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하늘에는 무엇이 보이나요?
이곳은 A의 꿈속이다. 당신들은 나의 선언으로 지금부터 이야기가 A라는 인물의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A는 그걸 의식하지 못한다. 어쩌면 A는 '꿈이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늘 행동이나 사건은 생각을 멈추게 하지 않고 빠르게 일어난다. A는 옷을 차려입는다. 여러분은 여름날 하루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바람이 없어 오히려 하늘이 더욱더 푸르게 빛나는 그런 날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도로에 가로수들은 하늘의 푸른빛을 더욱 풍부하게 부여한다. 그래 그런 색감을 원하다. 그러나 A만 의식하지 못할 뿐 지금 상황은 오로지 꿈이다. 그런 상태에서 흑백 필터를 끼고 이 꿈을 읽었으면 좋겠다. A에게는 무의식적으로 풍요로운 파란 하늘이지만, A는 그러한 하늘을 의식할 겨를 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A의 꿈 속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A의 모습을 바라볼 때, 흑백의 하늘로 보았으면 좋겠다. 물론 A의 모습도 똑같이 흑백이다.
A의 일상은 단순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영부영 부모님 눈치를 보며 밥을 먹는다. 적당히 눈치를 보며 샤워를 하고 부지런히 나갈 채비를 한다. 부모님이 볼 수 있게 책가방을 꼭 맨다. 그러나 가방 속엔 서머셋 모옴과 카뮈가 전부이다. A는 나가기 전 괜히 한 마디를 덧붙인다. 다녀오겠습니다. 물론 설명이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제 A의 배경을 알았으니 흑백 파란 하늘에서 A가 밖을 나가 적당히 기분 좋은 얼굴로 어딘가를 향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그리고 꼭 상상할 때 덧붙이고 싶은 말은 고전 슈퍼마리오게임처럼 A를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A라는 사람은 옆모습을 묘사하며 걸어가는 그 모습이다. 떠올렸는가? 그렇다면 나는 이 글의 절반을 성공한 것이다. 이게 내가 실제로 꿈에서 본 첫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여러분에게 소설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그 소설의 시작은 늘 그렇듯이 내가 꾼 꿈과 나의 기질적 상상력이 덧붙인 것이다. 나는 나름대로 요란스럽게 표현할 것이다.
A가 가는 장소는 카페이다. 아마 언제 한 번 여러분에게 언급한 그 카페이다. 이곳에는 창가 자리가 4군데가 있다. 나름대로 시간을 때우기에 적합한 장소인 이곳에서 A는 원하는 자리에 가방을 두고 커피를 시킨다. 이제 여러분이 생각해야 하는 이미지는 A가 커피를 시키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다.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는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 가방에 있던 여러분이 아는 그런 카뮈나 모옴의 소설을 읽고 있다. 커피를 주문하거나 받으러 오는 장면은 편집하면 된다. 물론 여러분은 그를 지켜볼 수 있다. 그 카페의 창들은 모두 인도 옆에 있으니까. 여러분의 갈 길을 오며 가면서 그를 볼 수 있다. A는 연극의 무대 위에 있고 여러분은 관객처럼 그를 본다. 그에 대해 어떤 마음이 드는가? 아무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이 글은 성공한 것이다. 나는 그 어떤 이미지를 주고 싶은 건 아니다. 그저 그의 모습을 그리고 여러분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이야기보다 사족이 많지 않은가? 그래서 요란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는 그 장소에서 평소 4시간을 머문다. 오전 11시쯔음에 그 장소에 도착해서 책을 읽는다. 오후 3시가 되면 그는 서서히 갈 준비를 한다. 자 시간을 이렇게 이야기한 이유는 이 이야기가 소설임을 한 번 더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평소와 달랐다.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왔다. 그의 모습이 흑백으로 보였던 것은 단순하게 꿈이라서 그렇게 표현한 것도 있지만, 그날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질문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우리는 이를 의식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를 의식할 수 없도록 글을 꾸며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A는 이 먹구름을 의식하지 못하였을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저 단순히 꿈이라서라고 치부해 버릴 수 있다. 그리고 그래도 괜찮다. 내 마음속에 대답은 그는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하늘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 가는 것이고 그 시간을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서 A는 비를 보고 당황한다. 