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을 준비하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고 주위에 말했을 때, 그들로부터 자주 들은 말이 있었다.
"순례길 갈 때 뭐 필요해?"
퇴사와 이사, 그리고 순례길에 필요한 준비물까지 갖추는 것은 꽤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나는 그 에너지를 혼자서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주위에서 도와주는 작은 것들이 나의 결심에 큰 응원이 되었다. 때때로 "인생은 혼자야"라고 시니컬하게 말하곤 했지만, 나는 인정해야 했다.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이, 참으로 소중하고 좋다.
열정만큼이나 뜨거운 햇빛이 가득한 스페인에서 장거리를 걷기 위해서는 햇빛을 가려줄 모자가 필요하다. 등산을 함께 하던 친구는 그런 나를 위해 차양이 가능한 모자를 선물해 주었다. 나를 위해 준비하였다며 카페에서 모자를 전달해 준 그 친구의 따스함이 좋았다. 몸이 흠뻑 젖을 정도로 더우면 어떤가, 햇빛이 아무리 뜨거워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
또 다른 친구는 건강이 최우선이라며 영양제를 잔뜩 보내주었다. 학창 시절 무척 친했던 친구였지만, 성인이 된 후 서로의 바쁜 일상에 밀려 자주 연락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의 건강을 생각해 주는 친구를 보며, 분식집에서 식탁이 넘치도록 음식을 시켰던 그 기쁨이 떠올랐다. 만나지 못한 시간이 오래되어도 그 친구가 주는 안락하고 분식집 냄새가 날 것 같은 대화가 좋았다.
이전 직장 동료들은 나에게 우비를 건네주었다. 혹시 비가 올지 모른다며. 무려 가방까지 수납할 수 있도록 사이즈 조절이 가능하다고. 아무 우비가 아니라 순례길에 필요한 우비를 건네는 그들이 너무 고마웠다. 사실 '직장 동료'라고 하면 대게 그냥 그런 사이로 치부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고민하고 건네준 마음을 그냥 그런 사이로 치부할 수 없었다.
이 글 속에 다 담지 못한 마음들이 참 많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인생은 결코 혼자일 수 없다는 것이다. 나를 돌아보고,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떠나기로 했지만, 그들이 보내준 마음이 없었다면 나는 그 길을 온전히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내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 역시 온전히 설 수 있었다.
순례길 출발을 열흘 앞둔 어느 날, 문득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참 좋았다. 떠나기로 결심했던 마음을 잠시 주저하게 할 만큼, 그들이 썩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