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TC 출신들은 대부분 의무복무만 마치고 전역(퇴역)을 선택한다. 나 역시 의무복무기간 2년 4개월만 복무하고 퇴역을 선택했다. 군에 남아있는 멋있는 선배님들을 보며 군인을 평생직업으로써 고민했다. 하지만 퇴역을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불안정한 주거 여건이다. 군에서 주는 숙소는 정말 열악하다. 군 숙소를 이용 못 하거나 안 할 경우 주택수당이 지급되며 월 16만 원이다. 내 지인의 경우 부대 숙소에 공실이 없어서 반강제로 월세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제대로 된 집을 구하려면 월 16만 원은 너무 부족한 금액이었다. 또한 장교는 잦은 부대이동으로 인해 평균 2~3년 단위로 이사를 가야 한다. 가족이 있으면 가족도 같이 이사를 하거나 주말부부처럼 지내야 한다. 또한 아무리 우리나라가 작다고 하지만 전국을 돌아다니며 근무하는 것, 특히 격오지에서 근무하는 것은 적응하기까지의 시간도 걸릴뿐더러 연고 없는 외딴곳에서의 외로움이 사무친다.
두 번째는 진급의 어려움이다. 군인연금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19년 6개월 이상 복무를 해야 한다. 이는 소령 진급에 성공해야 해당 기간을 채울 수 있는데, 진급하지 못하고 대위로 전역하면 사회에서 포지션이 애매해진다. 나이는 들었지만, 군에서의 경력이 사회에서 활용될 만한 전문성을 지니지 못할 경우 난처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위로 전역하는 경우 군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하기 위해서는 능력과 노력만으로 부족하다. 본인을 밀어줄 힘 있는 지휘관과 누구와 경쟁하게 될지 모르는 운도 작용해야 한다. 부대에서 추천 순위를 매겨서 진급 심사에 들어가게 되는데 1순위로 추천되어야 진급할 확률이 높아진다. 추천 순위는 지휘관에게 결정 권한이 있다. 실제로 굉장히 무능하지만, 지휘관의 고향 후배라는 이유로 유능한 사람들을 제치고 추천 순위 1순위를 받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다행히도 이 사람은 1순위를 받고도 진급하지 못했다. 이렇게 진급의 어려움으로 인해 대위로 전역하는 많은 선배님을 보며 군에 모든 것을 바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세 번째는 실추된 명예이다. 군인은 명예로운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외부적으로 군인의 명예는 날로 실추되고 있다. 우선 외부적 요소는 각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사건/사고들이다. 신병교육대대에서 얼차려를 받은 훈련병이 사망한 사건, 해병대에서 태풍피해 대민 지원을 가 무리한 수색으로 물에 휩쓸려 사망한 채상병 등 내가 복무하는 2년간 정말 많은 사건이 있었고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사건도 많다. 이러한 사건들은 국민이 군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들었고 군인은 명예로운 신분이 아닌 나라에 끌려가서 개죽음을 당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내부적 요소로는 약화한 전투력이다. 위의 사건과 더불어 군에서는 장병의 인권/안전 문제가 가장 큰 이슈다. 물론 그 누구도 군복무 간 다치거나 죽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군에서 가장 최우선시되어야 하는 가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군인을 적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존재가 아닌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데려가야 하고 조금만 힘들어도 열외로 해야 하며 공포탄도 위험하니까 입으로 “땅” “땅” 소리를 내며 훈련한다. 이런 순간들이 올 때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정말 나라를 지키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곤 했다.
이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라를 지키고 있는 훌륭한 군인들이 많다. 나 역시 군 생활을 계속 이어 나갈지 말지 고민하던 시절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질문해 보았다. 그들이 군 생활을 계속하길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나는 군인 체질이야.”이다. 군 생활을 해 보니 군인이 너무나 적성에 맞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첫째, 운동을 좋아한다. 평소 움직이기를 게을리하거나 운동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운동신경이 발달하여 운동을 잘하는 것과는 별개로 땀 흘리고 움직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체력 증진을 위해 성실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둘째, 시키면 한다. 지휘관이나 상급자의 지시 사항에 대해 의문이 들더라도 일단은 한다. 어떤 사람은 ‘왜 이걸 해야 하지?’, ‘다른 방법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반문하거나 실행하기를 멈출 수도 있다. 군인이라고 해서 모든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당한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지휘관이 같은 지시를 했을 때 어떤 사람은 의문을 품고 반문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바로 실행에 옮겼다. 나는 이것이 성격적인 부분이라고 보았다. 어떠한 요구사항에 수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성격은 군 특성상 수직적으로 업무가 하달되는 조직의 운영에 꼭 필요한 부분이며 지휘관들이 부하를 평가할 때 높이 사는 역량이기도 하다.
셋째, 튀지 않는다. 쉽게 말해 ‘재 조금 특이해.’라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다. 독특한 나만의 세계가 있고 난 나의 길을 간다는 식의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쁨받기는 어려울 수 있다. 군인은 머리 스타일을 규정하고 같은 전투복, 전투화, 전투모를 쓴다. 군에서 보이는 것들을 깔끔하게 통일하는 것은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생각까지 통일할 수는 없겠지만 군에서 중요시하는 가치가 튀는 것과는 반대임은 분명하다. 내 생각, 나의 고집이 있다는 것이 절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의 생각을 조직과 어우러지게끔 표현하고 조직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면 능력 있는 군인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개성을 뽐내고 싶은 멋쟁이보다 별생각 없고 무난하지만, 책임감 있는 사람이 군에 잘 적응할 수 있다.
나는 이 세 가지 특성에 그럭저럭 부합하는 사람이었지만 격오지 근무와 이사를 자주 할 수밖에 없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군인 체질이 아니어도 군인연금 혜택이나 공무원이라는 장점을 보고 군인이 된 사람도 많다. 이유가 뭐가 됐든 군인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직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