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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유강인 19_03_유산 300억과 백미 노인 문자

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by woodolee

열흘 뒤

2015년 5월 29일, 저녁 7시 30분


굵은 눈물이 책상 위로 뚝뚝 떨어졌다. 원목 책상이 눈물로 흥건했다. 모두 윤이슬이 흘린 눈물이었다.


졸지에 어머니를 잃은 딸이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참지 못했다.


남자 친구인 이동호와 친구들이 그녀를 위로했지만, 슬픔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마음을 추스르려면 1년 아니, 몇 년이 걸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장례식장과 화장터에서는 애써 눈물을 참았지만, 장례가 끝난 후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원통하고 또 원통했다.


사건 당일, 어머니 정연지는 근무 중이었다. 그녀는 보험 설계사였다. 한적한 대로변 카페에서 고객을 만나, 상품 설명을 하고 카페에서 나왔다.


사무실로 복귀하던 중 참변이 생겼다.


길을 걷던 정연지는 인도를 침범한 차에 부딪혀 3m나 날아갔다. 이후 사고 차량에서 한 사람이 차 문을 열고 튀어 나왔다.


그자는 정연지를 구조하기는커녕 한 손을 높이 쳐들었다. 손에 긴 칼이 들려있었다.


이후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벌어졌다.


차에 치이고 칼에 맞은 정연지는 곧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다. 몸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깨끗했던 옷이 피로 붉게 물들었다.


그 모습을 본 행인이 재빨리 119에 신고했다.


5분 후, 구급차가 달려왔다. 정연지를 구조해 인근 대형 병원인 제일 병원으로 후송했다. 그녀는 곧바로 응급 수술을 받았지만, 장기 손상과 과다 출혈로 사망하고 말았다.


정연지에게 가족은 단 한 명뿐이었다. 외동딸, 윤이슬만 홀로 남았다.


윤이슬에게 어머니는 각별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항상 딸에게 자상했고 성심성의껏 딸을 보살폈다.


특히 딸이 원하는 게 있으면 돈을 아끼지 않았다. 살림살이가 풍족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랑하는 딸을 위해 지갑을 아낌없이 열었다.


명품 옷과 초고가 화장품, 최신식 핸드폰 등 윤이슬한테 아낌없는 지원을 했다.


그런 어머니가 한순간에 사라지자, 윤이슬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엄마.”


엄마를 그리워하던 윤이슬이 고개를 돌렸다. 자기 방을 쭉 둘러봤다.


방에는 엄마가 사준 옷과 화장품이 즐비했다. 앞에 있는 컴퓨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엄마의 선물을 받을 때마다 무척 기뻤지만, 성인이 되면서부터 마음이 무거워졌다.


엄마가 없는 살림에도 하나밖에 없는 딸을 위해 무리한다고 생각했다. 기죽지 말라고 열심히 응원한다고 여겼다.


이에 윤이슬은 다짐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어머니를 잘 모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희망과 달리 세상은 예측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죽고 말았다. 하늘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후 상황도 예상과 자못 달랐다. 놀라운 일이 연속적으로 벌어졌다.


수억의 부조금이 들어오더니 엄청난 유산이 그녀를 기다렸다.


무려 300억!


어머니가 남긴 재산이 300억이 넘었다. 이는 보험 설계사가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이 아니었다.


300억이라는 숫자를 보고 윤이슬이 깜짝 놀랐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숫자였다.


5억도 많다고 여길 판이었는데 무려 300억이었다.


조사 결과, 어머니 정연지는 사업가였다. 보험 설계사를 하면서 사업도 병행했다.


그녀는 실적이 아주 좋은 의료기기 납품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이었다. 20년간 회사를 운영하다가 한 달 전쯤, 지인에게 회사를 양도했다.


회사를 양도한 금액이 딸에게 고스란히 떨어졌다.


윤이슬이 이제 알겠다며 고개를 끄떡였다. 어머니의 행동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없어 보이는 살림에도 딸이 원하는 걸 다 사준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알고 보니 어머니는 대단한 재력가였다. 남들처럼 평범한 집에서 살았지만, 실은 대단한 현금 부자였다.


‘… 왜 엄마가 말하지 않았지?’


