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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사력 Sep 18. 2024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

(괴승 라스푸틴의 국정농단과 예언)

로마노프 왕조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는 1613년 즉위한 제1대 차르 미하일 표도로비치로부터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에 이르기까지 304년간 러시아를 통치한 왕조를 말한다.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註)으로 니콜라이 2세가 1917년 3월 15일 하야함으로써 로마노프 왕조가 끝이 났다. 


(註) 당시 러시아력(율리우스력)으로 1917년 2월 23~3월 3일에 발생해 2월 혁명이라고 명칭하나, 현재의 그레고리력과는 13일의 차이가 있어, 실제는 1917년 3월 8일~16일에 발생했다. 


(러시아 궁전)

     

마지막 황제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는 니콜라이 2세(1868~1918)로, 그는 1894년 즉위해 1917년까지 23년간 재위했다. 로마노프 왕조가 몰락한 요인으로는 여러 견해가 있는데 글쓴이는 두 가지 사건을 꼽는다. 첫 번째는 괴승이라 불리는 라스푸틴의 국정 농단에 따른 폐해와, 두 번째는 러시아 민중 혁명의 거센 물결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며 러시아를 위협하는 불안한 정세 속에 황제인 니콜라이 2세에게 연이어 악재가 발생한다. 1904년 2월에 시작돼 1905년 9월 충격적인 패배로 끝난 러·일 전쟁과 1905년 1월 노동자의 법적 보호, 기본적 인권의 확립 등을 요구하며 평화적으로 시위하던 노동자를 무력으로 진압한 피의 일요일 사건 발생이다. 이로 인해 민심이 니콜라이 2세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다. 이때 니콜라이 2세가 혼란한 정국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데는 아들인 황태자 알렉세이의 건강 문제도 일정 부분 작용했다. 어렵게 얻은 유일한 아들 황태자가 황후 알렉산드라의 혈통(註)의 유전자인 피가 멈추지 않는 혈우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니콜라이 2세는 알렉세이가 후계자로서 자격이 위협받을까 우려돼 아들의 혈우병을 비밀로 감췄다.


(註) 황후 알렉산드라의 외조모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다. 빅토리아 여왕이 혈우병 유전 보인자로, 그녀의 후손인 알렉산드라에게도 혈우병 유전자가 전해졌다.    


괴승 라스푸틴의 출현

이때 니콜라이 2세 앞에 홀연히 등장한 인물이 바로 라스푸틴(1869~1916)이다. 라스푸틴은 시베리아 출신의 농민이자 글도 모르는 문맹으로, 젊은 시절에는 고향에서 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부랑배였다. 결국 고향에서 쫓겨난 라스푸틴은 당시 러시아에 존재하던 이단 종파 흘리스티(죄를 지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교리)에 가입해 운명의 전환점을 맞았다. 이때 라스푸틴은 자신이 영적 존재라고 확신했고, 아울러 성모 마리아의 계시를 받아 신비한 능력을 얻었다고 선언했다. 이후 라스푸틴은 러시아 정교회를 찾아가 수도승이 됐고, 점차 예언과 치유 능력이 있다는 소문이 주변에 퍼지면서 명성을 얻게 됐다. 라스푸틴은 자신을 “신과 교감하는 성자로 질병을 치유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언하여 불행을 쫓아낼 수 있다”라고 설파했다. 라스푸틴이 치유의 기적을 행한다는 소문이 퍼지며 귀족과 황족 사회에서도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됐고, 결국 니콜라이 2세의 부름까지 받았다.


  

황태자 혈우병 치료   

니콜라이 2세는 라스푸틴을 만나고 "우리가 찾던 바로 그 성자"라며 크게 반겼고, 기밀인 황태자의 혈우병까지 라스푸틴에게 털어놓았다. 이후 라스푸틴은 황태자가 아플 때마다 입궁했고, 그가 기도하고 나서는 신기하게도 황태자의 출혈이 멈추거나 위독한 상태에서 호전됐다. 라스푸틴이 어떤 방법으로 황태자를 치료했는지는 미스터리다. 황태자는 당시 주치의가 처방한 혈우병 환자에게 치명적인 아스피린을 복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라스푸틴은 별다른 의학적 지식 없이 아스피린 복용을 멈추게 했는데, 이 덕분에 황태자의 혈우병이 자연적으로 호전되었다고도 한다. 기막힌 우연이 아닐 수 없다.

