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은 기분이 정말 좋았다. 길을 걸으며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고, 하늘은 어쩜 그렇게 파랗고 구름은 솜사탕 같았는지! 그런데 몇 시간 후, 누군가의 한 마디에 기분이 싹 가라앉았다. 갑자기 내가 왜 이렇게 초라한지, 괜히 기분 좋았던 게 민망해지기까지 했다.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어수선하다. 마치 내 마음속 감정들이 모여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글쓰기는 이 아수라장에 초대된 모든 감정을 한 곳에 앉혀놓는다. 짜증, 슬픔, 행복, 서운함, 사랑스러움까지. 내가 무심코 지나쳤을 그 감정들에게 의자를 내밀며 이렇게 말한다. “자, 너희들 여기 와서 자기소개 좀 해봐.”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이 감정들과 눈을 맞춘다. 어떤 감정은 나를 울게 하고, 또 어떤 감정은 나를 웃게 한다. 이렇게 하나씩 자기소개를 듣다 보면 감정을 이해하게 되고 내 마음도 차분히 정리된다.
글쓰기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 안에서 떠다니는 감정들을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할수록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게 변한다는 것이다. 내 감정들을 "쓸모없어!"라고 내팽개친다면, 결국 나는 내 삶의 일부를 버리는 셈이다. 반대로 그 감정들에 이름표를 달아주고 이야기를 만들어 주면 내 마음은 편안해진다. 마치 방 안에 어질러진 물건들을 정리하며 그 물건들에 새로운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처럼 내 감정들도 정리되고 제자리를 찾아간다.
스피노자는 감정을 단순히 외부 요인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는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그 본질을 이해할 때 비로소 감정의 힘을 삶에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글쓰기는 이처럼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가 된다.
한 번은 이런 경험도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 짜증이 나지?"라며 노트를 펼쳤다. 처음엔 그저 불만을 쏟아내다가 문득, 짜증의 이유가 내 기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었구나.’ 이렇게 감정을 정리하다 보니 내게 필요한 것은 불만의 리스트가 아니라 잠깐의 휴식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삶의 중심에 서다
글쓰기는 나를 다시 내 삶의 중심으로 데려다준다. 누군가의 한 마디가 내 기분을 망쳤다고 느껴질 때 나는 그 감정을 글로 꺼내 마주한다. 그 사람의 말이 왜 나를 불편하게 했는지, 내가 왜 그렇게 흔들렸는지 그리고 나를 향해 묻는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글쓰기는 단순히 감정을 분출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그 삶의 주인으로 서 있는지를 확인하게 해 준다.
글을 쓰는 동안 나의 복잡한 감정들은 마치 요리 재료처럼 다뤄진다. 어떤 감정은 너무 맵고 짜서 "이건 조금 덜어내야겠어" 싶고, 어떤 감정은 너무 심심해서 "여기에 생기를 좀 더해볼까?" 라며 농도를 조절한다. 글쓰기는 내 감정들을 재료 삼아 나만의 요리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요리를 마친 뒤, 나는 내 삶을 조금 더 맛있고 나답게 살 힘을 얻는다.
결국, 글쓰기는 감정들을 정리하고 내 삶의 리듬을 맞추는 행위이다. 내 안에 떠다니던 감정의 파편들을 모아 글로 정리하면, 나는 더 이상 그 감정들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감정들은 나를 무너뜨리는 파도가 아니라 나를 앞으로 밀어주는 잔잔한 물결이 된다.
살다 보면 감정이 마치 폭풍처럼 휘몰아칠 때가 있다. 기쁨과 설렘이 어느 순간 짜증과 서운함으로 바뀌고, 때로는 막연한 불안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기도 한다. 감정의 이러한 역동성을 바라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글쓰기를 통해 억누르거나 외면하지 않고 감정을 조용히 바라볼 때, 우리는 그것의 진짜 이름을 찾고 나를 괴롭히던 감정들이 내 삶의 이야기가 되어가는 순간을 경험한다.
스피노자가 말했듯 감정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단순히 내 마음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 내 삶 전체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감정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우리를 더 자유롭게 만들며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글쓰기는 그 변화를 돕는 가장 친절한 안내자가 된다. 노트를 펼쳐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감정들과 마주하자. 그 작은 시작이 당신을 더 깊고 따뜻한 곳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