윤이슬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엄마한테 커다란 비밀이 있었다. 대단한 재력가였지만, 이를 철저히 감췄다.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유일한 가족인 딸한테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 마치 알면 안 되는 것처럼 ….


“엄마!”


윤이슬이 엄마를 크게 불렀다. 엄마가 남긴 막대한 재산을 생각하자, 엄마가 더욱 그리워졌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키우려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서 큰돈을 번 거 같았다.


그녀에게 300억이 상속됐다. 상속세를 내야 했지만, 상속세를 내더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액이 그녀의 수중에 떨어졌다.


잠시 멍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던 윤이슬이 눈물을 닦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창문 밖은 평온했다.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퀵 오토바이가 지나다녔고 행인들이 보였다.


얼굴을 아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말을 나누며 걸어 다녔다.


동네 터줏대감인 턱시도 고양이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녀의 집은 빌라 3층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18평 집이었다.


윤이슬이 창문 손잡이를 꼭 잡았다. 창문을 활짝 열고 고개를 밖으로 내밀었다.


딱 봐도 찬바람을 맞고 싶은 거 같았다. 찬바람을 맞으며 정신을 차리고 싶은 거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과 달리 찬 바람은 불지 않았다. 5월 하순의 따뜻한 바람만이 불어왔다. 솜방망이처럼 부드럽게 피부를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렇게 윤이슬이 하염없이 바깥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삑!



갑자기 문자 오는 소리가 들렸다.


윤이슬이 고개를 돌려 핸드폰을 찾았다. 핸드폰은 책상 위에 있었다. 이에 책상으로 걸어가 문자를 확인했다.


“응?”


문자를 확인하던 윤이슬이 멈칫했다. 그녀의 두 눈을 점점 커졌다. 뭔가를 보고 깜짝 놀란 게 분명했다. 두 배로 커진 눈동자가 마구 흔들거렸다.


문자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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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슬, 살고 싶다면 나를 찾아와라.

나는 네 어머니, 정연지를 잘 아는 사람이다.

시간이 없다. 당장 나와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네 엄마처럼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다.

허언이 아니다. 붉은 원이 곧 너를 찾아올 거다.

자세한 건 메일로 보냈다.

메일을 확인해라. 어서!


백미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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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게 … 대체 뭐야?”


윤이슬이 문자를 읽고 당혹감을 느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문자를 두 번, 세 번 읽었다.


그러다 몸을 파르르 떨었다. 당혹감뿐만 아니라 두려움이 그녀를 덮치기 시작했다.


딱 보기에 장난 문자 같았지만, 계속 읽을수록 그런 거 같지 않았다.


발신자는 백미 노인이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방은 고요했다.


윤이슬이 뛰는 가슴을 달래고 생각에 잠겼다.


‘백미 노인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 이름과 엄마 이름을 알고 있어. 게다가 엄마가 죽은 것까지도 전부 알고 있어.

그리고 붉은 원! 붉은 원은 엄마가 속했던 프랑스 자수 동호회야. 붉은 원은 엄마의 유언이기도 해. 엄마가 죽기 전에 피 묻은 손가락으로 붉은 원을 그렸어!’


윤이슬이 침을 꿀컥 삼켰다. 분명 심상치 않았다.


그녀가 급히 움직였다. 핸드폰 사진첩에서 한 사진을 찾았다. 제일 병원 간호사가 보낸 사진이었다.


하얀 시트에 피로 그린 붉은 동그라미가 선명하게 보였다.


“붉은 원!”


윤이슬이 윗니로 아랫입술을 콱 깨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문자는 장난이 아니었다. 여러모로 볼 때 분명 뭔가가 있었다.


엄마처럼 비참하게 죽는다는 말에 섬뜩함을 느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뭔가를 해야 했다. 어서!


윤이슬이 자리에 앉았다. 핸드폰으로 메일을 확인했다. 새로운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10분 전에 도착한 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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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자 – 백미 노인

메일 제목 – 윤이슬, 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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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메일이 왔어!


윤이슬이 깜짝 놀랐다. 그녀가 떨리는 손가락을 들었다. 메일이 열어야 했다. 안에 무슨 내용이 들어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메일이 열렸다. 메일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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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슬, 나는 백미 노인이다. 눈썹이 백설처럼 새하얀 사람이다. 나를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다.


