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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해는 더 붉고 뜨겁게 타오른다.

by 이공칠

저물어 가는 태양이 점점 더 붉어지고 있었다. 그 뜨거운 태양빛에 쓰러저있는 한 노인은 눈을 떴다. 그가 가장 처음으로 본 것은 이름 모를 개 한 마리이다. 개는 혀를 내밀며 눈을 뜬 것을 반기고 있었다. 그 노인이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섰을 때, 개는 크게 한 번 짖었다. 노인은 방금 일어난 탓인지 개가 짖는 소리는 듣지 못하였다. 노인 자연스레 태양을 등지고 선다. 그의 눈앞에 있는 건 황금빛 모래가 가득한 곳이다. 모래들은 마지막으로 붉은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노인의 시선은 모래 끝 지평선으로 향한다. 그리고 발을 내딛는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이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저 어딘가로 걸어가는 것이다. 이름 모를 개는 헥헥 거리며 노인의 뒤를 따라간다.


걸었다. 발걸음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절뚝거렸던 왼 다리가 멀쩡하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노인은 그저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목적지를 아는 것처럼. 그러나 그의 눈에 보이는 건 한 없이 펼쳐진 사막의 모래들 뿐이었다. 노인은 뒤를 돌아보았다. 이름 모를 개는 멈춰서 노인을 바라본다. 노인이 보기에 그 개가 자신을 보며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노인은 개를 불렀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개는 노인의 의도를 알아듣고는 옆으로 왔다. 노인은 개와 같은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걸었다. 다시 노인은 정처 없이 걸었다. 개는 노인을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듯 기분 좋은 산책을 하고 있다. 서걱- 서걱- 노인의 저 앞에 모래가 빨려 들어간다. 노인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촤-아 그러다가 거대한 무언가가 튀어 오른다. 고래다. 고래는 노인의 눈앞에서 튀어올라 노인의 뒤로 다시금 들어갔다. 한 순간 그림자로 인해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사막고래’ 노인은 그렇게 생각한다.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 마치 뒤에서 고래가 헤엄치듯 모래 사이를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고개가 돌아가지 않는다. 개를 볼 때에는 잘 돌아갔던 고개가 뻣뻣해졌다.


걸었다.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걷는 것 밖에 없었다. 노인의 뒤에서 헤엄치던 고래들도 어느새 사라진 것을 느낀다. 노인은 눈을 감으려 해도 눈앞에 펼쳐진 사막들이 보인다. 노인은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옆에 걷는 개가 기분이 좋은 것을 알고 있다. 그래 노인은 지금 이 공간이 어떠한 공간인지 어렴풋이 눈치를 채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본다. ‘내 왼쪽 다리는 며칠 전에 수술을 해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데?’ 순간 걸음이 느려졌다. 노인은 절뚝이면 걸어간다. 왼쪽 다리의 통증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걸을 수 없게 되었다. 걸을 수 없게 되었다는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여전히 등은 태양 빛으로 따갑다.


걸었다. 노인은 왼쪽 다리를 절면서 걸었다. 개는 어느새 시무룩하며 따라온다. 노인은 개가 살짝 뒤처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빳빳해진 고개를 돌릴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개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돌렸다. 잠깐 목이 아프지만, 개가 어느새 조금 뒤처졌다는 게 보였다. ‘왜 그러고 있어?’ 노인은 생각한다. 개는 노인의 생각을 읽고 다시 웃는다. 노인은 개가 자신을 위로한다고 느꼈다. 그때 저 멀리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노인은 소리인지 소음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마치 그리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지만 발걸음은 여전히 그곳을 향한다. 소음의 정체는 울음소리이다. 때론 목이 멘 듯 건조하게 우는 소리와 창자가 끊어질 듯 아린 울음소리, 꺼억 꺼억 여러 울음소리가 뒤섞여서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노인은 이제 주저 않아 귀를 막는다.


노인은 쉴 새 없이 눈물을 쏟아낸다. 더 이상 걸어갈 힘이 남아있지 않은 그는 울음소리에 무방비하게 노출된다. 그는 가슴을 치고 땅을 치고 울음소리를 없애려 하지만, 그럴수록 울음은 더욱더 선명하게 들려 그의 가슴을 찌른다. 아이고, 아이고 그에게 들리는 소리들은 이런 악 쓰는 소리들이다. 그는 그렇게 울음소리를 감당한다. 울음소리에 익숙해질 때, 그는 옆에 있던 개를 떠올린다. 개는 보이질 않고 그가 생전에 쓰던 지팡이가 보였다. 개와 같은 색을 한 나무색의 지팡이. 다시 울음소리는 커진다. 커졌다가 작아졌다가를 반복한다. 노인은 이내 정신을 잃는다. 그 순간 해가 졌다.


노인이 다시 눈을 떴을 땐, 어둠이 자리를 잡았다. 둥그런 달 빛이 떠 밤을 밝혔다. 노인은 마른 눈물을 닦고 일어서려 하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 많이도 걸었지. 힘이 빠지는 게 당연해’ 노인은 주저앉아 방금까지 같이 있던 개를 생각해 주위를 둘러보지만 싸늘하게 바람만 분다. 눈앞에 개가 걸었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들이 보인다. 그러나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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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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