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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아저씨의 귀환

12월 27일의 기록

by 무웉 Jan 02. 2025

 10월 말에 식기세척조를 하다가 잔반을 엎지른 것이 엊그제같은데 어느덧 다시 설거지를 하고 있다. 식기세척장에서 에어팟을 한쪽 귀에 꽂고 일을 하는 것이 마음은 편하다. 그저 머리에 생각을 비우고 컨베이어벨트에서 떨어지는 식판들에 거품을 묻혀 식기세척기에 넣으면 된다. 그러다보면 찰리채플린이 이미 흑백화면에서 풍자했던 것처럼 기계화된 시스템의 일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 내가 느낀 군대라는 조직은 화장실에서 똥을 닦을 때에도 절차에 맞춰야 했다. 휴지는 몇 칸을 써야 하나, 엉덩이는 들어야 하나, 실수로 휴지를 한 칸 더 많이 썼는데 이걸 상급자에게 보고해야 하나와 같은 지루한 고민이 계속되는 곳이었다. 그걸 제외하더라도 인생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참 근사한 일이다. 여러가지 종교들에서도 명상과 같이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지향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가신 점들도 적잖이 존재한다. 일단 오래 하다보면 손목과 허리가 아프다. 식기세척장의 소음과 그 때문에 높게 설정해둔 에어팟의 볼륨으로 인해 귀가 아픈 경우도 있다. 결국 나의 건강을 팔아서 상점 및 휴가를 얻는것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이것도 부자유의 대가인 것이다.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자칫 의미 없어보이지만 그것들이 모여 의미를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예를 찾자면 정말 많다. 사람은 숨을 쉬는 의미없는 행동을 반복하며 의미를 만들어간다. 점을 찍는 행위에는 별 의미가 없지만 그것들이 한데 모여 근사한 점묘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숟가락의 개수를 세며 이번 끼니는 몇 명의 사람이 밥을 먹었는지 조사하는 습관이 생겼다. 오늘 아침은 94명의 사람들이 밥을 먹었고, 점심에는 118명의 사람이 밥을 먹었으며 저녁은 78명의 사람이 밥을 먹었다. 이런 숫자의 나열이 의미없는 시간을 의미있게 바꾸어주지는 않지만 숨을 쉬는 것조차 의미없는 인간들은 의미없는 인생을 사는 법이다.

 23일날 점심에는 카레가 나왔고, 24일 점심에는 양갈비 스테이크와 웨지감자, 그리고 26일 점심에는 비빔밥이 나왔다. 공통점은 먹기에는 맛있으나 설거지하기에는 성가시다는 것이다. 특히 비빔밥이 나오면 국그릇 외에도 비빌수 있도록 큰 양푼이 하나씩 더 나오기 때문에 씻기가 상당히 귀찮아진다. 고추장을 씻어내다보면 공기중으로 입자들이 떠도는 것인지 매워서 기침이 나오는 건 덤이다. 이렇게 점심에는 간부들이 많이 와서 보여주기식으로 맛있는 메뉴가 나온다. 설거지를 하는 병사의 입장에서는 설거지 하기 힘든 메뉴가 나오지는 않는지 미리 찾아보고 걱정하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어떻게 보면 병사들은 고통이 주어져도 그저 소리를 지르고 몸을 뒤척이기만 하는 혼수상태이다. 의식이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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