그는 비가 오는 것에 당황한 것이 아니다. 비가 오는 하늘에서 다른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선택해야 한다. 그곳에 머물거나 아니면 도망치거나. 그런데 그때 이 선택을 막는 인물이 온다. B이다. B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다. 그는 금방 사라질 인물이다. 그저 A의 행동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인물이다. 여러분은 B에 대해 주의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A는 하늘을 보다 B가 왔음을 안다. 그리고 태연 스레 B에게 말한다. 어떻게 왔냐고? 이게 무슨 질문인가? A가 성격이 이상한 건가? 혹은 한국인이 아니라서 표현이 어색한 것인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A는 하늘의 무언가를 보고 놀랐다. B는 A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냥 비가 와서 우산 쓰고 왔다. 이게 B의 대답이다. A는 자신이 말 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B에게 다시 묻기보다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둘은 어제도 보았으며 일요일이 아니라면, 거의 매일 본다. 그래서 A는 늘 B의 말을 걸러서 듣는다. 어차피 절반은 이미 들은 이야기이고 나머지 절반은 이런저런 불평불만들이다. 그는 B의 불평들을 싫어한다. 그러나, 그 불평에 대한 불평을 한다면 B가 할 다음 말들에 대해 들을 자신이 없어 그저 듣는 쪽을 선택한다. A는 이제 B의 말에 집중한다. 평소라면 둘이 대화를 하는 건 한 시간에 몇 마디 정도지만, A는 그날따라 B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듣고 정성껏 답한다. 그러나 그의 신경은 그가 보았던 하늘 한 구석에 있다. A는 이 장소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이상하게 그러지 못한다. 마치 누군가가 아직 그는 그 장소에 있어야 함을 선언한 것이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런 인물은 나밖에 없다. 여러분은 A의 당황하고 긴장한 모습을 감상하길 바란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러한 선언을 받았다. A는 아직은 떠나선 안된다. 그는 실제로는 잠깐일 수 있겠지만, 그가 느끼기엔 꽤나 길고 긴장된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 B는 눈치 없이 떠든다. A는 나중에 그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때 갑자기 인류애가 솓았다고. 평소라면 그의 말을 자를 텐데 그날따라 환하게 웃으며 말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섣불리 자르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긴장감속에 그의 말을 끝까지 경청했다고. 여러분 만일 그러한 A를 본다면 꼭 물어보아라. 그렇다면 그날 B는 무얼 이야기했냐고. 답을 바라지 말고 A의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아라. A는 그저 당황할 것이다. 그리고 억지로 대화의 소재를 꺼낼 것이다. 그 소재가 어쩌면 이 날 대화의 정답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대답은 A도 그리고 혹시 만날 수도 있는 B에게 같은 질문을 물어보아도 정답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 그게 A의 성격이고 그러한 날들이다. 다시 돌아가자 사담이 길어졌다. 왜냐하면 이젠 A를 보내줘야 할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전에 한 가지 아니 써야 할 말이 하나 있지만, 또 글을 쓰면서 고민이 든다. 원래 지금쯤 이 소설을 쓰게 된 가장 중요한 소재가 나오고 여러분에게 설명해야 하지만 갑자기 망설여진다. 만일 여러분이 이다음에 그 이야기를 보았다면, 나의 충동을 이긴 것이고 보지 못하고 그 다음다음에서 보았다면, 충동을 이긴 것이다. 나는 성격상 이러한 충동을 좋아한다. 정해진 규격, 양식들보다 이렇게 무작위로 뻗어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어차피 정해져 있는 결과이기 때문에 그런 무작위함은 그저 보이기에 무작위 한 것이다. 이를테면 무작위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정해져 있는 것들이다.
자 다시 A에게 돌아가자. 이제 다음 장면이다. A가 어느 순간이 되자. 자리를 뛰쳐나간다. 이 찰나의 순간에 B의 얼굴은 당황함으로 가득 찬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뒤로 한채 A는 그 장소를 벗어난다. 쏴- 비가 내린다. 쏟아지지는 않아도 충분히 많이 내리는 그런 비다. B의 얼굴은 당황에서 무표정으로 돌아간다. B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이다. 이 글은 말 그대로 꿈이다. B가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다했다. 이제 다시 A의 모습과 행동에만 집중하면 된다.
