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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Sep 19. 2024

발목을 붙잡힐 때

우울과 불안

사람은 누구나 어떤 행동을 했든 그럴 만한 사정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남들에 비해 유독 사건 사고가 참 많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어쩔 수 없이 사정이 생겼을 때 상대방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흔쾌히 이해해 주는 편이다. 물론 나도 일이 생기지 않았을 때는 최대한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마무리하려고 하고 꼭 내가 맡은 일은 책임을 진다. 모든 책임에서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게 마음처럼 잘 흘러가지 않듯이 항상 변수는 존재한다. 이런 변수가 연속적으로 발생할 때 나는 땅굴을 파기 시작한다. 그리고 땅굴속에 주저앉는다.


주저앉을 위기에 처하는 메커니즘은 늘 비슷했다. 난 새로운 무언가를 도전하려고 하고 새로운 계획에 설레어한다. 그러다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발생하는 그놈의 사정.
지긋지긋한 그놈의 사정이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발생한다는 것이 문제다.

대학에 처음 입학해 설레는 신학기 행사에도 또
오랫동안 고대한 모임이 있을 때도 평소 내가 받는 페이보다 훨씬 큰 페이를 받을 일이 생겼을 때도 늘 기대감에 가득 차 있을 때 나를 주저앉히는 것이 바로 그 빌어먹을 사정이다.
남들에게 솔직히 이런 이런 사정이 생겼어요.라고 말할 수도 없는 창피했던 그 사정들은 자꾸 날 거짓말 하게 만들고 그래서 자책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알코올중독이다. 창피해서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그놈의 사정은 항상 부모님의 술 문제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술로 인하여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나는 어디로든 불려 다녀야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불려 다니느라 정말 심각했을 때는 더 이상 회사에 반차나 연차를 낼 수 없을 정도로 빠져 점심시간에 나가서 수습을 하기도 하고 회사에 외근 나간다며 거짓말을 하고 뒷수습을 한 뒤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도 했다. 낮이고 밤이고 가릴 것 없이 닥쳐오는 이 갑작스러운 상황의 연속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하루는 이런 일상이 너무나 지겨워서 엄마를 데리러 간 파출소에서 엄마에게 막 화를 내었다. 엉엉 울면서 제발 나 좀 살게 그냥 두라고 그만 좀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회사에서 업무 도중 자꾸 자리를 비워야 하는 일이 생기니 부장님께서는 도대체 어머님이 어디가 편찮으시길래 그렇게 자주 아프시냐 핀잔을 주기도 하고 친구들이나 동기 모임에서는 거의 매번 이런저런 핑계로 빠지거나 중간에 일어나는 내게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


우울한 날들의 연속에도 난 항상 곧 활기를 찾았다. 그리고 나면 어김없이 다시 찾아와 내 발목을 붙잡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 참 서럽고 아팠다. 벗어나고 싶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금은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지만 우울과 불안은 아직도 가끔씩 내게 찾아와 나를 주저앉히려고 한다.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을 다 마치지 못했을 때, 책임져야 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을 때, 마감 기한을 지키지 못했을 때 등 항상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들 묵묵히 나 같은 사건사고 속에서도 자기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만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에게 생기는 이 사건 사고들과 사정은 다 나의 핑계일 뿐인 건 아닐까? 나의 의도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일들이지만 그 사정이라는 핑계 뒤에 스스로 숨는 건 아닐까?


올해는 나에게 참으로 다사다난한 한 해다. 작년 이맘때부터 지금까지 참 많은 일이 벌어졌다. 잘된 일도 잘 안된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 좋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 자꾸 나의 마음을 주저앉히려 한다. 물론 나는 잘 알고 있다. 지금 이런 마음으로 내가 주저앉아 며칠은 괴로워할지라도 나는 금방 또 일어설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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