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by 이공칠

8월 13일

일기는 현명할 때의 기록이 아닌 멍청할 때 쓰는 기록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래서 오늘 내가 본 그 사람과 일어난 일에 대해 적을 것이다. 물론 그 사람이 멍청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 덕분에 내가 멍청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내 적기 시작한다. 그는 본인을 ‘쥐’라고 칭한다. 나는 재차 이름을 물었지만, 가는 눈에 씩 웃으면서 ‘쥐입니다. 쥐’라고 말하며 더 물어보지 말라고 얘기한다.


오늘 있었던 일들은 최악 중 하나였다. 그나마 이 쥐라는 사람을 만나서 나쁜 기분이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두려워 그 일을 꺼내기 어렵다.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글을 늘이고 있다. 이 일을 한지 한 달 되었다. 큰 일은 아니고, 편의점 야간 업무다. 한 달 정도 지내보니 비슷한 시간에 주로 비슷한 손님들이 온다. 얼추 일주일 정도 적응하니 그 손님들이 주로 무얼 사는지 알게 되었다. 나름 적응이 되었는데 그런 멍청한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때 이 쥐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망연자실한 내 표정을 보고 진지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쥐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곤 사라졌다.


나는 또 멍하니 그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일을 꼭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멍청함, 그의 영리함을 적는다.



8월 14일

아.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다. 그 사람은 뭐였을까? 왜 나는 그렇게 해야 했을까? 나는 또 내 멍청한 실수를 적는다. 이 말만 지금 남아 이렇게 적는다. 분명히 어제까지 그 사람, 쥐는 나에게 현명해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단 걸 깨달았다. 그래 나는 멍청하다.


혹시 나중에 내가 본다면, 그런 나를 위해 몇 자 더 적는다. 나는 원래 오늘 일하면 안 되었다. 내가 하는 날이 아니니까. 사장님의 바쁘다는 연락에 나는 돈이라도 벌 생각에 야간 일을 했다. 그리고 어제와 같은 상황이 펼쳐진 것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나는 어제와 같이 대처하고 싶었다. 그 순간 내가 기다리던 사람인 그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온전히 감내해야 했다. 젠장. 이렇게 내 솔직한 감정을 적는다.



9월 11일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났다. 한 한 달 정도 된 것 같다. 무슨 염치가 와서 왔을까? 그는 다시 같은 웃음으로 이야기를 한다. 목소리마저 가늘고 자칫 섬뜩하다. 왜 왔을까? 나는 어쩔 수 없이 웃으며 그에게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어봤다. 그는 내 말에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자기 할 말만 한다. 나쁜 사람. 그렇게 그는 자기 말만 하더니 이내 사라 졌다. 무언가 더 쓸 말이 있었는데 너무 피곤하다.



9월 12일 아니 어쩌면 11일 밤

그가 사라지고 나는 아침에 잠을 잤다. 그리고 친구와 술 한잔 했다. 왜 나는 다시 일기를 펼쳤을까? 그냥 그가 떠올랐다. 일기는 나의 멍청함을 쓰는 기록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다시 내가 일기를 펼친 건 내가 한 어떠한 멍청함 때문인 걸까? 그게 뭘까? 아니 알고 있다. 그래, 시작하는 게 두려울 뿐이지, 나는 내가 한 멍청한 행동을 알고 있다. 그건 바로 쥐를 탓했다는 것이다. 그가 다시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나는 두렵다. 그의 말들을 다시는 듣지 못하게 될 것을.


오늘 친구들과 술 한잔 했다. 마시면서 내가 있었던 일들을 모두, 아니 모두는 아니고 부끄럽지 않을 만큼 설명해 주었다. 친구들은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그런가? 결국 내 잘못이었나?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 쥐의 말들이 떠올랐다. 내 마음을 아는 건 오로지 쥐, 그 사람뿐이었다. 나는 그런 그를 탓하고 욕했다. 물론 속으로만, 그는 현명해서 그런 내 마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게 내가 한 가장 큰 잘못이다. 이런 젠장. 왜 그랬을까? 다시 또 나를 위해 이 마음을 온전히 적는다.



10월 5일

어제 그와 닮은 사람을 보았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옷이며, 목소리가 마치 그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딱히 자기소개는 하지 않았지만, 말하는 말투까지 그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그 사람은 뭘 하고 있을까. 가끔 생각한다. 아마 어디선가 또 나 같은 사람을 보고 있지 않을까?


쥐. 어느 날 그는 내 앞에 나타났다. 그날은 나에게 가장 힘든 날 중 하나였다. 그는 나에게 무언갈 말했다. 이제는 온전히 기억나질 않는다. 나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힘든 일이 나에게 무조건 일어날, 필연적인 그런 날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그런 날. 그런데 사실 잘 모르겠다. 정말 그런 날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내가 무언가에 홀렸는지.


아무튼 그 사람이 사라지고 오히려 일은 악화되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그렇다. 마치 그의 말이 남긴 배설물들이 더 큰 오염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알고 있다. 그 모든 것은 그가 아니라 나로 인해 생긴 일이고, 그 말도 안 되는 후폭풍 역시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그저 무언가 탓할 것이 필요했고, 쥐라는 사람을 통해 이 상황을 쓰고 싶었다. 쥐. 그가 정말 나에게 왔었나.?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일은 그만두었다. 더 이상 야간의 일이 나에게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게 전부이다.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0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