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들뜬 거리, 흔들리는 발

“지안 파동”이라 불린 한 주, 그리고 두 엄마를 향한 추방 명령서

by 지구 외계인


오전 내내 교내 방송국 앞은 카메라 삼각대가 엇갈렸다.

〈출생 미등록 대상 취소〉 기사에 붙은 “좋아요” 수는

하루 만에 십만을 넘어섰고

‘지안’ 두 글자는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박혔다.

기자들은 손에 쪽대본을 쥔 채

하교길을 훑었다.


“해풍토마토 소녀”,

“성 없이 대상을 받은 학생”,

헤드라인은 자극적으로 커졌지만

정작 지안은 창문을 닫은 교실에서

시험지 모서리를 접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김 선생은 교단 끝에 서서

블라인드를 내렸다.

“인터뷰는 없다.

오늘은 그냥 국어 시험 보는 날.”



남해 군청으로 팩스 한 장이 도착한 건 오후 셋 시였다.

법무부 출입국사무소 관인 아래

다섯 줄짜리 긴급 확인 공문.

『불법 체류자 신원 노출…

동거 보호자로 추정되는 루시아·마이라 즉시 소재 파악 요청』


군청 직원은 종이를 들고 두 눈을 몇 번이고 깜빡였다.

‘지안 파동’이 불씨가 되어

머지않아 두 엄마의 이름 없는 체류 기록까지

지도 위로 끌어올려지고 있었다.



해 질 무렵,

장 씨 트럭이 하우스 앞에 급히 멈췄다.

배달 박스를 내려두다 말고

장 씨는 두 엄마를 불렀다.

“동네 이장한테 연락이 왔어.

출입국 공무원이 내일 아침 일찍 온다고.”


루시아는 아무 말도 없이

작업용 목장갑만 벗어 주머니에 넣었다.

마이라는 숨을 길게 뱉었다.

토마토 줄기에서 떨어진 노란 꽃가루가

해질녘 빛 사이를 떠돌다 바닥에 가라앉았다.


“지안은?”

“오늘 성당에 더 쉬라고 맡겼어.”

말끝이 닿기도 전에

멀리서 사이렌소리 비슷한 파도음이 크게 울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컨테이너로 향했다.

모퉁이에 붙인 ‘두 칸짜리 집’ 봉투는

여전히 얇았지만, 더욱 쉽게 흔들렸다.



밤,

성당 지하 복도에 남은 불빛을 따라

수녀가 지안의 손을 꼭 잡고 걸어 나왔다.

그 작은 손이 문득 파르르 떨렸다.

“엄마가 걱정돼요.

사람들이 너무 떠들어.”


두 엄마는 골목 끝 어둠 속에서 뛰어왔다.

지안을 안아 들자

아이 머리카락에 성당 제대 초 향이 묻어났다.

“내일 아침, 출입국 단속차가 온대.”

마이라가 조용히 말했다.

지안은 고개를 숙였다.

“또 도망가야 해?”


답 대신

루시아는 아이를 가슴에 더 꼭 끌어안았다.

밤빛이 삼킨 눈물 한 줄기가

딸기 향기 같은 성수를 적셨다.



컨테이너 불을 끄자

하우스 비닐이 바람에 파도처럼 울었다.

벽에 붙은 스티커 이름표 위로

휴대폰 뉴스 알림이 깜빡였다.

〈지안 사례, “출생 등록 특례법” 발의 움직임〉

댓글 창엔 ‘엄마들은 불법인데 왜 보호하냐’는 문장과

‘이 아이만은 지켜야 한다’는 문장이

물결처럼 엇갈렸다.


두 엄마는 해풍 금고를 끌어안듯 앉아 있었다.

자물쇠만큼이나 단단한 침묵 끝에

마이라는 속삭였다.

“내일 새벽, 하우스 뒷길로 빠지면

산길 따라 북쪽 외항으로 나갈 수 있어.

거기 버스는 공무원이 안 세워.”


루시아는 터덜터덜 봉투를 열어

주간 품삯에서 갓 빼낸 만 원짜리를 꺼냈다.

수건에 감싼 채 지안의 주머니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돈보다 네가 먼저야.

흩어질 때를 대비해서.”


지안은 새하얀 수건이 젖어드는 걸 느끼며

묵직한 공기에 처음 맞서 보기로 했다.

“도망만 가지 않을 거예요.

내 글로 우리 집을 지킬 거예요.”


어둠 속,

세 사람 손끝이 맞닿았다.

터질 듯 작아진 봉투가

제자리에서 마치 심장처럼 꿈틀거렸다.

파도 소리가 한참을 밀려왔다 밀려나가고

비닐 지붕이 낮게 떨렸다.


바람 속에서도

지안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내일도, 이름을 지울 수는 없을 거예요.”

그 말이 빛을 잃지 않도록

두 엄마는 동시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비닐하우스 너머

새벽별 같은 점 하나가

천천히 동쪽 창문에 걸리기 시작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