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타고 소도시여행을 시작하다
일정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조식을 사 먹을 수 있는 기회!
아침 일찍 둘째와 미리 봐둔 베이글집으로 향했다. 시차적응 중인 우리는 새벽부터 깨느라 늘 둘이서 조식당 오픈시간 카운트다운하면서 입장하는 반면 첫째는 그 시간이 버거워서 늘 우리가 테이블에서 일어나기 직전에 뒤늦게 합류를 한다. 그나마 우리가 조식을 코스요리 먹듯 길게, 많이 먹다 보니 늦게라도 결국 셋이 같이 먹고 일어날 수 있다는! 베이글집은 버스를 타고 세정거장 정도 걸려 도착을 했다. 메뉴 고르고 빵 고르고 사이드 고르고 음료까지. 생각보다 주문이 복잡해서 헤매다가 겨우 주문을 완료했다.
2층에 올라가서 펼쳐놓고 먹는데 둘이서 엄지 척! 맛집 인정! 한국 갈 때 사가고 싶다는 의견통일까지. 첫째가 먹을 빵과 샐러드를 담아서 올 때는 숙소까지 걸어서 왔다. 오는 길에 대형마트가 있어서 기차에서 먹을 과일과 음료까지 구입 완료. 매일 빵을 먹어서 그런지 첫째는 우리만큼 감동스러워하지는 않았다는...
체크아웃을 하고 전날 받았던 웰컴드링크 쿠폰으로 종이컵에 레드와 화이트 와인을 야무지게 담아서 역으로 향했다. 세인트판크라스역 디저트가게에서 우리의 최애 프랄린과 초코맛을 사고 마트에서 산 과일에 음료수까지 테이블에 풍성하게 펼쳐두고 두 시간의 기차여행을 즐겼다. 창밖도 구경하고 각자 해야 할 일들도 하면서.
York
요크는 런던보다 쌀쌀했다. 한참 이상하리만큼 쨍했던 런던 날씨에 비해 요크는 딱 영국의 을씨년스럽고 칠 리 한 날씨였다. 옷깃을 여미고 숙소로 향하는데 오늘도 걸어서 이동이다. 유럽의 돌길이 무거운 캐리어를 밀면서 가기에 쉽지 않은데 두 딸이 짐을 다 맡아줘서 오늘도 엄마는 가볍게 내비게이션용 핸드폰만 손에 쥐고 그녀들 뒤를 따른다.
약 20분을 걸어서 나타난 요크성. 바로 맞은편 힐튼 호텔. 3인용 룸은 요크성 뷰가 아니라 아쉬운 데다 라운지도 없고 작게 난 창밖으로 건물뷰라 이모저모 서운할 무렵 내 맘을 눈치챘는지 큰딸이 방이 너무 아늑해서 여태 머문 숙소 중 가장 마음에 든단다. 둘째도 맞장구를 치고, 그녀들 덕분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질 무렵 해지기 전에 동네 구경을 하자며 다시 길을 나섰다.
시내를 구경하면서 러쉬 들러 바스볼도 사고 여기저기 기웃기웃 구경하면서 저녁을 먹을 레스토랑을 찾는데 예약을 안 하면 한참 기다려야 되고 마땅히 눈에 들어오는 곳이 없었다. 한국 가기 전에 아이에게 제대로 된 저녁을 사주고 싶은데... 스테이크라도 먹이고 싶은데 큰맘 먹고 들어가려고 둘러보니 가격이 너무 비싸기도 하거니와 예약을 안 해서 그냥 나와야 되는 곳들 중 겨우 한 곳이 워크인이 가능해서 얼른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 외에도 2코스, 3코스 메뉴가 있다며 작은 종이를 추가로 가져와서 추천을 하길래 보니 둘째가 좋아하는 아란치니, 양고기파이가 있고 첫째가 먹고 싶다던 어니언수프와 먹이고 싶었던 스테이크가 있고 흰밥도 당길 것 같아서 오리고기에 흰밥, 샴페인과 샐러드는 나를 위해서! 이렇게 다양하게 코스를 조합해서 주문을 했다. 스테이크를 미듐으로 주문했는데 웰던으로 나온 데다 너무 딱딱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다시 구워줬다. 여기까진 좋았다.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고. 이제 계산을 하고 일어서려고 테이블에서 계산서를 받았는데 내가 예상했던 금액 60 파운드 근처겠거니 싶었는데 100파운드가 넘게 나왔다. 알고 보니 나는 코스메뉴판 받은 걸 기준으로 2코스 2명, 3코스 1명을 주문했는데 모든 메뉴를 단품으로 계산한 것이었다. 주문을 받았던 직원을 불러서 설명을 했더니 매니저가 왔다. 그때 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왜 매니저를 부른 걸까... 다시 매니저에게 처음부터 설명을 했다. 나에게 코스메뉴를 설명하고 주문을 받았던 직원은 사라지고 아무것도 모르는 매니저에게 그 직원과 나눈 대화부터 내가 주문한 메뉴를 설명하고 있는 상황이란... 마치 직원은 제대로 응대했는데 내가 억지를 부리는 듯한 상황이라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정당하게 내야 되는 돈이라면 금액에 상관없이 내는 게 맞지만 동양인이고 여행객이라 대강 요구하면 쉽게 낼 거라 생각했다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매니저는 직원과 다시 이야기를 하더니 청구서를 코스메뉴로 조정해서 가져왔다. 디저트도 안 나왔던 상황까지 알고는 디저트 가격도 빼서 청구서를 다시 가져오겠다고 하길래 그냥 괜찮다고 하고 청구서에 10파운드를 더 얹어서 내고 나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에게 서비스금액을 받는 업종이라면 무형일지라도 그만큼의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부당한 청구는 분명 제대로 확인해서 정당하게 계산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가며 열변을 했다.
캐리어 손잡이가 고장 났을 때, 이렇게 부당함을 항변해야 할 때, 저녁에 와인 한 병 마시고 싶을 때 가끔 어른이 혼자라는 게 실감이 되며 살짝 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