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평소와 같은 아침이다. 아니, 어제보다는 날이 선선한 게 가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아침의 해는 눈이 부시고 따갑지만, 공기는 제법 서늘하다. 그래 좋은 날이 될 것 같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이지?
그는 고개를 돌려 동료를 쳐다본다. 주변의 동료가 가볍게 물어본다. 이 아침밥이 익숙하지만, 오늘따라 썩 잘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래 오늘이야. 열 한시에 병원을 간다고 했으니까. 이제 얼마 안 남았네.
그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웃으며 말했지만 그의 눈은 동료가 아니라 근처 허공을 본다. 동료는 그 말에 집중해 그의 표정을 알지 못한 채 기뻐한다.
그래 축하해. 이제 곧 할아버지가 되겠네?
오늘은 소중한 그의 딸이 아이를 낳는 날이다. 동료는 축하를 건넨다. 그는 동료에게 고맙단 인사를 건넨다. 띠링. 그는 알림을 듣고 핸드폰을 바라본다. 아들에게 문자가 왔다. 가족방에 아들은 짧게 파이팅이라고 외친다. 그는 그 말을 보고 또 짧게 웃는다. 우리 가족 오늘도 힘냅시다. 울딸은 조심하구,아들은화이팅해요. 아들의 말 위엔 그가 보낸 긴 글이 있다. 여전히 그의 눈은 상념으로 젖어있다.
그는 그렇게 아침을 다 먹고 일을 시작했다. 친근하게 웃음 짓던 동료들도 그의 말에 제 자리를 찾아간다. 헬멧이 무겁고 목이 뻣뻣해졌다. 그는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한다. 띠링 다시 알림이 울렸고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가 되었다. 그는 아차 싶어 부랴부랴 핸드폰을 킨다. 가족방에 그가 듣지 못한 메시지가 더 있었다. 사진을 본다. 가여운 아이. 그는 눈을 한 번 닦고 바라본다. 이제 곧 점심시간이니 그는 덧붙일 말을 고민한다. 울딸엄마가되었네, 축하해요. 그는 살면시 말을 던진다. 아들도 아내도 모두 딸의 출산을 축복한다. 이제는건항하게,착하고,에쁘게 모두 잘키우자. 그렇게 보내곤 그가 보낸 오타를 고치려고 한 단어를 덧붙인다. 건강, 이게 그가 가족끼리 소통하는 방식이다. 투박하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핸드폰만 바라본다. 얼굴엔 땀과 기름이 끼었고, 머리는 헬멧에 눌려 머리카락이 구겨졌다. 그는 그런 모습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옆 자리 동료들도 그러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어이 축하해.
다른 동료가 그에게 말을 건다. 그 역시 눌린 머리에 땀이 범벅인 얼굴로 말을 한다. 동료는 그의 일이 본인의 일인 것 마냥 이야기를 한다.
이제 할아버지야. 할아버지. 하하하
그에게 작은 농담을 건넨다.
그러게, 할아버지네. 할아버지야.
그는 동료의 말에 잠깐 경직되었다가 이네 답한다. 그 잠깐의 시간은 아무도 눈치 챌 수 없다. 그는 여전히 웃고 있다. 점심을 다 먹고 잠깐 눈을 붙인다. 낮잠을 자면서 그는 아침의 활력을 되찾으려고 한다.
띠링 그는 다시 핸드폰을 찾는다. 동생의 연락이 왔다. 형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그는 재빨리 그의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뚜 뚜. 핸드폰엔 어머니의 친근함 대신 경직된 기계음이 들렸다. 지금은 통화 중이니… 그는 동생에게 전화를 돌린다.
그게 무슨 일이야? 어제까지 멀쩡하셨는데?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따지듯이 묻는다. 주변 동료들이 그를 쳐다보는 게 안중에 없듯, 격양된 목소리로 외친다. 이내 수화기 너머 동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 아침에 어머니가 이웃집 고추밭에 고추 따러 가서 알지 못했는데 점심이 지나와 보니까. 가만히 있더래. 그는 동생의 설명을 듣곤, 털썩 주저 앉는다. 아마 지금 큰 누나가 전화하고 있을꺼야. 그는 동생의 말에 벅찬 듯 숨을 내쉰다.
알겠어. 다시 엄머한테 전화해 볼게.
그는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멍해졌을 때, 다시 전화가 울렸다. 그의 어머니다. 어머닌 이미 쉰 목소리로 짧게 이야기한다. 아이고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됐어. 죽을 사람이야. 죽을 사람.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그의 어머니는 같은 말만 반복하고 그는 이내 어머니의 말을 끊고 말한다.
알겠어. 갈게.
그는 어머니에게 짧게 말하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전한다. 그리곤 가족이 다 같이 보는 문자로 조심스레 전한다. 아이구..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가야할거같네요. 울 딸은 쉬구 아들은 언제갈수있나요. 늘 준비했는지 그는 금세 원래의 얼굴을 되찾았다. 이후 둘째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어머니가 무어라고 했어?
수화기 너머 친숙한 목소리가 흐느낀다. 엄마가 미안하대. 아버지를 그냥 두고 고추 따러가는 게 아니었는데. 엄마가 그냥 두고 나왔대. 어제 멀쩡했는데 밤새 기침하는 소리를 그냥 지나쳤데. 오빠. 어떻게? 나 이제 어떻게 살아?
두 남매의 엄마도 아빠의 죽음 앞에, 다시 어린 동생이 되었다. 오빠는 그런 동생을 위로하듯 타일렀다.
어떡하긴, 이미 아버지 연세도 지날 때로 지났는데. 받아들여야지. 울지 마라. 괜찮다. 괜찮아.
그는 무슨 말을 했는지 알지도 못한 채 기계처럼 뱉는다.
어떻게 오빠가 그럴 수 있어. 오빠는 그러면 안 되지. 나 이제 어떻게 살아.
동생은 서운한 목소리로 외친다. 그는 덤덤히 동생의 말을 듣는다.
힘 빼지 말아라. 곧 갈 테니까. 너도 가서 보자.
그는 할 말을 다 한다. 동생은 이내 오빠의 말을 듣고 전화를 끊는다. 그는 끊었던 담배 생각이 난다. 딸과 꼭 약속했다. 딸이 딸을 나기 전엔 담배를 끊겠다고. 그리고 여름이 시작할 때 담배를 끊기 시작했다. 일터에서 가끔씩 생각날 때에도, 꾹 참았다. 주말에 집에 가면 좋아하지 않던 과자들을 잔뜩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꾹 참았다. 그는 공장장에게 간다. 공장장은 그의 말을 듣고 그가 쓴 헬멧을 받아 주었다. 헝클어진 머리, 젖은 얼굴, 기름 낀 작업복, 그는 옷만 갈아입고, 세수 한 번 하고 집으로 향한다. 후 한숨을 담배처럼 내뱉는다.
오늘 하루 참으로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