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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걸즈 Sep 15. 2024

물리치료사의 하루

“잠시만요. 내릴게요!”를 미친 듯이 외치며 사람들을 뚫고 버스에서 내린다. 출근길도 힘든데 환자 예약도 많은 날이다. 벌써 집에 가고 싶다. 8시 반 병원에 도착 후 컴퓨터를 켜고 근무복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출근을 하는데 출근 복장 걱정이 없는 게 첫 번째 장점이다. 근무복은 일할 때 불편하게 왜 이렇게 신축성이 없는 재질인지 입을 때마다 궁금하지만, 그냥 입는다.


개인 치료실 불과 태블릿을 켜고 날이 추워 히터와 전기 핫팩을 켜둔다. 예약 환자에게 당일 예약 확인 문자를 보내고 8시 40분 짧은 아침 조회를 하러 간다. “오늘 하루도 힘차게!” 매번 같은 구호를 외치지만 립싱크가 국룰. 다녀와서 오늘 올 환자들의 치료 부위와 상태를 간단하게 정리한다. 무전기를 착용하고 9시 환자를 기다린다.


40대 남자, 허리 통증으로 내원한 환자가 왔다. “저번 치료 후에 좀 어떠셨어요?” 환자의 상태를 묻고 치료를 시작한다. “제가 손이 조금 차가워요. 죄송합니다.” 환자에게 양해를 구한다.


”제 손은 따뜻한데 잡아드릴까요?“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인지 아침부터 기분이 상큼해진다. 이럴 때 당황하지 말고 단호하게 “아니요. 괜찮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머리에 충격파를 치면 정신이 좀 돌아올지 중얼거리며 치료를 이어간다. 마스크가 서비스직 여럿 구했을 거다. 혹시 상대하기 힘든 환자가 온다면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자. ‘이 사람은 몸이 아픈 게 아니라 정신이 아픈 사람이다.’ 모든 대화에 짧은 대답을 고수하며 치료를 끝내고 팀장님께 치료 중에 있었던 상황을 전달한다. 나중에 더 심해진다면 치료사를 변경하거나 도수치료를 제외한 치료를 진행하게 된다. 오전에 4명의 환자를 치료하고 남는 시간에 어떤 치료를 했는지, 환자의 상태는 어땠는지 환자 차트를 작성한다.


1시 점심시간이 되었다. 대부분의 직장은 12시부터 점심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활용해 오는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대다수의 병원은 1시가 점심시간이다. 입원실이 있는 병원이 많아서인지 점심은 무료로 제공되는 편이다. 식사 후 누워서 쉴 수 있는 것이 두 번째 장점이다. 1시 50분 오후 근무 준비를 한다.


2시 목 통증 환자가 방문했다. 나는 환자분들이 눈을 감고 계시면 필요한 정보 외에 아무런 말을 걸지 않고 뜨고 계시면 스몰톡을 하는 편이다. 대부분 눈을 뜨고 계신 분들은 말을 걸면 대화가 계속되거나 먼저 대화를 시작하신다. 하지만, 이 환자는 매번 늘 특이하게 눈을 뜨고 계시면서 대화를 이어가시지도 먼저 말을 걸지도 않으신다. 어색한 침묵을 이어가며 치료하다가 너무 궁금해서 여쭤본다.


“눈 뜨고 계신 거 불편하지 않으세요?”

“아 좀 이상한가요?”

“이상한 건 아닌데 조명 때문에 눈이 부시거나 불편하실까 봐요.”

“열심히 해주시는데 눈을 감고 있는 건 좀 싸가지 없어 보이잖아요.”

“예? 어디가요? 전혀 상관없는데요! 편하게 눈 감고 계셔도 괜찮아요!”

“눈을 감고 계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주무시는 분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대부분 눈을 뜨고 계시면 대화를 하시는데 그렇지도 않으셔서 궁금해서 여쭤봤어요.”

“아 제가 하루 종일 컴퓨터만 보면서 일을 해서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잘 안돼요. 스몰톡 같은거 잘 못하고….”

“부담 갖지 마시고 편하게 치료받으세요!”


새로운 사실과 환자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 다음 치료에서 직장 동료, 지인분들께 여쭤봤는데 대부분 이렇다며 개발자들의 특징일 수 있다는 더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셨다.


3시에 한 분을 더 치료하고 5시까지는 별다른 예약이 없다. 이 시간 동안 공부하거나 휴식을 취한다. 치료를 하다보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친한 친구, 지인에게 오히려 가까워서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편하게 하신다. 치료실 밖에서는 누군가의 부모, 자식, 사장, 상사, 스승 등 정말 다양한 삶과 직업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치료실에 들어 온 순간부터 나와는 그저 치료사와 환자의 관계가 된다. 치료사는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으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도 지인에게 그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을 존재가 된다. 환자들이 하는 이야기에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들이 녹아있다. 그렇게 인생을 배우기도 한다.


5시쯤부터는 정말 정신없이 지나간다. 치료 시간은 병원마다 다르지만, 우리 병원은 30분 또는 1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약이 연달아 있다면 화장실에 갈 틈도 없다. 저녁 먹을 시간은 당연히 없다. 30분~1시간 안에 치료실에 들어가고, 치료와 예약, 그리고 나오기까지의 모든 것을 마쳐야 한다. 만약 예약이 다 차 있는 상태에서 치료가 끝났는데 갑자기 질문을 한다면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질문을 치료 시작이나 중간에 한다면 훨씬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데 말이다. 만약 환자가 지각이라도 하게 된다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늦게 온 만큼 치료를 짧게 진행하면 되는 일이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해야 하는 치료도 많고 시간이 짧다고 화를 내는 환자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치료를 매번 칼같이 끝낼 수 없기 때문에 치료하다 보면 조금씩 시간이 밀린다. 그렇게 되면 환자들의 예약 시간에 맞추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정말 예민해진다. 


예민함을 숨기며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머리는 산발이 되고 녹초가 될 때쯤 8시 퇴근 시간이 된다. 마지막 타임까지 치료가 있으면 대부분 8시 5분쯤 치료가 끝나는데 마무리가 빨리 된 다른 부서 선생님들도 모두 퇴근을 못 하고 기다리고 있다. 이보다 더 눈치가 보일 순 없다. 환자 예약을 확인하고 차트를 작성하고 치료실 정리를 한다. 환복 후 8시 20분 퇴근을 한다. 집에 도착하면 약 9시. 운동하고 씻고 공부를 조금 하면 금세 12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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