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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문

여름은 언제 시작하는가?

by 이공칠

여름이 언제 시작이 되는지 아는가?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자정, 아직 여름을 실감하기 어렵다. 여전히 밤은 이리저리 휘둘린다. 여름은 피부가 먼저 느낀다. 달이 뜨고 거리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공간으로 사라지면, 갈 곳을 잃은 사람들만이 하릴없이 돌아다닌다. 무엇을 찾으러 돌아다니지만, 그들은 애초에 잃어버린 것도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새찬 비를 맞는다. 비는 이 삼일 동안 쉬지도 않고 내린다. 마지막을 고하는 것처럼 다 쏟아버리면 여름은 시작된다. 더 이상 밤의 찬 바람은 없다. 무언가를 찾던 사람들도 영원히 찾지 못한 채 꼼짝없이 여름을 맞이한다.

H는 그렇게 글을 마치고 펜을 내려놓는다. 무언가를 쏟아 냈지만 그의 표정은 카페의 환한 조명과 다르게 어둡다. 눈살을 찌푸리며 괜히 입맛을 다신다. 그가 이곳까지 오면서 몇 번이나 혀를 깨물면서 지금의 공기와 그의 생각이 현실이라 믿었지만 막상 쓴 글을 보니 형편없다고 생각한다. 북북 찢어버릴까? 고민하지만 이내 생각을 저버린다. 커피의 작은 얼음들은 벌써 다 녹아 얇게 하나의 층을 만들었다. 투명한 컵 표면엔 물방울이 맺힌다. 그리고 물방울이 모이면 주르륵 눈물처럼 흘러 그가 쓴 글의 일부를 젖게 했다. 그는 컵을 들어 빨대로 휘- 휘- 저어 층을 없앤다. 이미 번진 글을 보면 더욱더 그 종이를 찢어 버리고 싶다. 모든 게 H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왼쪽 팔로 고개를 괴고 그가 쓴 글을 몇 번 읽어 본다. H는 그가 쓴 글 중 ‘그들은 애초에 잃어버린 것도 없다.’란 구절이 마음에 들어서 몇 번씩 읽어본다. 그리고 애초에 그 구절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의 한 구절을 모방했다고 생각하고 펜을 다시 쥐었다. 찢어버리는 대신 그는 몇 자 더 적어보기로 한다.


오르막길이 있다면, 내리막길도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소리다. 내가 남기는 글은 그렇게 당연하며,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다. 나는 문을 보았다.


H는 그러더니 다시 등을 기대고 한숨을 쉰다. 펜은 내려놓지 않았지만 그는 머리를 골똘히 굴린다. H는 아직까지 자신이 쓰려는 인물이 무얼 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머릿속으로 구현한 그 길에 대해 쓰고 싶을 뿐이었다. H가 처음 그 길을 그렸을 때는 지금보다 더 어렸다. 군대를 전역하고 혈기 왕성한 그런 시기였다. H는 커피 표면의 물로 인해 번진 글을 본다. 그리고 어떻게 그 길을 묘사할 것인지 고민한다.


나는 그 길을 어두운 밤이면 걷곤 한다. 버스는 다니질 않으며 주변엔 아파트 단지가 있고 가로동이 켜지지 않아 어두운 그런 길이다. 밤은 늘 고요하다. 나는 평소와 같이 그 길을 걸어 집으로 향한다. 서늘하게 부는 바람, 바람에 접촉한 팔부터 서늘함을 느낀다. 낮에는 강렬한 햇빛으로 인해 덥지만 이 시간까지 태양이 가진 강렬함을 미치지는 못한다. 그러나 얼마 안 남아 더워질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오히려 그날을 기다리며 하루를 세고 있다. 곧 터널을 마주한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달빛도 없이 새까만 날. 가로등도 켜지지 않아 누구 하나 지나가지 않는다. 나는 이런 비현실적인 어둠에 혀를 살짝 깨물어 약간의 통증을 느낀다. 이런 습관은 내가 꿈이 아니라 현실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에 꿈을 잘 꾸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습관을 가진다. 마치 내 현실이 꿈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런 날이면 여러 번 혀를 깨물곤 한다.