여기까지 거의 한숨에 썼다. 나는 이 글에 대해 여러 번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이 소설을 쓰기까지 대략 5~6년 정도 걸린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이 글의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 여러분 이 부분은 잊었으면 좋겠다. 막상 결말 부분을 쓰려하다 괜한 말들이 이어진다.
A는 급하게 뛰어간다. 여러분 평소에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전력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나 시간은 얼마나 될까? 각자가 생각하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냥 뛰는 것이 아니다 비를 맞으며 뛰고 있다. 나는 몇 분까지도 생각하지 않는다. 길어봤자 1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끊임없이 달린다. 꿈이라는 것을 생각하자. 원래대로라면 카페에서 집까지 가기 위해선 횡단보도를 두세 개는 건너야 한다. 그리고 개천을 따라 산책길이 쭉 이어져 있어 그 길을 따라가면 또다시 횡단보도 한 두 개를 건너야 집에 도착한다. 그러나 꿈이다. 이러한 이미지나 상황들은 모두 무시된다. 그래 그저 개천을 따라 달리는 그의 모습만 보인다. 그 길은 평소라면 15분 정도 걸리는 길이다. 그러나 그는 끝도 없이 그 길을 뛰어간다. 여러분은 아까완 다른 방향에서 그를 본다. 여러분이 직접 하늘이 되고 위에서 아래로 그가 뛰는 것을 바라본다. 좀 더 그럴듯하게 보기 위해선 수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대력 270도의 각도로 그를 본다. 그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달린다. 그곳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그곳은 여러분이 보는 그냥 하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바라보는 하늘 달 혹은 태양을 봐라. 여러분은 태양이나 달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럴 수 없다. 그래 그거다. A는 벗어날 수 없는 것에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글을 쓰다 또 궁금해진다. 벗어날 수 없는 것, 그러나 벗어나고 싶은 상황이나 순간이 생길 때 여러분은 어찌하겠는가?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A는 끊임없이 달린다. 그러다 문득 그가 달리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했다. 그렇다 서서히 꿈이 깨어가는 순간이 온다. 비를 맞고 있지만, 몸이 젖이 않음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끊임없이 달리고 있지만, 숨이 차는 걸 느끼지 못한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그 순간 장면이 바뀌었다. 익숙한 곳이다. 그의 방이다. 그는 온몸이 젖은 상태로 이불을 감싼다. 그리고 지나가기를 바란다. 그에게 벌어진 일은 그렇다. 하늘에 금이 갔다. 그가 그의 친구를 마주하던 그 순간, 친구의 얼굴이 아니라 그 너머의 하늘에 금이 간 것을 보았다. 그는 느꼈다. 하늘에 금이 간 것을 느낀 사람은 A 자신뿐이라고, 그래서 그는 애써 B가 하는 말을 들어주고 이야기했다. 간신히 버티고 버틴 끝에서야 그는 그 장소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러나 쉽게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평소보다 먼 거리를 달릴 수 있었다. 그러더니 확실히 무언가가 잘못되었듯이 달린 끝에 이불을 덮고 떨고 있는 그를 볼 수 있었다. A는 이제 깨달았다. 무언가가 확실하게 잘못되었다. 이를 느낀 순간 A는 유체이탈을 한 것 마냥 A가 본인이 떨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꿈이라는 것이 인지 된 순간, 어떠한 영화나 이야기처럼 꿈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불쾌함만 남았다. 온몸이 젖지는 않았지만, 불쾌하게 발 끝이 축축하게 젖은 느낌이다. 비가 와서 신발을 신은 채로 오래 걷다 보면 양말 끝부터 젖어 엄지발가락만 물에 담겨 불은 차인 그런 기분이다. 나는 무엇에서 도망쳤는지 모르겠다. 그 순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6시 십몇분 정도다. 하루를 시작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다. 나는 어설프게 하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