     

부패와 추문 

라스푸틴은 황태자를 구한 생명의 은인으로서 황실 일가를 정신적으로 사로잡았다. 이후 라스푸틴은 수시로 황궁을 드나들며 엄청난 권세를 누리게 됐다. 라스푸틴에게 아첨하는 사람들이 뇌물을 바치고 청탁을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라스푸틴이 뇌물을 받고 자신이 사인한 증서 하나만 넘겨주면 의뢰한 일들이 단숨에 해결될 정도였다. 라스푸틴은 자신의 명성과 권력을 이용해 수많은 여성들을 추종자로 거느리며 문란한 관계를 맺기도 했는데, 심지어 황후까지 추문에 포함됐다. 알렉산드라 황후가 라스푸틴에게 보낸 연서에 가까운 편지가 언론에 공개된 것은 황실의 권위를 추락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역사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당시 황제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던 라스푸틴이 황후와 실제로 부적절한 관계를 맺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추론하지만, 당시에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그 추문을 사실로 여겼다는 것이다. 라스푸틴의 부패와 문란한 관계가 점차 드러나면서 러시아 언론과 종교계 등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니콜라이 2세는 이를 수수방관했다. 라스푸틴이 황실의 비밀인 황태자의 혈우병을 자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스푸틴의 국정 농단 

라스푸틴에게 휘둘리던 황실에게 더욱 치명타가 된 사건은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다. 라스푸틴은 니콜라이 2세에게 황제가 참전하여 직접 전쟁터에 나서도록 부추겼다. “폐하께서 군 통수권을 장악하면 모든 전선에서 승리를 알리는 종이 울릴 것”이라는 라스푸틴의 예언에 자신감이 생긴 니콜라이 2세는 전선으로 떠났고, 그 사이 국정은 라스푸틴이 완전히 장악했다. 라스푸틴은 자신에게 완전히 세뇌당한 황후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며 무소불위의 전횡을 일삼았다. 황제 부부가 라스푸틴의 하인과 애인이 됐다며 조롱하는 만평이 나올 만큼 황실에 대한 평가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러시아 국민들은 라스푸틴과 황후가 러시아 제국을 망치고 있다며 분노의 여론을 높이고 있었다. 


라스푸틴 암살과 혁명 

황족인 펠릭스 유수포프 공작은 라스푸틴의 전횡을 막기 위해 암살을 계획한다. 황족들은 라스푸틴을 파티에 초대해 독살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놀랍게도 라스푸틴은 청산가리가 든 음식을 먹고도 죽지 않았다. 심지어 총탄을 두 방이나 맞고도 쓰러지지 않는 불사신 같은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세 번째 총알을 머리에 맞고서야 겨우 숨을 거뒀다고 한다. 황족들은 살해한 라스푸틴의 손과 발을 묶어 강물에 던졌다. 러시아 제국 황실을 뒤흔들었던 라스푸틴은 1916년 12월에 결국 비참한 시체로 발견된다. 이후 황제 부부는 라스푸틴의 사망에 실의에 빠졌다. 라스푸틴이 세상을 떠난 후 불과 3개월 뒤, 러시아는 혁명의 불길이 치솟았다. 오랜 전쟁과 굶주림에 지친 국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위 진압을 명령받은 군인들까지 발포를 거부하고 오히려 시위대에 합류하며 통제 불능 상태가 되자, 결국 1917년 3월 15일 니콜라이 2세는 성명서를 내고 모든 권력을 내려놓았다. 이로써 러시아를 304년 통치한 로마노프 왕조가 끝을 맺었다.  


황가의 몰살 

로마노프 왕조의 종식뿐만 아니라 황제 일가는 끝내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1917년 10월(현재 기준 11월)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는 혁명세력(적군)과 반혁명세력(백군)의 내전 상태에 휩쓸렸다. 혁명세력은 황제 일가가 반혁명세력의 구심점이 될 것을 우려해 모두 처형키로 결정한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러시아 제국의 로마노프 왕조의 황제 일가 7명은 1918년 7월 17일, 한밤중에 지하실로 끌려 내려가 몰살당하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


(1918년 7월, 몰살당한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 

      

라스푸틴의 예언  

라스푸틴은 죽기 전에 황제 앞으로 이런 편지를 썼다고 한다. 라스푸틴은 일부 황족들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며 "제가 러시아 농민들의 손에 죽는다면 폐하는 걱정치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제가 폐하의 친족들에게 죽는다면 폐하의 자녀 어느 누구도 두 해 넘게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아울러 러시아 제국의 황제이신 폐하는 러시아 백성들의 손에 죽을 것입니다"라는 소름 끼치는 예언을 남겼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라스푸틴의 예언이 모두 현실이 됐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이를 라스푸틴의 정치적 술수였다고 평가한다. 즉 정적들이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것을 이미 눈치채고 있던 라스푸틴이 황제의 가족을 언급하며 자신을 지켜달라는 협박성 탄원서를 보낸 것이 우연히 맞아떨어졌을 뿐이라고 평가한다. 


에필로그 

역사의 흐름이나 교훈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국가나 지도자는 항상 비참한 결말을 피하지 못한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비선 실세인 라스푸틴의 국정 농단이 왕조의 비참한 몰락에 영향을 끼친 사례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모두가 곱씹어 볼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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