 병동에 입원도 했었어요...”
서진이처럼 자신을 몰아붙이며 끝없이 높은 기준 위에 서 있던 시절의 이야기가 촘촘하게 적혀 있었다. 다행히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며, 지금은 일상의 작은 기쁨들을 알아보는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작가님 책을 읽고 내가 만약 그때 이 세상을 떠났다면, 엄마는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정말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으로 내가 떠났을 때의 엄마의 마음을 깊이 알 수 있었어요. 그냥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항상 응원합니다, 작가님.”
그 글을 읽는데, 어쩐지 전날 본 또 다른 메시지가 다시 떠올랐다.
“고등학교에 근무 중인 상담교사입니다. 학생을 보내고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글을 읽고 뭐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힘을 얻었습니다. 주변에 학생을 떠나보낸 선생님들께도 공유하겠습니다.”
상담 현장에서 아이들을 마주하는 분에게서 온 메시지라 유난히 마음이 쓰였다. 내 글이 닿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자리이기도 하니까. 감사한 마음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누군가의 아픔을 지켜주는 자리에 있는 분들조차 책을 펼치기 어렵다고 했을 때, 마음이 착잡했어요. 그래서 오늘 선생님 말씀은 큰 위로가 됩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이렇게 손을 내밀어주는 분들 덕분에 계속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렇다. 책 이후의 삶도, 앞으로의 행보도 여전히 떨린다. 그렇지만 혼자라면 내지 못했을 용기를 함께하는 마음들 덕에 이어가고 있다. 거대한 변화가 아니어도, 한 사람씩 마음을 기울여주는 일이 시작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나오고 열흘간, 브런치 작가님들이 보내준 마음도 그랬다. 한 사람의 고통을 모두의 과제로 옮겨 적어준 연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남들 앞에서는 감정을 감추고 싶은 사람임에도, 말하게 되는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덮어둘 수 없는 실존의 상처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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