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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공칠

비가 온다. 장마도 다 지난 가을,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그는 멍하니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비는 천천히 그리고 갑작스레 빨라지다가 다시 천천히 변덕을 부린다. 그는 그러한 비를 보면서 생각한다. 마치 그런 움직임이 자신의 마음과 같다고.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어느새 귀에 들리기 시작하면, 그는 생각을 접어두고 웃음 속에 빨려 들어간다.


그에게 낯선 공간, 낯선 음식이다. 다소 기름지고, 느끼하지만, 입에 완전히 안 맞는 것은 아니다. 주변 동료들은 맛있는지 웃으며 먹는다. 그는 방금까지 내린 비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돌린다. 왼쪽으로 한 번, 가장 먼 곳에 있는 동료를 한 번 바라보고 다시 오른쪽으로 한 번, 이 자리를 만든 동료는 신이 난 듯 음식을 먹으면서 사람들을 쳐다본다. 그러다 잠깐 눈이 마주치고, 가볍게 웃는다. 옆에서 누군가가 무어라 하는 소리에 웃음이 이어진다. 비를 생각하다가 놓친 농담들이 이어져서 그는 그 상황을 그저 바라보고 씨-익 미소만 짓는다. 마치 이전 상황을 알았던 사람처럼. 그의 바로 오른쪽 자리에 그녀는 자신의 접시에 충실한다. 그는 창가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참지 못했는지 고개를 휙 돌린다. “오래 씹네요.” 휙 돌린 고개와 다르게 그는 투박하게 말한다. 그는 오물오물 거리는 작은 입을 몰래 바라본다. 욕심부리지 않고, 절제된 그녀의 행동에 잠시 그는 빠져 든다. 그 시간은 찰나이다. 그는 그 순간에도 머릿속으로 많은 것들을 그린다. 비가 쏴아- 갑자기 쏟아진다.


그는 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다른 동료가 이야기한다. 비가 계속 내려야 한다고. 동료의 실없는 농담에 또 다들 웃는다. 이번엔 그 이야기가 들렸는지 같이 웃는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음식에 충실하다. 불필요한 행동 이 없는 모습이다. 그는 의식해서 식사를 한다. 물론 평소에도 얌전히 조심스레 먹을 때에도 있지만, 지금은 특히나 신경 쓴다. 수저 한 번, 포크 한 번, 그 한 번이 조심스럽다. 우악스럽게 먹기보다는 조금 더 조용하게 먹는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실망한다.


그가 한 행동이라면, 비를 보고 비에 대해 생각한 것과, 웃는 것, 그리고 투박하게 한 마디 한 것이 전부이다. 그는 투박한 자신의 말에 괜스레 자책한다. 어떻게 해야 더 잘 말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그의 고민은 늘 아름답다. 비 오는 광경도, 그의 인생도, 그리고 밥 먹기 전에 읽었던 책 속에서도 그는 섬세하게 바라본다. 아름답기만 한 그의 생각은 그리 쓸모가 있지는 않다. 물론 그에게 모든 것이 섬세한 것은 아니다. 그에겐 가상의 선이 있다. 이 선을 넘는 사람을 그는 무척 싫어하고 혐오한다. 그는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는.


며칠 전, 또 다른 동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고 충격을 받았다. “H는 호불호가 너무 강해 그래서 그게 눈에 보여.” 그는 나름대로 자신의 마음을 숨길줄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는 말을 듣고 한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내린 결론 중 하나가 이 선에 대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 물론 개인차기 있지만, 각자는 그 거리를 나름대로 존중한다. 더 깊숙이 들어가지 않는다. 물론, 때론 인과관계가 바뀌어 누군가를 싫어하고 그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는 어젯밤에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선에 대해 넘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비는 실없는 농담에 반응이라도 한 듯이, 혹은 농담을 이어서 하는지 '…'만을 남기는 중이다.


그는 그 이야기를 듣고 더 유별나게 행동에 조심하려고 한다. 물론, 참을성이 없는 그는 곧바로 제멋대로 행동한다. 결국, 최근의 그의 모습은 차분하게 보였다가 때론 강하게 기분을 표현한다. 비가 오는 오늘은 잠을 잘 잤는지, 혹은 무언가에 강하게 홀렸는지, 어쩌면 비가 오는 게 마음에 들었는지, 얌전하고 부드럽다. 천천히 그리고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우아하게 수저를 짚는다. 그는 자신이 가진 섬세함을 더욱더 신경 쓰려고 부단하게 애를 쓴다. 그게 그렇게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창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본다. 비가 어떻게 내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는 창에 비친 그녀의 모습에 기억 속 자주 마주한 선명한 얼굴을 더한다. 가장 먼저 그릴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눈이다. 그가 본 그녀는 유독 짙은 검은 눈을 가졌다. 스치듯 지나가면 모를 수 있지만, 가만히 앉아서 얼굴을 바라본다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바로 그 짙은 검정 눈이다. 너무 짙어 그는 늘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고개를 혹은 눈을 살짝 내리면 작은 입이 보인다. 말을 할 때도 입은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녀는 늘 최소한으로 행동을 한다. 그는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생각한다. 그녀가 주는 선은 자신이 보여준 그 선보다 더 견고하고 거리가 멀다. 그녀는 그렇게 친절한 사람은 아니다. 그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때, 주로 일에 관련된 혹은 가끔은 일과 관련된 농담이나 사담등은, 거리가 꽤 멀리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녀는 가지고 태어난 기질 때문에 또 가끔은 아직은 어리기 때문이라고 고민한다. 그리고 자주 그녀는 일부러 그러한 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제 그의 눈에는 비가 사라지고 그저 흐릿한 날이다.


그가 왜 투박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는 이러한 일에 능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본인 스스로가 그런 일과는 꽤나 거리가 먼 사람으로 생각했다. 수많은 고뇌 끝에 그는 본인 또한 그런 일을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혹은 어쩌면 그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 혹은 어쩌면 그저 본능이 더 강해진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늘 다짐한 그의 생각을 하나둘씩 실천하고 있다.


비가 온다. 그는 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발끝이 축축해지거나 차가워진 느낌을 싫어한다. 일상의 모든 소음들이 갑자기 숨죽이고 그의 부산스러운 행동과 목소리가 유달리 커 보이는 그런 날을 싫어한다. 해가 맑은 날이면 제각기 떠들고 웃으면 그의 의뭉스러운 행동이나 생각들을 파묻을 수 있지만, 비가 온다면 그의 생각 하나하나가 더 커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내린 비는 그의 여러 실패를 포함하더라도 마음에 드는 날이다. 잠을 잘 자서 그런지, 아니면 아무도 느끼지 않은 신호를 받아서 인지, 아니면 그냥 오늘이라서인지 모르겠다. 내린 비도, 어쩔 수 없이 맞은 비도, 살짝 시린 발 끝도 그의 기분을 망치게 하지는 않는다. 참으로 감사한 하루다. 그는 알지도 못하게 오늘 하루를 감사함으로 채웠다. 비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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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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