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필요치 않은 깊이에 대한 기피
나는 명료한 게 좋다. 나 자신이 단순하니까, 아무래도 문장도 단순한 게 좋다. 어려운 말이나 고상한 표현을 새롭게 배우는 것도 좋아하긴 하지만 내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막상 잘 써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아무렇게나 말해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좋고, 이렇게 저렇게 읽으나 명쾌하게 전달되는 글이 좋다.
예전에 글을 배웠을 때, 한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좋은 글은 누가 읽어도 좋은 글이다. 그러나 정말 좋은 글은 누군가를 쫓은 글이 아니라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 바로 좋은 글이다.라고. 나는 그래서 글을 쓸 때 종종 내 생각을 했다. 자신을 들여다봤다. 특히 오랜만에 글쓰기를 결심했을 때 나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 무엇일까, 어떤 주제로 쓸까 고민을 많이 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중요한 것은 주제가 아니라 목적 이란 것이다. 무엇을 위해 쓰는가.
그래서 나는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를 생각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다짐한 게 있다면, 최대한 내 생각을 진솔하게 표현하자라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일부러 만들어 낸 있어 보이는 문장과 내 것 이 아닌 표현은 제했다. 비록 내 글이 소박해 보일지라도 나는 알 수 없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말은 나를 포장할 순 있었으나 그것은 진짜 내가 아니니까. 화려한 레이스와 보석이 달린 글은 연약한 내 피부와 마음을 스치고 불편하게 하여 흔적을 남겼다. 그것이 과연 나에게만 그럴까. 아니다. 내게 어색한 글은 타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전달된다.
사실, 한 때는 이와 반대로 생각한 적도 있었다. 겉멋이 든 학창 시절이 특히 그 절정의 시기였다. 나는 유명한 논술학원을 다니며 매주 첨삭 지도를 받았다. 시뻘건 줄이 죽죽 그어진 원고지 속의 내가 쓴 문장들을 볼 때면 그렇게 얄팍해 보일 수가 없었다. 나도 깊은 사유와 고뇌의 흔적이 묻어난 멋진 문장을 쓰고 싶었다. 남다르게 독창적이고 탁월하며 독보적인 아이디어로 단 번에 멋진 글을 써내려 가고 싶었다. 그 무렵에는 일필휘지 같은 단어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래서 많은 책을 읽고, 명언들을 외우고, 그럴듯한 단어들을 섞어서 나열하며 포장하고 흉내 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나는 그때의 내 글들을 다시 들여다보지 못한다.
부끄러워서. 그것은 내 생각이 온전히 담긴 나만의 글조차 아니었으므로. 그러던 때에, 파울로 코엘료의 깊이에의 강요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은 내게 많은 것을 일깨웠다. 무엇보다도 나는 누가 강요한 적조차 없는 깊이에 대해 자기 스스로 강요하고 있었던 어리석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필요치 않은 깊이를 기피한다. 물론, 깊은 고뇌가 필요하고 깊이 있는 생각이 중요한 순간에는 깊게 생각하고 고뇌하여 써내려 나간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때에, 특히 단순히 멋을 위해, 타인의 시각을 고려해서, 나의 정서적 만족을 위해서 쓸데없는 수사로 내 생각에 깊이를 더하려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않는다.
나 혼자 써서 보는 글이 아니라, 타인에게 글을 쓸 때면 아직도 종종 착각에 빠진다. 그래도 내 진심이 전달되려면 무언가 말을 더 보태는 게 좋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중언부언하게 된다. 특히, 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글을 쓰며 타인에게도 위로와 공감이 되었으면 한다는 욕심이 섞인 바람 속에서 마음이 많이 흔들린다.
내 생각을 진솔하게 전달하려다가 혹여나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거나 트라우마를 건드리진 않을까 걱정도 많이 한다. 그러나, 나는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진심이 담긴 진솔함이라고 생각한다. 그 진솔함을 깨끗하게 정돈하여 정제하는 과정에서 마음에 담은 말의 불순물이 제거되고 떠 있는 부유물 같은 감정들은 거둬진다고 믿는다.
그렇게 순수하게 글을 쓰려 노력하며, 오늘 이 새벽에도 내 마음속에 따스한 봄이 찾아옴을 조금 느낀다.
그리고 내게 찾아온 이 따스함이 당신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