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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

by 이공칠

내가 바다를 한 번 더 볼 때

바다는 나를 본 것일까 아니면 보지 못했을까?


파도는 왜 내가 그들에게 물은 질문과

똑같은 걸 나한테 물을까?


그리고 왜 그들은 그다지도 낭비적인

열정으로 바위를 때릴까?


그들은 모래에게 하는 그들의 선언을

되풀이하는 데 지치지 않을까?


파블로 네루다 - 질문의 책 중


아직 해가 떠오르기 전, 바다는 고요했다. 해가 뜨고 서늘하던 공기가 햇빛에 달궈지니 해무가 깔리기 시작했다. 7월의 어느 날이다. 서준은 이른 산책을 마쳤다. 그리고 그 덕에 짙은 해무를 볼 수 있었다. 서준은 해결되지 않은 고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리고 그때, 현서를 처음 보았다. 분명히 주변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었는데 그가 눈에 확 들어왔다. 서준은 생각했다. 저 사람은 내 고민을 해결한 사람이라고. 서준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 스스로 알 수 없는 질문을 한다. 오늘 해무가 낀 것 말고 특별할 것 없는 그런 날이다. 단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주위를 걸었고, 우연히 어떤 남자를 보았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제 막 출근길에 올라간 그 사람. 그 사람만이 서준이 가진 고민을 해결한 사람처럼 보였다. 말 그대로 빛이 났다.


서준이 본 현서는 말 그대로 평범한 모습이다. 리넨 소재의 회색 블레이저와 같은 색상, 같은 소재의 바지를 입고 반쯤 뜬 눈으로 출근하려고 한다. 걸음걸이나 표정까지 주변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현서에게 그날은 다른 날과 똑같은 날이다. 이제 막 일어나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하러 가는 똑같은 날. 현서도 아침에 낀 해무를 보았다. 해무를 보곤 곧바로 이번 달 월급을 생각했다. 월급을 받게 되면 나갈 카드값과 집세, 이번 달 예상 식비를 포함해서 남은 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서준이 본 것은 해무가 만든 환상일 것이다.



뜨거운 열기가 가득 찼을 땐 해무는 이미 사라졌다. 서준은 아침의 고민들을 잊은 채로 도서관에 갔다. 서준의 일상은 그렇게 습관처럼 흘러간다. 도서관에서 별 의미 없는 책 하나를 꺼낸다. 몇 자 읽지만 내용이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는 이곳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본다. 또각 또각, 사각 사각, 누군가의 걸음 소리, 책을 넘기는 소리, 그는 소리에 집중하고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조용한 도서관에 얼마 없는 소리들. 그는 조용히 그런 사람들을 본다. 때론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 그런 사람들도 본다. 이미 그들의 모습이 하나의 소리인 냥, 듣고선 고개를 돌린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눈에 담고 읽는다.


태양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바다에서 뜬 해는 이제 푸른 바다를 붉게 물들였다. 서준의 배에서 소리가 났다. 꼬르륵. 그는 눈을 감았다. 방금까지 보던 인물을 마쳤다. 긴 생머리에 안경이 잘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무슨 공부를 하는지 늘 서준보다 먼저 와서 늘 같은 자리에 앉는다. 같은 책을 펴서 읽더니 금세 몰입한다. 몰입할 땐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손톱을 입술에 가져다 댄다. 손을 물어뜯지는 않지만 계속 손가락이 입에 있다. 화장을 하면 화려해 보이겠지만, 도서관에서 조용히 있고 싶은 듯 수수하게 다닌다. 서준은 그녀를 마지막으로 읽는다.



붉었던 홍조는 이제 눈을 감는다. 바다는 어느새 침묵한다. 서준의 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7월의 열기는 여전히 밤을 데운다. 서준은 잠시 누웠지만 더위로 인해 다시 일어난다. 창문을 열면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쏴-아 파도 소리가 들리지는 않지만, 눈으로 파도가 물어보는 질문들은 어두운 밤이라도 잘 보인다. 무엇을 이리도 열심히 물어보는지 이내 답할 말들을 잊어버린다. 서준은 그렇게 바다와 파도를 본다. 아침의 해무 속에서 떠올렸던 고민들이 다시금 올라온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서준은 아침에 본 현서를 떠올렸다. 분명히 다를 것 없는 그런 사람이다. 회색의 옷을 입고,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었다.


현서는 왔던 길 그대로 퇴근을 했다. 현서에게 참 길었던 하루였다. 아침의 해무 덕분에 지각했다. 크게 뭐라 하는 사람은 없지만, 괜히 눈치 보였다. 그게 지금 현서의 자리이다. 일은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았다. 오전 내내 붙잡던 일들을 끝내지 못해 생각지도 못한 야근을 했다. 집으로 가는 길 그는 바다를 보았다. 저기 어딘가에 부표가 하나 떠다닌다. 부표는 묶여있지만, 이리저리 흔들려 마치 떠다니는 것 같았다. 현서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서준은 다시 누워 잠에 든다. 바닷소리가 들리는 듯, 그는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든다. 그는 꽤 오랜 시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든다. 바다는 여전히 쏴-아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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