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수많은 나 중에

있다가 생각을 잇다가

나는 늘 조금씩 변했다. 대하는 사람마다, 서있는 장소마다 조금씩 달랐다. 어떤 곳에서는 먼저 다가가 즐겁게 얘기했고 어떤 자리에서는 조용히 경청했다. 더러는 내가 밝고 명랑하다 했고 더러는 내게 밝은 모습 뒤에 숨기고 있는 아픔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보기보다 소심하다고 했고 생각보다 대범하다고 했다.

나는 나중에는 수많은 나 중에 어떤 것이 진짜 나인지 헷갈렸다. 다들 나의 다른 부분을 보고 있는 것일까. 내가 저마다에게 다른 모습을 내어 보이는 것일까. 어쨌건 사회 안에서 자라나며 나는 무수히 많은 지위를 경험하고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며 수많은 나의 모습으로 살아왔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은 때도 있었다. 의도치 않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고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좋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어지러웠다.

나는 어떻게 보이고 싶은가. 어떤 모습이 진짜 나 인가. 나다운 나에 대해 고민할 때마다 진짜 나와 보이는 나의 간극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있으려고 했으나,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또 다른 의식화로 내게 다가왔다. 

특히 타인에게 영향을 많이 끼치는 직업을 선택하면서부터는 그러한 점들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내가 짓는 표정, 건네는 말투, 쓰는 단어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가기도 한다는 점은 나를 처음에는 설레게 만들었으나 가면 갈수록 나를 조심스럽고 위축되게 만들었다. 

그래서 최대한 밝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모순적이게도 내 속은 부정적으로 변해갔고 자책은 더욱 심해졌다. 타인에게는 관대하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한 날카로운 이중잣대가 늘 내 마음 한편을 내리쳤다. 나는 분명 사람들에게 즐겁고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즐겁고 편안한 척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슬펐다. 나중에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헷갈렸다.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고 싶은지, 행복한 사람이고 싶은지 둘 다인지,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뭔지,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나는 분명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고 신나게 써 내려가던 아이였는데,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자신에 대해 어떠한 단 한 줄도 정의 내릴 수 없는 성인이 되어버렸다. 나는 망망대해 앞에 돛이 꺾인 텅 빈 작은 배가 된 것 같았다.

그러다 긴 고민 끝에 나는 관점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은 이렇게 혼란스럽고 부정확하다고 해도 나중에, 수많은 나 중에 어떠한 나로 기억되고 싶은가로 생각을 전환해 봤다. 나라는 한 사람이 가진 수많은 모습과 다양한 면 중에서 어떠한 나로 기억되고 싶은가 곰곰이 나 자신을 들여다봤다.

결론은, 간단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 내가 어린 시절 써 두었던 장래희망이었던 행동하는 철학자처럼, 내가 옳다고 믿는 생각을 소신껏 실천하며 나부터 변화하려 노력하고 세상을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애쓰는 사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 결 가벼워졌다. 나중에 수많은 나 중에 어떤 나로 기억되고 싶은가.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생각을 써 내려가보며, 그것이 정답이 아닐지라도 자신만의 새로운 의미 있는 해답이길 바라며 내 마음속 따스한 봄의 기운을 당신께도 전해 드리며 오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