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이름 없는 대상(大賞)

–“수상자는 기록될 수 없습니다”라는 말에, 한 교실의 분노가 번지다

by 지구 외계인


봄비가 흙냄새를 키우던 주말,

남해군 백일장 본선장에서 지안의 원고가 발표됐다.

요람처럼 낮게 깔린 목소리가 그녀의 문장을 읊을 때,

사람들의 시선은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바람이 집을 찾아올 때〉—

토마토 잎에 스민 해풍과,

성 없이 적힌 이름표의 하루를 적은 글이었다.


심사위원장이 무대 위에서

대상 명패를 들어 올렸다.

“중등부 대상, 남해중 3학년 지안.”

떨리는 손으로 상장을 받아드는 순간,

지안은 머리 위에서 박수 소리가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두 엄마는 객석 뒤편에서 숨도 쉬지 못하고 서 있었다.


하루 뒤, 학교 교무실로 날아온 공문은

칭찬이 아닌 삭제였다.

『학생부 기록 불가 — 인적사항 확인 불가로 수상 취소 예정』

교육부 담당자는 전화를 통해

출생신고가 없는 학생은 국가 공모전 통계에

“누락” 표기가 불가하다는 이유를 반복했다.


담임 김 선생은 공문을 접어 책상에 내려놓았다.

종이가 반쯤 구겨지도록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퇴근도 잊은 채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페이스북 로그인 창에

낯선 분노가 타닥거리며 타자를 재촉했다.


“우리 반 지안은 오늘 대상 수상 통보를 취소당했습니다.

이유는 ‘출생신고가 없는 아이는 기록될 수 없다’는 것.

이름 없는 대상을 만드는 건, 우리 사회입니다.”


김 선생은

학생들 현장학습 사진 옆에 그 문장을 올리고

공문 원본 일부를 흐릿하게 첨부했다.

업로드 버튼을 누르자

페이스북 파란색 막대가 느리게 채워졌다.

마치 무언가 깊은 물속을 헤집는 속도로.



지안은 그날 오후 빈 교실에서

김 선생의 노트북 화면을 보았다.

“선생님, 혹시… 문제가 될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돋보기를 들이댄 듯 떨림이 들켰다.


김 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문제가 되는 건,

네 글을 지우려는 사람이지—네가 아니야.”


교실 창문으로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칠판 분필 가루가 마른 파도처럼 흩어졌다.

지안은 시선을 들어

‘3-2’라고 쓰인 교실 문패를 바라봤다.

문패 위엔 아직 어느 기관도 지우지 못한

하얀 페인트 숫자가 선명했다.



저녁 무렵,

학교 앞 골목 해풍 포차에 붙은 작은 TV에서는

지역방송 가십 뉴스가 흘러나왔다.

“출생 미등록 학생 대상 수상 취소 논란…”

끌어올린 자막 아래

김 선생의 페이스북 글이 모자이크로 비쳤고,

“기록이 없다고 존재가 없나?”라는 문장이

노란 헤드라인으로 번졌다.


포차 사장님이 고개를 갸웃하다

두 엄마에게 소주병을 내밀었다.

“TV에 지안 나온 것 봤어요?

이 마을 딸이잖아. 힘내요.”

소주 맛은 쓰지만

말은 의외로 달았다.



밤, 컨테이너 창문을 두드리던 바람은

비닐하우스 향기보다 잉크 냄새를 더 많이 품어왔다.

두 엄마는 지안 졸업장 옆에

백일장 대상 상장을 살포시 다시 펴 놓았다.

교육부가 취소 통보를 한다 한들,

한 장의 종이를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지안은 상장 귀퉁이를 살짝 매만지며

무대 위 심사위원 목소리를 떠올렸다.

대상이라는 단어가 아직 귓가에서 반짝였다.

“내 글은 사람들 귀에 닿았으니까,

이 종이가 안 남아도 남는 거지?”

아이의 미소가 창문보다 먼저 빛을 모았다.


마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글은 이미 바람이 다 가져갔어.

기록은 바람이 할 거야.”


창밖으로 파도 소리가 길게 울렸다.

교육부 공문보다 더 오래,

김 선생의 SNS보다 더 멀리 퍼지는 리듬이었다.

지워지지 않는 문장이

어둠 속에서 여전히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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