H는 여기까지 쓰면서 그가 썼던 인물처럼 혀를 살짝 깨문다. H는 더 이상 글을 쓰기에는 ‘여름의 문’이라는 이 소재가 가볍게 날아갈 것 같아 두려웠다. 마치 오래전부터 간직한 소망처럼 쉬이 쓰기보다 매 시기마다 바꿔가며 글을 썼다. 늘 그 글은 형편없어 금세 잊고 다시 여름이 찾아오면 다시 귀신 같이 찾아온다.


00년 7월의 여름.


비가 온 후에, 단지와 단지를 연결해 주는 다리를 건널 때면 비릿한 물냄새가 올라온다. 그 다리 아래에 개천이 흐르기 때문이다. 이틀 전에 온 비는 다 마르면, 다리는 볼품없는 모습을 드러낸다. 다리를 건너면 아파트 단지를 볼 수 있다. 햇빛 덕분에 아파트의 미관을 조성하는 나무는 더욱더 푸르르게 보인다. 녹색 나무와 대비되어 구름 없는 하늘은 선명하게 파랗다. 언제 비가 왔을까? 여름은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계절이다. 근처 카페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거나 아파트 단지와 하늘을 같이 보고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오로지 보고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다. 직접 걷기 시작하면 아름다움을 느끼기보다는 나무를 더 푸르게 만드는 태양을 원망하게 된다. 가끔씩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불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머리끝까지 다 젖은 채로 가라앉아 허우적허우적거릴 뿐 물의 저항을 받아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그런 느낌이다. 가끔씩 머리를 스치는 바람이 열기를 잠시 날리지만, 이내 습한 괴로움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여름이다.


H는 이전 날의 여름을 기억하기보다 그가 느끼는 새로운 여름을 글로 적었다. 이번에는 그가 느끼는 여름의 아름다움이다. H는 이전의 고요한 격정을 잊은 듯 푸르른 나무와 선명한 하늘을 글로 적었다. 격정은 사라지고 고요함만 남았다. H의 마음이 고요함으로 채워진 이유가 뭐였을까? 그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한다.


청색 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그림자에 가려 태양 빛을 받지 못해도 배경이 되는 회색 건물과 화려한 색과 대비되어 더욱더 푸르르게 보인다. 카페 유리창 너머 보이는 나무의 흔들림은 카페에 어울리는 요란한 소리만 들리는 이곳의 정적인 공기와 다르게 푸르름을 상징한다. 나는 카페에 있다. 주문과 동시에 원두를 가는 소리가 들리고, 주문벨이 울리는 소리, 직원의 부드러운 고음과 쿵 하고 얼음이 담긴 문을 닫는 소리들이 귀에 울린다. 책을 보고 활자를 읽지만 이내 집중하지 못하고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내 마음이 그만큼 고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비워진 마음을 눈 대신 귀로 채우려 한다.


내 마음이 고요함으로 채워졌던 이유는 흔들리는 나무와 저 시끄러운 소음과 비슷하다. 이전의 어지러운 마음들이 오늘이 돼서야 모두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비가 온 걸 알지 않나? 이전의 마음을 정리해서였나, 가벼이 한 잔의 술 덕분인가, 그저 수면이 필요해서였는가 잘 알지는 못하겠다. 모르겠다. 그저 나라는 사람의 기질일 수도 혹은 다 자라서 배운 습관일 수도 있겠다.


나는 카페에 앉아 책을 펴고 지나가는 사람을 본다. 분주한 직원의 모습을 보고 떠드는 손님들의 들리지 않는 웃음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러한 모든 행동들을 독서라고 부른다. 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또 다른 나의 기질을 발휘해 사장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한가로이 책을 읽는 나를 보며 무언가를 느낄까? 이러한 상상을 한다. 내가 그와 눈이 마주칠 수 있었던 이유는 바쁜 점심 주문이 다 끝나가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바쁜 일상에 뛰어든다. 나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 나는 내 기질로 미리 그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H는 그렇게 모호한 글을 마친다. 어느새 그는 문을 열고 여름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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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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