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달 아래 피는 꽃: 월하미인

(月下美人)

by 소연

나는 선인장이다, 어느 그믐달 아래 겨우 몇 시간 피는 꽃을 가진 선인장.


나를 키워주는 노부부는 나를 향기가 나는 이쁜 꽃일 거라 생각해서일까. 몇 년 내내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 나를 사랑해 준다. 애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아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속사여주며 내 봉우리를 간지러울 만큼 애를 태워 몸을 배배 꼬게 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난 그들의 인내심은 어디까지일까 싶어 몇 해 동안 지켜보았다. 물론 그들이 나의 삶을 허락하기에 지켜본 게 맞겠지만 말이다.


하늘에서는 단 하룻밤만이 허락되었지만 그럼에도 오늘만큼은 노부부 앞에서 난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달빛 아래 춤추듯 아름다운 여인에 모습을 한 날 보고 그들은 무슨 말을 전해줄까 나도 모르게 기대를 하게 된다. 동시에 오늘 나의 꽃이 지고 나면 난 온전한 가시 투성이의 모습일 텐데 그런 나의 모습까지도 지금까지처럼 아껴해 주고 사랑해 줄까 두려워지기도 한다. 괜찮다, 나는 단 한 번뿐인 만남에서 그들의 일생동안 기억될 테니까. 나는 밤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굉장히 화려하고 매혹적인 꽃을 피우는 그런 선인장이니까 말이다.


문뜩 그 노부부의 아들이 스치듯 내게 속사이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미인박명의 팔자를 가진 여인에 환생일 것이라고. 참으로 비통하다, 나의 아름다움은 이리도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 이라니. 오늘 저녁 나를 보고 노부부가 덧없는 사랑이라고 말해주지 않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 나를 보자니 한심해졌다. 그냥 한해 더 기다릴까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도 오랜 시간을 참아왔다. 나의 본질이 잊히는 것이 두렵기도 했고, 그저 바라만 보며 사랑을 주는 그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나를 사랑해 줘서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난 입이 없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오늘 밤 나의 모습을 보여주며 말할 것이다. 가장 짙은 향기와 가장 어두운 곳에서 누구보다 눈부신 백색으로, 그들이 잠드는 창가 앞에서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피어날 것이다. 혹여 그들이 잠들어 나의 모습을 보지 못해도 괜찮다. 그들의 변함없는 사랑만이 오롯이 나를 꽃피우게 했음이 사실이니까.


덧없는 사랑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나지만, 나에게 있어 사랑이란 오래 참고, 자랑하지 않아도, 때론 아무런 대가 없이도 존재한다는 걸 나는 한평생 살아가며 오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그러니 나의 꽃말보다 더 오래도록 남을 기억 하나를 오늘 밤 세상에 남겨야겠다.



그리고 이내, 조용히 피어냈다. 모든 시간이 멈춘 듯한 깊은 밤, 달빛에 반사된 선인장의 꽃잎은 마치 오래전 부부가 꿈속에서 상상했을법한 여인의 옷자락을 보는 거 같았다. 은은한 향기는 그들의 지난 세월 속 첫 입맞춤처럼 맴돌았다. 잠결에 일어난 노부부는 창가를 바라보며 한참을 말없이 선인장을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아주 작고 조용한 목소리로, 기다리길 잘했다며, 정말 아름답다며 선인장을 향해 속삭였다.



나는 선인장이다.


비록 아침이 되어 다시 가시로 뒤덮인 모습이지만 괜찮다. 나는 다시 나의 꽃이 피기까지 기다리기로 했으니 말이다. 또 한 번의 사랑을 피워내기까지, 조용히 그리고 꿋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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