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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회사 사람들의 농담

by 커리어걸즈

1. 원자재는 주로 선박으로 운반한다. 그 때문에 한 운반 건마다 ‘항차'라고 보통 부른다. 직장에서 “OO 씨, (장기계약을 맺은 여러 항차 중) 첫 번째 항차 어떻게 됐어?”, “두 번째 항차 ETA(Estimated Time of Arrival, 입항 예정일)가 언제야?” 등의 질문을 흔하게 들을 수 있다.


얼마 전 팀 회식이 있었을 때 12명의 팀원이 모두 타야 해서 여러 대의 택시를 불렀다. 선배의 “OO 씨, 두 번째 택시 언제 와?"라는 물음에 나도 모르게 “두 번째 항차 4분 뒤에 온답니다.”라고 대답해 버렸다. 순간의 정적 후에 모두가 빵 터졌고, "우리 진짜 항친놈(항차에 미친 놈들)이다….”라며 웃었다.


2. 모든 일이 계약대로만 되면 정말 좋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그 때문에 항차 취소(판매하려던 항차가 취소되는 것), 전환 판매(취소된 물량을 수요처가 받을 수 없게 되어 다른 수요처를 찾아 판매하는 것)를 하는 경우도 많다. 혹은 계약한 품질을 지키지 못해서 Reject(수요처가 계약 품질에서 벗어나는 상품을 반입 거절하는 것) 되는 경우가 있다. 계약 품질에는 여러 항목이 있다. 예를 들면 니켈의 경우 순도가 높을수록 고품질로 평가받는다.


이런 업무 용어는 상사인들이 실생활 이야기를 할 때도 자주 쓰인다. 한 번은 소개팅 후 애프터 약속을 잡았다가 취소당한 직장 동료가 우울해하며 불만을 토로하는 일이 있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우리는 말했다.


“어쩌다가 항차 취소가 됐대?”

“아무래도 Reject 될 만한 저품질이었나 보지….”

“전환 판매해야겠는데?”

“순도가 너무 낮아서 전환 판매도 어려울 것 같은데? 넌 이제 블랙리스트 공급선이다.”


한순간에 모든 영업사원에게 전환 판매조차 포기당한 저품질 니켈 직장동료가 더욱 절망하는 걸 보며 동료들과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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