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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자 I의 북토크 생존기

<널 보낼 용기> 첫 북토크

by 송지영

슬픔으로 데뷔했어도, 내 삶이 항상 저음부만 연주하는 건 아니다. 내 본체는 의외로 웃음을 탐하고, 가능한 한 유쾌한 인간으로 살고 싶다. Why so serious 하기도 하지만 반전미는 늘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런데 말이다. 북토크라는 생경한 장르가 있다. 원고는 필요하면 칼질을 반복해 완성도를 높일 수 있지만, 말은 한번 공중에 뿌려지면 회수 불가다. 그 말들이 어디로 착지할지 모른 채 그걸 한 시간 동안? 그것도 나 혼자? 자발적 은둔형 인간에게는 단숨에 서른 명 앞에 서서 1:30 비율로 에너지를 쏟아내는 일은 제법 큰 결의가 필요한 미션이었다. 신규 퀘스트: 북토크 할 용기.


편집자님이 센스 있게 해결책을 내주셨다. “강연은 줄이고 질문시간을 늘리시죠. 대화 속에서 풍성하게 풀어내시면 돼요." 숨통을 틔우는 전략이었다. 딱 50분만 완주하자 마음먹었다.

그리고 코리언 타임. 5분 늦게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객석을 보니 든든한 브런치 작가님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미 글로 알고 있던 분들이라 처음인데도 친숙했고, 알아보는 즐거움이 컸다. (한 분은 예외였다. 프로필 캐리커처와 실물이 너무 달라 인지 오류가 잠시 왔다. 미모력에.) ‘내 편이 있다’는 감각은 언제나 단단한 버팀목이 된다.



“이 책이 각자의 경험을 거울처럼 비추어 다양한 해석을 낳겠지만, 제가 끝내 말하고 싶었던 건 혹독한 시련을 맞고도 살아가려 애쓴 한 인간의 회복과 존재가 향해야 할 방향이었습니다."


책의 출발점은 분명 서진이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나와 남겨진 이들의 삶의 재건을 쓰고 싶었다. 1부의 결이 워낙 강렬해 진입장벽이 높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의 이야기가 독자에게 가닿을 수 있다고 믿는 이유는 '상실을 겪은 이들이 어떻게 회복해가는가'하는 보편적인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목이 마를 때쯤 시간을 확인했다. 오, 50분. 내가 혼자서 그만큼이나 말했다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바로 마무리로 진입했다. 나는 낭독을 좋아한다. 준비해 간 구절을 꺼내 들었다. 안톤 체홉의 <반냐 아저씨> 한 대목과 함께 내가 책 속에서 좋아하는 구절을 이어 읽었다.


“해가 기우는 길을 걷다가 깨진 보도블록의 틈에서 돋아난 들꽃을 보았다. 한때는 화려한 꽃이 되길 꿈꿨지만, 지금의 나는 콘크리트를 비집고 올라와 밟혀도 굳히지 않는 그 질긴 생명력과 닮아 있다. 눈에 띄지 않는 삶에도 고유한 세계가 있다. 이토록 거친 땅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라나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이미 각자의 우주 안에서 눈부신 존재다. 꽃이어서 피어난 게 아니다. 끝내 견뎌낸 시간이 우리를 꽃으로 만든다."

<널 보낼 용기> 136p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은 용기 어린 고백들이 이어졌다. 책의 추천사를 써준 서울아산병원 김효원 교수님도 함께 답을 건네주셨다. 더 듣고 싶었다. 대화의 결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날이 있는데, 이 날이 그랬다.


그리고 오늘을 특별하게 만든 존재들. 책 속 인물들이 자리를 빛내 주었다. <어떤 만남>, <우리는 살아가는 중이야>의 주인공 윤지와 어머니, <뜻밖의 인연들>의 Q와 그녀의 남편, 연재 시절 ‘시몬스’로 활약하다 책에서는 과감히 삭제된 시몬스, 그리고 추천사를 써주신 김효원 교수님까지.


이어진 사인회에서 한 분씩 만나며 어떤 경로로 책을 읽게 되었는지 듣는 순간들이 귀했다. 모두 각자의 이유가 있었고, 모두 기억에 남았다. 그중 한 여성 독자분이 건네주신 말이 인생은 참 알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일깨워졌다.

"원래 결혼에는 뜻이 없었는데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함께 어려움을 이겨낼 가족이 있어야겠다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

난파선 같다고 여겼던 내 삶도 누군가에게는 방향을 바꿀 영감을 줄 수 있다니. 인생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그분의 말이 그녀 자신을 향한다기보다 나와 가족을 향한 응원처럼 느껴져 고마웠다.

브런치 작가님들 뒷풀이

무사히 사인회까지 마치고 브런치 작가님들과 티타임을 가졌다. 자리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정성 어린 손편지와 마음 담은 선물들로 내 안을 꽈악 채워주셨다.


백미는 아헤브 작가님이 참여하신 작가님들 모두에게 나눠주신 손편지와 낙엽 책갈피 만들기 타임. 다들 코 박고 책갈피를 만드는 청춘들로 돌아갔다.


기반 없는 신참 작가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절반 이상이 이 공동체 덕분이다. ‘책을 써줘서 고맙다’, ‘같이 가자’, ‘할 수 있다’ 같은 말들 덕분에 외줄 같은 길을 넘어지지 않고 걷고 있다. 국문과 출신도, 문예지 경력도, 독서모임 하나 없는 나에게 이곳은 분명 터전이고, 둥지였다. 막강한 브런치 화력 속에서 첫 북토크가 무사히 막을 내렸다. 두 글자로 요약하면 이렇다. 감사.

책갈피에 각인까지 넣어주신 따수분 마음

이 여정의 첫 장을 함께 열어준 모든 분들께 마음을 보낸다. 덕분에 내 내면의 구멍도 조금씩 다시 채워지고 있다. 혹시나 있을 다음 북토크에서는 유머력을 한 단계 올려, 더 환기되고 더 밝은 힐링캠프로 만들고 싶다. 웃길 땐 정확히 웃기고, 깊어질 땐 정확히 깊어지는— 그런 리듬으로 또 만나길 바란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어둡고 축축할 거라는 오래된 편견도 이왕이면 살짝 비틀어보고 싶다.


푸른숲에서 준비해주신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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