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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더언니 Sep 26. 2015

결혼이 뭐길래.

망할 놈의 결혼.


2000년부터 계속 떠돌아다녔다.

"엄마, 우리 언제 한국 가?"라고 물어보던 나였는데.

스무 밤만 더 자면 한국에 갈 수 있다며 설레어하며 일찌감치 짐을 싸던 단발머리 중학생인 나는 이제 없다.



점점 한국에 올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가족 모두가 외국에 거주하고 있고. 나의 집도, 나의 마음도 이미 '상해'에 있으니까.

재미있게 하루하루를 지내는 지금의 삶. 사소한 모든 것에 행복한 의미를 부을 수 있는 지금의 내가 좋다.

게다가 지금 나에게는 내가 돌봐야 할 애기가 있고, 식물이 있다.

적당히 외롭긴 해도, 인생 뭐 있나. 누구나 외로운 건 마찬가지이니까.


 

인천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모두가 한국말을 쓰는 환경이 당연한 것인데도, 나는 그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히면 sorry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오는 내 모습이 오히려 재수 없게 느껴진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 정말 들어오기 싫은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나이도 꽤 있는데, 시집도 가지 않고 좋지 않은 일들을 겪어가면서까지 굳이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친척들에게 보여주기가 민망해서다.






그런데, 내가 아는 그녀와 그가 결혼을 했다.


릴에서 만난 그녀는 누구보다 유쾌하고 털털하지만 새초롬하고 여리하며 생글생글 눈웃음이 너무나 예뻐서 늘 인기가 많았다.

뭄바이에서 만난 그는 188cm의 훤칠하고 능력 많은 호탕한 경상도 상남자인지라 그의 주변에는 늘 미녀들이 많았다.


어느 날, 카톡 리스트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둘이 왠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소개팅할래?'라는 한 마디로 그녀와 그는 만난 당일부터 사귀더니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감사하다는 뜻으로 그들은 나에게 비행기 티켓을 보내주었고, 나는 부랴부랴 한국에 오게 되었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평생 이 사람만을 사랑하겠습니까?'라는 그들의 결혼 서약에 한껏 박수를 쳐주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을 보며 한국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대로 친척들과 어른들은 "왜 한국에 왔니"라는 질문을 했고,

"여차저차 해서 한국에 왔어요"라는 대답이 끝날 때,

"너나  잘하지.."라는 대답까지도 나의 예상과 딱 들어맞았다.  

선 자리도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왔다.



결혼이 뭐길래.




추석을 맞이하여 음식을 준비하는 이모를 도와서 물에 불린 땅콩 껍질을 도란도란 까는데 보통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다.

손가락 끝이 퉁퉁 불어 지문이 다 쪼글 아들 었다. 하룻밤에 다 끝내지 못하여 그다음 날도 같이 까야만 했다. 지금까지도 타자를 치는 나의 손 끝이 아리다.


"이모, 땅콩으로 뭐하시게요?"

"시아버지가 땅콩 죽을 참 좋아하셔.."

"저는 이래서 결혼하기 싫어져요. 나는 지금도 엄마 아버지 밥상을 제대로 차려드릴 수가 없는데.. 이모는 이런 걸 명절마다 하는 거잖아요. 이렇게 수고스러운데, 결과는 고작 죽 한 그릇 이라니. 이게 이렇게 고생스러운지 시아버지는 모르시는 거잖아요. 결혼은 정말 집안과 집안이 만나는 거라던데. 이게 그런 거네요."


"그래도 결혼은 하는 게 좋아..."


.....



결혼이 뭐길래.



사실, 나에게도(이래 봬도...) 결혼하자는 남자는 여럿 있었다.


파리 노트르담 앞에서 마치 영화처럼, 운명적으로 만났던 그는 돈이 아주 많은 사업가였고, 이제껏 자신은 한 번도 자신에게 온 행운을 알아보지 못한 적이 없다며 만난 지 삼일 만에 프러포즈를 하였다. 그는 내가 있는 곳이 어디던 그냥 아무렇지 않게 나를 방문하였다. 하지만 휴가 때 그의 전용기를 타고 캐나다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같이 가자는 그의 제안이 이루어지기 전에 우리는 헤어졌다.


"늘 따뜻하게, 행복하게 해 줄게"라고 다가오던 10년 지기 친구. "이 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했고, 드레스는 물론이며 신혼집에 페인트질까지 마쳤고 혼수도 장만하였지만, 결국은 끔찍한 상처를 안고 헤어져야만 했다.


이제는 너무나 지쳤다고 생각이 들 때, 다시 어떤 남자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하와이에서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하였고, 나는 또 병신같이 그 달콤한 말에 설레어하였지만. 역시나 그도 결국 스쳐가는 인연이 되었다.    




그 이외에도 이 글을 보며 찔리는 남자들이 여럿 있겠지. 제발, 남자들... 부탁인데. 그때 당시에 나에게 말하는 그것이 진심인 건 알겠는데. 제발 진심이 전심이 될 때까지 참아줬으면 좋겠다. 서툰 진심을 강요하는 것만큼 상처가 되는 게 없다는 걸 지들이 당해봐야 알 텐데 말이야.





아무튼 지금 나는, 아무런 기대도, 아무런 약속도 믿지 않는다.

너덜너덜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결혼이라는 게 내 인생이 아닐지도 모른다며 포기한 게 나에게는 당연할 수도 있다.

뜨거운 것은 잠시이지만, 따뜻함은 오래가듯이, 나는 이제 '뜨거운 것'이라면 질색을 한다.


그러나,


 

내일 당장 저 큰 짐들을 이끌고 낑낑거리며 텅 빈 집에 스위치를 킬 때.

아무리 씩씩하게 다니더라도, 가끔 혼자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아직도 길을 못 찾고 우리 집 근처를 뱅뱅 맴돌 때,

실컷 장을 보고 양손 가득 비닐봉지를 들고 너무 무거워서 몇 번이나 내려놓았다가 들었다가를 반복할 때,

반찬을 한껏 만들었는데 혼자 다 먹기가 버거울 때,

깻잎무침을 먹는데 두장이 같이 올라와서 누군가 한 장을 가져가 주었으면 할 때,

김장을 하고 금방 만든 김치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함께 맛보아 주었으면 할 때,

침대에 누워 한 동안 잠이 오질 않아 눈만 꿈벅거릴 때,

가끔씩 화장을 마치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예뻐 보이는데 점점 이럴 날이 머지않았다고 느껴질 때,

같이 손잡고 걸어가시는 노부부의 뒷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일 때,

피아노를 칠 때 옆에서 누군가 함께 흥얼거려주었으면 할 때,

저 멀리서 늙어가시는 부모님에게 효도라는 걸 하고 싶을 때,

아내로서, 엄마로서. 자신이 속해야 할 곳이 어딘지 너무나 잘 인식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친구들을 볼 때,

그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이고 예뻐 보일 때.






나는 또 그 망할 놈의 결혼이 하고 싶어 질지 모른다.





도대체 결혼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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