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함 없는 내적 이분화
어딘가 간격이 벌어져 있다면 이를 좁히려는 채움의 안도가 다가온다. 비어 있음을 허용치 않아 아예 자신들만의 규칙, ‘비움을 허용할 시, 어떤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작성케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에 따른 벌금형이나 징역살이를 하게 만든다. 실존하지 않는 채움의 공간에서만 발생하는 장치다. 채움의 것들은 이를 권력이라며 자신들의 절대적 지위를 여기저기 남용한다.
말이 없는 비움은 어떠한 것도 보여 줄 수 없어 자신들의 상황을 설명할 것이 없다. 있다고 하면 이미 채움의 시작이기에 그저 그냥 ‘아무것도 없는’이라 자기들끼리 쑥덕거린다. 쑥덕거림은 채움의 씨앗이 아니던가. 누군가 이의제기를 한다. 비움은 무슨 소리냐며 비우기 위한 자신들만의 워밍업이라 강조한다. 쑥덕거리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게 아니라고, 자신들도 암묵적인 룰을 가지고 있다 한다. 여유가 절대적 안정제라 비움의 움직임이 극히 제한적이다. 멍하니 있으며 그저 흰바탕의 세상을 청결히 유지한다. 아무것도 없어 치울 것이 없는데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채움의 신호라며 극도의 결벽증을 토해낸다.
채움은 이를 보고 비웃는다. 그냥 움직이면 되는걸, 뭣 하러 사서 고생하냐는 비아냥을 해댄다. 자신들처럼 채워 나가면 되는 간단함을 왜 그리 고집스레 안 하는지 아니, 그들 자체의 정체성은 이미 망한 것이라고 여긴다. 비우면 그냥 채우는 정말 간단한 것을 생각이 많아 아무것도 안함이 오히려 비움이라는 거짓말을 한다고 여긴다. 결국 똑같은 채움인데 그들이 병적으로 비움이라 우기는 종족이라 한다. 혼란의 소용돌이가 채움과 비움 사이를 왔다리 갔다리 움직인다.
너무도 티나는 공백에 비움은 채움의 공격 대상으로 무자비한 채움이 감행된다. 없으니까, 비어 있으니까, 조금만 건들면 채움이 되는 것. 그럼에도 부동의 비움이다. 채움이 발생하자마자 비움으로 아무런 일도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집인가 신념인가. 극도의 인내력을 발휘함인가. 이제는 그나마 ‘있던 것’도 떠나보냈다.
끊임없는 싸움의 채움과 비움은 어떤 하나의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를 인정 못함에서 둘로 나눠진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