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무원을 시작한 첫 1년차는 사람들, 생활루틴, 말투, 용어 등이 새롭고 어려웠기 때문에 주어지는 일을 열심히 했다. 고유 업무부터 지원 업무까지 배우면서 늘 질문을 달고 살았다. ‘왜’라는 말보다 ‘어떻게, 얼마나, 무엇을’ 주제로 과에 계신 모든 계장님께 끊임없이 질문을 퍼부었다. 너무 많이 묻는 건 아닌가 고민했지만 다들 적극적이고 열심히 일한다고 좋아해 주셨다. 혼자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보다 질문하며 방향을 수정해 가는 게 좋다고 하셨다.
1년차의 과도한 열정으로 내게 필수적으로 할당된 업무는 아니었지만, 자발적으로 발표를 했다. 그 당시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유행하면서 90년생들에 대해 소속되어 있는 부서에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셨다. 그래서 나에게 "주무관님이 90년생 문화나 줄임말 등을 알려주는 교육을 해주면 좋겠다." 라고 말씀을 주셨다.
일은 그 말로 인해 시작되었다. 처음에 20명 이내 인원 앞에서 발표하는 상황으로 인지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대강당에서 70명 앞에서 발표하는 일이었다. 아주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지만, 발표를 준비해 갔다. 줄임말 퀴즈로 가볍게 분위기를 풀고 90년대생 특성, 문화들을 알려주면서 발표를 마쳤다. 다행히 많은 분께서 좋아해 주셨다.
시험감독관 지원을 가게 된 상황이었다. 그 당시 코로나 확진자는 별도로 격리된 공간에서 시험을 쳤는데, 바로 그곳에 갈 인원을 지원 받고 있었다. 이 당시에도 이성이 열정을 이기지 못하고 손을 들고 말았다. 특별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코로나가 심해질 때라 나 또한 확진될까봐 무섭기는 했다. 무서운 상황을 참고 시험 장소로 이동하고 방호복을 모두 착용하고 두 시간 가까이 시험 감독을 진행하였다.
보통 시험은 7월에 치러지는데, 무척이나 더운 날씨였다. 그때 더위를 잊지 못한다. 그 당시 확진자와 접촉하면 대중교통 이용이 제한되었기에 감독 지원 업무를 마치고 택시를 타고 퇴근했다. 퇴근 후 일주일 동안 관찰 기간을 가진 후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은 후에야 밖을 나갈 수 있었다. 출근을 못 한다는 점에서 살짝 좋았기는 했지만 몸만 집에 있을 뿐 핸드폰으로는 계속 업무 보았다.
2년차 때는 1년의 경험치로 더 잘 해내고 싶었고, 주변의 편견을 깨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가장 많은 것을 경험했고, 또 가장 힘든 시기였다. 원래 하던 고유 업무인 행정 업무를 전보다 실수 없이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보고서 작성도 1년차보다 더 발전된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꼈다. 여기서 발전된 보고서라고 하면 잘 쓰는 건 기본이고 글씨체, 문단, 자간, 크기, 배열 등 양식뿐만 아니라 한 페이지에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얼마나 잘 담아내는가, 쓰이는 문구는 적절하게 표현됐는가 하는 등이다.
대부분은 군인들은 보고서를 너무 잘 쓴다. 그래서 늘 보고서를 작성하고 계장님, 과장님께 검토받는 그 순간이 너무 떨린다. 검토받은 보고서에는 밑줄과 체크, 수정이 필요한 문구, 자간, 오타, 문단 구성 등의 수정 사항이 표기되어 있다. 이러한 수정 사항이 줄어든다는 게 보고서를 잘 쓴다는 것이다. 2년 차 당시에는 한두 개 정도 체크 사항이 줄어 들었던 것 같다.