경기도 동인시 XXX XXX ‘다락방 커피숍’으로 찾아와라. 한시가 급하다. 너한테 시간이 없다. 곧 붉은 원이 찾아올 거다. 그자들이 너를 노릴 것이다.


자세한 건 만나서 알려주겠다. 남자 친구인 이동호도 같이 와라. 이동호를 꼭 데리고 와라. 명심해라!


커피숍으로 오면 네 엄마를 누가 죽였는지 가르쳐 주겠다.


내 말을 믿고 말고는 네 자유다. 나는 너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네 엄마를 생각해서 마지막 손길을 내밀었다. 부디 내 손을 거부하지 않기를 바란다.


백미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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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슬이 메일을 다 읽고 공원 동상처럼 굳어버렸다. 또다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항상 의지하던 어머니가 갑자기 죽더니 엄청난 유산이 상속됐다. 오늘은 백미 노인이란 자가 무시무시한 문자와 메일을 보냈다.


어머니처럼 죽기 싫으면 경기도 동인시에 있는 다락방 커피숍으로 오라고 경고했다.


내용이 무척이나 다급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어머니처럼 죽는다는 말이었다.


“이, 이를 어떡하지?”


윤이슬이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다 남자 친구, 이동호가 떠올랐다. 백미 노인이 이동호를 언급했다.


백미 노인은 자기와 어머니 이름뿐만 아니라 남자 친구 이름까지 다 알고 있었다.


백미 노인이 분명하게 전했다. 이동호와 같이 다락방 커피숍으로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윤이슬의 남자 친구, 이동호는 30살 직장인이었다.


유명 대기업에 다니는 미남이었다. 키가 큰 근육질 남자였다. 새하얀 얼굴에 서글서글한 눈매가 참 매력적이었다. 높은 코에 입술이 가늘었다.


그녀가 잠시 생각하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남자 친구에게 전화 걸었다.


신호음이 가자, 이동호가 전화 받았다. 그가 무척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슬아, 괜찮아? 내가 퇴근하고 집에 갈까? 분위기 좋은 데 가서 기분 풀자.”


윤이슬이 급히 답했다. 무척 떨리는 목소리였다.


“오빠, 방금 문자랑 메일이 왔는데 이게 좀 많이 이상해.”


“뭐라고? 뭐가 이상한데? … 그거 스팸 아니야? 링크를 누르면 안 돼.”


“그런 거 아니야.”


윤이슬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이동호가 깜짝 놀랐다. 그가 급히 말했다.


“아니 그 사람이 내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고?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응!”


“백미 노인이 정말 누구인지 몰라?”


“처음 듣는 이름이야.”


“엄마가 말한 적 없어?”


“들은 기억이 없어.”


이동호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어떡하려고?”


“그 사람을 … 만나고 싶어.”


“정말이야? 위험하지 않을까?”


“오빠랑 같아 가면 괜찮을 거 같아.”


“백미 노인이 … 나랑 같이 오라고 했다며.”


“응. 그렇게 적혀있어. … 오빠, 같이 갈 수 있어?”


이동호가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그럼, 같이 가야지. 우리 이슬이 가는 데는 다 따라가야지. 내가 보디가드잖아.”


“오빠는 지금 근무 중이잖아. 백미 노인이 당장 오라고 했는데 이를 어떡하지?”


“상사한테 말하고 나가면 돼. 걱정하지 마. 내가 집으로 갈게. 내 차를 타고 다락방 커피숍으로 가자. 그러면 금방 갈 수 있어.”


“다행이다. 정말 고마워. … 오빠, 혹 무술 같은 거 배웠어? 군대에서 다 배우지?”


“난 태권도 3단에 주짓수 블랙 벨트야. 검도도 검은 띠야.”


“아! 잘됐네. 알고 보니 오빠가 무술 고수였네. … 그런데 그걸 왜 여태 말하지 않았어?”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어. 네가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 입을 다물었어.”


“아! 그렇구나.”


“한 시간 뒤면 집에 도착할 거야. 외출 준비 마치고 기다리고 있어.”


“알았어, 오빠.”


윤이슬이 전화를 끊고 참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무술 고수인 남자 친구와 함께 백미 노인을 만날 수 있었다.


운명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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