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이유

사람들에게 잊힌 이야기

by 닥터플로

가을과 겨울 사이를 잇는 무엇이 있다.


낙엽의 계절, 창 밖을 보다 한숨을 내쉰다


차가운 바람에 떠나보내야 할 것들에 대한 미안함

무언가에 쫓겨 짧은 계절을 누리지 못한 아쉬움


추운 겨울이 지나면 새순이 돋겠지만
지금은 이슬이 낙엽 위에 눈물로 맺히는 시기다


이 쓸쓸함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불현듯 밀려오는 고독함을 이기기 위해,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을 잇는 방법은 무엇일까?


잠시 밀린 일들을 내려놓고,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 순간이 사라지지 않도록

한 줄 한 줄 글을 써내려 간다.


오늘 알고 지내던 한 분이 예전에 내가 쓴 시를 필사했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이유를 묻자, 시를 읽고 그냥 필사하고 싶어 졌다고 했다. 놀라운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밀려왔다. 본인의 글을 누군가 마음에 담아두고 손끝으로 다시 써 내려간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누구에게나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브런치스토리에 첫 번째 게시했던 시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글을 통해 전해진 누군가의 마음이 다시 필사되고, 또 다른 시간으로 이어져 전해지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문자라는 도구를 발명함으로써 얻은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반대로, 얼마 전 읽었던 토드로즈의 『집단착각』에서는 '인간은 사회적 배제를 실제적 고통으로 느낀다.'라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본문 내용은 이렇다.

거절에 대한 우리의 내적 감각은 너무도 예민하게 발달해 있는 나머지, 심지어 그 일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작위적인 상황이라는 걸 분명히 아는 경우에도 고통을 느낀다. 인터넷에서 무시당하거나 배제당하는 기분, 즉 사이버 도편추방은 사람을 만나서 거절당하는 일보다 훨씬 더 쉽게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물리적, 감정적 반응은 거의 유사하다. 문제는 우리가 '좋아요'가 낳는 즉각적인 만족의 세상 속에서 수천여 명의 가상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무시당하는 기분을 느끼기가 너무도 쉬운 세상이 되었다. (토드 로즈의 『집단착각』중에서)


결국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은 관계의 물리적 단절이 아니라, 이해받지 못한다는 감정 때문이 아닐까? 나는 서로를 인정하고, 그 사람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이해하며 소통할 때 우리 사회는 더 유기적이고 긴밀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 또한 종종 생각을 멈추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수고를 회피한다. 토드로즈의 말처럼 ‘좋아요’나 댓글 반응을 의식한 나머지 오히려 그 상황을 피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가을과 겨울 사이를 잇기 위한 글을 쓰고 있다.


필사한 사진을 보내준 독자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며, 이렇게 오늘도 한 페이지를 이어나갑니다. 감사합니다.


다섯 번째 지방신문 기고글(2025.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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