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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시나 Oct 22. 2024

그럴 수도 있지

아니어도 말고

그럴 수도 있지. 아니어도 말고. 이 생각을 할 수 있기까지 나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나는 주로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편이었으니까.


한 예로, 나의 어렸을 때 별명은 왜요였다. 허구한 날 왜 그런지 따져 물었다. 더욱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이 어쩔 수 없다였을 정도니 나는 세상의 모든 당연한 것이 불편한 청춘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불의를 못 참는 성격에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만 하는 탓에 무수히 많고 많은 사건 사고에 휩쓸려야만 했다.


그렇게 어렸을 때 나를 지배했던 왜요 라는 질문은 나의 일생동안 온 세상을 관통했다.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도대체 왜 그런지 이유를 알고 싶고 알아야만 했다. 그래서 남들은 조용히 넘어갈 일도 이의를 제기했다. 왜, 어째서 그런 것인지 따져 물었다.


그러니 당연히 세상의 모난 돌이었고 고로 정 맞았다. 그래도 제법 논리 있게 따져드는 편이어서 앞에서는 눈치정도만 았고 뒤에서 많이 조리돌림 당했다. 누가 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더라고 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종종 들렸고 그걸 전해주는 이도 더러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일일이 대응하지는 않았다. 속으론 무척 신경 쓰고 분노하면서도 일단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척했다. 그럼, 나를 대신해 몇 배로 화내주고 맞서 주는 이가 분개해 쥤다. 그리하여 나는 본의 아니게 자신과 빠와 까를 모두 미치게 하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거침없이, 거칠 것 없다는 듯이.


그러니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의 소신과 주관이 뚜렷하고 자아가 견고한 인간이지만 한편으론 불안했다.

나도 나 자신이 물 흐르듯 흐르는 유려한 인간이고 싶었으나 자신이 코렐 국그릇 만한 인간인 것 또한 누구보다

 알고 있었으므로 여간해선 잘 안 깨지지만 언젠가 제대로 깨 온 파편이 사방에 흩날릴 것이 두려웠.


그래서 생각했다.

고민했다. 걱정했다.

그리고 우연히도 저 말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럴 수도 있지, 아니어도 어때


아,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던 것일까.

아니었다. 저 말은 중학생 시절 어린 나의 일기장에 쓰여있던 말이었다. 나는 어린 날의 엇갈린 첫사랑 앞에, 밀려 써버린 시험지의 답안란 끝에 저 말을 새겨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잊어버린 것이다. 나는 왜요 라고 세상을 향해 질문하면서도 한 편으론 저렇게 자신을 다독일 줄 아는 아이였으나 닥쳐온 세상의 파도 맞서는 어른이 되어가면서부터는 자신을 돌아보진 않고 허공을 향해 외치며 저항 해온 것이었다.


어리석었다.


나는 이제 내가 잊고 있었던

그럴 수도 있지, 아니어도 어때를

종종 주문처럼 내게 되뇐다.


그러면 세상과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외침 대신 평온과 여유가 잠시 찾아온다. 자그마하게 따스한 봄의 기운을 느끼

나는 오늘 밤에도 당신과 내게 말해 준다.


그럴 수도 있다.

아니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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