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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걸즈 Oct 24. 2024

간호사의 고난과 극복

에크모를 적용하게 되면 약간의 변화만 있어도 환자분의 모든 활력징후가 흔들리고, 상태가 시도 때도 없이 변화한다. 보통 급작스럽게 안 좋아지는 경우가 많은데, 한번 죽을 고비를 넘긴 상황이라 그런지 사경을 헤매는 그 시간 동안 몸 안 장기의 상태가 순식간에 악화한다. 


이를 대처하기 위해선 정말 많은 양의 공부를 해야 한다. 특별히 교수님 직속 팀으로 계속 교수님과 함께하다 보니 지식의 범위를 따라가기 벅찰 때가 많았다. 방법은 그저 끊임없이, 시도 때도 없이 공부하고 알아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 공부는 팀을 들어온 시점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까다로운 에크모인 만큼 이것에 대해서만 정리한 책이 따로 있다. 간호학과 전공책만큼 두꺼운 이 책은 내가 죽을 때까지 봐도 이건 못 보겠다 싶은 분량이다. 그래서 이 많은 걸 다 하자니 그저 벅차게만 느껴졌다. 책을 다 읽기엔 그 안에 있는 용어 하나하나가 너무 어려웠고, 한 페이지 읽는데도 한세월이 걸렸다. 그렇다고 무작정 지식을 습득하자니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려웠다. 


이에 스스로 생각해 낸 방법은 내가 일하는 도중 물음표가 생기면 그때그때 공부하자는 거였다. 환자분의 상태에 따른 교수님의 처치, 다른 과에 협진을 냈을 때 그 과에서 시행하는 처치, 약을 준다면 이 약은 왜 주는 것인지 기전을 알아보는 등 가지각색의 방면에서 찾아보며 공부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에크모에 대해, 처치처방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고, 또 깊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체력적인 문제였다. 어렸을 적 운동을 꽤 했던 터라 체력은 자신 있다고 항상 얘기하고 다녔지만, 알고 보니 그저 나약한 인간이었다. 5년의 세월 동안 3교대 근무를 지속하다 보니 몸이 점점 망가졌다. 급기야 몸에 이상이 생겨 일주일 정도 입원하는 일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다 보니 남의 건강을 챙기느라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음을 깨달으며 후회했다. 남의 건강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소중히 대했어야 할 내 건강을 돌봐주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미안함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동네 필라테스에 등록하고 집에서 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필라테스 정기권이 다 끝난 시점에서 돌아보자면 처음에 결심한 것처럼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의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해 방문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틈틈이 집에서 하는 운동과 걷기 운동을 하며 건강을 지키고자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매일 영양제도 빼먹지 않으면서 말이다.


몸이 망가지면 정신도 무너진다고 한다. 입원했던 시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된 신혼 초였는데, 한창 행복해야 할 때에 스스로 너무 힘들고 지치다 보니 바로 옆에 있는 남편에게 많이 짜증 내고 화를 냈다. 싸우기도 매일 싸웠던 것 같다. 내 안에 안 좋은 모습들이 보이지만 그걸 고치기엔 마음에 힘이 없었다. 


그래서 이를 단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기독교를 믿다 보니 성경을 읽거나 기도하는 것, 매일 자기 전에 일기를 쓰는 것 등 최선을 다해 마음 관리에 힘썼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조금 더 성숙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후 1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스스로 돌아보자면 그동안 마음이 꽤 단단해졌음을 느낀다. 아직도 화나고 스트레스받는 일들은 많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자세는 많이 변했다. 해결책 없는 걱정과 고민은 내려놓게 되었고, 힘든 상황에 대해 잘 이야기하는 방법은 남편을 통해 배웠다. 


지나고 보니 힘든 시간이 많이 있었지만,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나는 성장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 어렵고 큰 문제들을 마주할 것이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그를 통해 성장할 나를 기대하며 당당히 이겨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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