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순하다 Sep 26. 2024

크로스핏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이유

파워 내향인도 크로스핏을 합니다.

 평생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다. 시즌마다 등록했던 헬스장에는 '기부천사' 역할을 톡톡히 했고, 모두 한 번쯤 해본다는 요가나 필라테스는 몸의 뻣뻣함 때문에 동작을 억지로 따라 하다 담에 걸리기 일쑤였다. 특히 그룹 수업에서는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과 매번 어색하게 내외해야 하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렇게나 운동을 피할 이유는 차고 넘쳤지만 사실은 모두 허울 좋은 핑계라는 것을 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이 크로스핏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 밧줄 타고 매달리며 쇠질 하는, 매우 험악해 보였던 그 운동을 말하는 건가? 나는 그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그 길로 남편은 곧바로 크로스핏에 등록했고, 나는 과격한 운동은 맞지 않는다며 우아하게 계속 담 걸려가며 요가를 하겠노라 선언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남편은 꾸준히 크로스핏을 해왔고, 정말 좋은 운동이라며 1년 내내 함께 운동하자고 권유했지만 나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힘들고 격한 운동이라는 것도 꺼려진 큰 이유 중 하나였지만, 더 큰 이유는 나의 내향적인 성향 때문이었다. 과하게 파이팅(!!)을 외치며 외향인들만 모여 있는 것 같은 크로스핏을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의 몸이 점점 탄탄해지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고, 내향적인 성향의 남편조차 꾸준하게 크로스핏을 하는 모습을 보며, 이 운동만의 특별한 매력이 무엇일까 하는 아주 조금의 미묘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침 결혼식 직전이기도 했고 부기나 빼볼 겸, 남편이 다니던 박스에 일일 체험을 신청해 하루만 운동해 보기로 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1년 3개월이 넘는 시간을 크로스핏과 함께하고 있다.


 무엇이 나를 크로스핏으로 이끌었을까? 체험하던 첫날, 숨이 턱끝까지 차고 정말 힘들었지만, 운동이 끝난 후의 뿌듯함과 상쾌함은 그 어떤 운동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극심한 근육통은 덤이었다. 혼자 운동했더라면 한계까지 밀어붙이기 어려웠겠지만, 그 순간 함께 운동하는 회원들과 코치님의 도움이 있었기에 "내 몸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운동을 하다 보면, 가끔 "내가 왜 돈을 내면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지?" 싶다가도,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힘든 상황이 있을 때 "내가 그런 힘든 운동도 이겨냈는데, 이 정도는 못 하겠어?"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아오르면 역시 크로스핏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1년 남짓 크로스핏을 하면서 얻은 것은, 이전 운동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탁월한 근육량과 급격히 늘어난 체력, 그리고 생각조차 없던 동작들을 수행해 나가며 느끼는 자기 만족감과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이것만으로도 크로스핏을 할 이유는 충분하다. 박스마다 분위기는 다를 수 있지만, 내가 다니는 박스 기준에서는 부담스러울만한 커뮤니케이션은 없었다. 오히려 서로 격려하고 운동 팁을 주고받는 대화는 오히려 운동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됐고, 파이팅을 외치는 외향인은 다름 아닌 내가 되어있었으며, 거의 매일 보는 사람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면서 성인이 되고 나서는 한 번도 없었던 동네 친구라는 것이 생겼다. 이곳에서 나이도 직업도 성향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물 안 개구리 같았던 나의 세계관이 확장된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여력이 되는 한 계속해서 크로스핏을 하고 싶다. 앞으로 운동하면서 다양한 부상이 있을 수 있고 지속적으로 근육통에 시달릴 예정이며, 때때로 권태기처럼 운태기에 빠질 때도 있겠지만, 이렇게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이 나에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내 삶 안에서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크로스핏을 하러 간다.






유튜브 알고리즘도 더 이상 새롭지 않을 때,

보통 사람의 단순한 취향을 엿보다.

취향 큐레이션 [ 단순레터 구독하기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