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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받아들이기엔 난 너무어렸다.

The Snowman (1982)

by 지켜보는사람

+영화에 대한 줄거리와 결말을 적어두었습니다+


1990년대 초. 부산.

오전 8시 눈이 번쩍뜨인다. 이후 짧은다리로 화장실로 뛰어가 양치를 하고 고양이세수를 하고 나오니 부엌에선 보글거리는 찌개끓는소리와 함께 구수한 된장냄새가 진동한다. 당시엔 어머니가 어찌나 컸는지 손을뻗어잡을곳은 바지춤정도 밖에 되지않았다. 그렇게 엄마의 바지춤을 잡고 아침부터 나가자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다 당시 나는 새나라의 어린이였고 그날 매우 중요한행사가있었다.

바로 남포동의 '아폴로완구점' 이라는 큰규모의 장난감가게 가는날이기 때문이였다. 나에겐 '아폴로완구점'이 영화 나홀로집에 에서 나오는 '던컨장난감가게'같은곳이였다.

어릴때 이 장난감가게를 꼭 가보고싶었다. 커서알았지만 이건 세트장이였다고.. (오열)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엄마손을 꼭 붙잡고 지하철에 올랐다. 지하철안은 답답했지만 장난감가게를 위해서라면 이정도는 감당할수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남포동 국제시장거리.

엄마는 먼저 볼일이있다며 볼일을 먼저보고 장난감가게를 가자며 나를 설득했다.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엄마가 이끄는데로 따라갔다. 엄마손을 따라간곳은 보수동 책방거리를 지나 자그마한 소극장이있는 영화관이였다. 여기서 나는 처음으로 만화영화를 극장에서보았다.


' The Snowman '





어두운 공간을 싫어했지만 옆엔 엄마가있었고 심지어 만화영화였다. 그리고 그림은 따뜻했다. 엄마손을 꼭잡고 극장안으로 들어갔다. 삼삼오오 사람들이 극장안으로 들어왔고 내또래 아이들도 많이보였다.

그렇게 시간이지난후 조용히 극장안의 불은 꺼지고 스크린은 눈내리는 숲속과 부엉이를 지나 눈에 뒤덮힌 벽돌집을 보여주면서 만화는 시작했다. 뒤로 깔리는 음악은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주었고 이어지는 발랄한음악과함께 집안에서 자고있던 한 아이는 내가되어 눈밭으로 뛰어나가 혼자놀기 시작했다. 이미 나는 그안에서 눈과함께 놀고있었고 빠져들었다. 눈사람도 이쁘게 만들어보았다. 만약 부산에 눈이내리면 꼭 저렇게 만들어봐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저녁먹기전까지 신나게 눈사람을 만들고 아쉬운마음을 뒤로한채 집으로 들어가서 얼어붙은 몸을 녹여본다.

처음만들어본 눈사람은 행여나 어디 사라지지않을까 노심초사 지켜보았다. 잠이 오지않았다. 다시한번지켜보고 또 지켜본다. 그렇게 지켜보다가 깊은 밤이되었고 마지막으로 한번더 보자는 마음으로 슬금슬금 밖으로 나가 눈사람을 지켜보았는데 눈사람이 움직인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고 인사를해준다.

눈사람친구가생겨 너무 기쁜나머지 집도 구경시켜주고 장난감도 보여주고 신나게 놀았다. 그렇게 놀다보니 눈사람은 내손을잡고 데려다줄곳이있다고 하늘을 날아올랐다. 무서웠지만 옆의 눈사람친구는 내손을 꼭 붙잡고있었기에 괜찮았다. 그길에 많은 눈사람친구들을 보았고 눈사람친구들과 함께 도착한곳은 작은 마을.

어? 마을에 산타할아버지가있다 !!! 순간 입밖으로 외치려했으나 간신히 삼켰다.

마을에서 산타와 루돌프 그리고 눈사람들과 신나게 놀고 산타에게 목도리도 선물받았고 더 놀고싶은 마음이컸지만 눈사람친구는 해가 밝아오고있으니 집에 데려다주겠다고했다.

집에 도착한후 눈사람친구와 같이 놀것을 다짐하며 잠이든다. 다음날엔 눈사람친구와 뭐하고놀지 기대가 너무된다.

아침이되었고 황급히 눈사람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하지만 눈사람친구는 녹아 없어져있었고 나는 가슴깊이 올라오는 서운한마음과 슬픈감정이 요동쳐서 눈물이 계속 흘렀다. 영화는 끝이났고 나는 엄마품에안겨 대성통곡을했다. 사라져버린 눈사람이 미웠고 슬펐다.

영화관에 불은 켜지고 슬픈여운은 쉽게 가시지않았다. 이미 장난감은 내마음속에서 사라졌고 아무것도 하고싶지않았다. 연신 엄마는 나를 달래주었고 다음에 눈사람 만들러 꼭 가자고했고 장난감가게 가자고 내손을 다시 꼭잡아주었다.




내가 기억하는 스노우맨 만화는 슬펐다. 어릴때기억은 나이를 먹으면서 잊혀지는경우가많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내 기억속에 박혀있다. 나쁜의미? 아니 그냥 아련한 추억으로 박혀있다. 다큰 어른이된지금 스노우맨을 한번더 시청해보았고 당시에 느꼈던 따뜻한 엄마의손이 다시 느껴져서 너무좋았다.

특히 눈사람친구가 손잡고 하늘을 날때 나오는 ' Walking in the Air' 이라는 노래는 정말 슬프면서도 먹먹했고 내 아련한기억을 더 아련하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너무 좋았다.

아마 한번쯤은 다 들어본 노래일것이다.



러닝타임은 25분으로 짧다. 대사는없고 음악만 잔잔하게 흘러나오고 캐릭터의 행동과 표정으로 모든걸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다.

어린 자녀가있다면 같이 오손도손 시청해보는걸 조심스레 추천해본다. 유튜브에 무료로 풀려있기때문에 '스노우맨 애니메이션' 이라고치면 25분길이의 영상 2개가 나오는데 둘다 똑같은거니 아무거나 봐도 무방하다.

엄마와 아빠는 추억을 먹고 자녀는 감수성을 먹는 만화영화. 스노우맨(1982)






리뷰 적을려고 한번더 봤을때 또 울었다. 슬픈게아닌데 그냥 먹먹함에 눈물이났다. 끄윽끄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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