원래 업무인 행정업무 이외에 계약 업무 등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더욱더 힘들게 했다. 여기에 하나 더 민원과 관련된 전화 업무 강도가 강해지면서 스트레스가 최고치에 달했다. 다양한 요청 이외에 유사 악성 민원이 들어오면서 스트레스에 불안감까지 더해졌다. 주변에 아무 소리도 안 나는데 계속 전화 소리가 들리고 이명현상이 생겼다. 이 현상 때문에 잠 또한 제대로 청하지 못해서 공황과 유사한 상황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회사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모든 에너지를 회사에서 다 써버리는 일이 허다 했다. 몇 개월 동안 안 좋은 몸 상태가 지속되었다.
6개월이 넘어갈 때쯤 도저히 이렇게는 못 버티겠다는 생각에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러닝, 명상을 하며 아무 생각 하지 않는 연습을 했다. 그림, 크로스핏, 프리 다이빙, 서핑, 뮤지컬, 콘서트 보러 가기,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좋은 문구 기록하기, 감정 일기 등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하나 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가벼운 스트레스 관련 약과 영양제를 챙겨 먹었다. 빠르게 힘든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생각하며 버틸 힘과 용기가 생겼다.
3년차 때는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지고 능률이 오른 시기였다. 새로운 이벤트가 생겨도 해결할 수 있는 경험치가 생겨 2년차 때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한계치를 인정하는 시점이었다. 할 수 있는 한계치가 분명히 존재하고 한계치에 달할 때는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1년차 때는 오히려 도움을 잘 요청했는데 2년차 때는 스스로 해내야만 하는 상황이 많아지면서 어떻게든 주변에 민폐 끼치지 말고 최대한 혼자 해내야겠다는 강박이 있었다. 하지만 3년차 때 협업 업무를 담당하면서 그 강박을 깰 수 있었다.
내가 담당하는 고유업무에 민원이 들어왔다. ‘지금 그 업무가 진행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 조처를 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내용이었다. 관련 업무 규정들을 살펴보고 수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수정 사항을 진행하면서 다른 사항들은 전반적으로 어렵지 않았지만 수정을 요청하신 분과 소통이 어려웠다. 수정하는 방향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행해 주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더 큰 기관에 민원을 넣겠다.’는 등의 말씀을 하시면서 메일, 전화로 일방적인 소통을 했다. 결국 대화가 안 된다고 느꼈는지 내 상관과 대화하며 그 상황을 풀어 나가고, 나는 행정 및 계약 관련 사항만을 진행하고 일을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가능한 일, 가능하지 않은 일을 잘 구분하는 것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다.
4년차인 현재는 일이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져 일에 대한 열정은 줄어들었다. 열정은 줄었지만, 오히려 업무량이 늘고, 새로운 이벤트는 계속 생기고, 부담감은 커지는 상황이다. 또한 승진, 월급, 낮은 만족감, 성취감 등도 열정을 꺼지게 한다. 일을 배우느라 초반에 보지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들이 지금은 직업에 대한 생각들을 흔들어 놓는다.
매일 일을 하러 갈 때 아무 생각 하지 않고, ‘일’이라는 그 단어에 집중해서 하루를 보낸다. 스트레스가 사라질 수 없지만 단순하게 생각하게 되고 퇴근하는 순간부터 어느새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어 좋다. 그래도 불평거리가 생기고 지치게 되는 순간은 가끔, 아니 자주 온다. 불평하다가도 불평거리에 대해 글로 쓰면서 ‘그렇게 불평할 시간에 내가 더 잘 해내고 나를 채워가는 시간을 가지자. 그리고 언젠가 새로운 일을 위해 떠나자.’ 라고 다짐을 한다. 이 다짐은 매번 작심삼일이지만 작심삼일도 백 번 하면 300일이 된다.
그렇게 계속 스스로를 다독이며 일을 한다. 참 어렵다. 몇 년 동안 일해 왔지만 일하는 과정이나 다른 것은 다 적응하면서 일하면서 겪는 마음만큼은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이런 계기를 통해 현재 일에 다시 고민하게 되고 새로운 일도 도전할 기회가 생기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