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택시 한 대가 급히 도로를 달렸다. 차 안에 윤이슬이 있었다. 그녀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유일한 가족이자, 버팀목인 엄마가 위중한 상태였다. 차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택시가 속도를 높였다.
택시 기사도 손님의 상황을 눈치챘다. 제일 병원으로 가자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떨렸다.
손님한테 큰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손님은 젊은 여자였다. 대학생으로 보였다.
기사가 지름길을 찾았다. 목적지에 최대한 빨리 도착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제일 병원 앞에 택시가 도착했다. 뒷좌석 문이 활짝 열렸다. 윤이슬이 차에서 내렸다. 급한 나머지 문을 닫지도 않고 뛰어갔다.
택시 기사도 차에서 내렸다. 뒷좌석 문을 닫고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제일 병원이다.
제일 병원은 대형 종합 병원으로 나름 유명한 병원이었다. 병원 앞에는 인도와 차량 진입로가 있었다.
인도를 정신없이 달리던 윤이슬이 병원 본관을 찾았다. 본관은 15층 건물이었다. 출입문으로 달려가더니 문을 활짝 열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윤이슬이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수술실은 본관 3층이었다.
“이런!”
엘리베이터가 13층에 서 있었다.
“계단!”
윤이슬이 고개를 돌려 계단을 찾았다. 저 앞에 계단 출입구가 보였다.
다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젊은 여성이 정신없이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3층에 올라 수술실을 찾았다.
저 앞에 수술실 간판이 보였다. 안내판에 수술 환자 이름이 보였다.
‘정연지 환자 수술 중’
안내판을 보고 윤이슬의 몸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그렇게 한동안 미동도 못 했다.
그러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크게 외쳤다.
“엄마!”
윤이슬이 수술실 문으로 달려갔다. 문은 대형 유리문이었다. 성문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수술실은 외부인 출입 금지였다.
“제발! 엄마!!”
윤이슬이 문을 두드리며 오열했다.
잠시 해일처럼 밀려오는 두려움과 초조함에 몸을 달달 떨던 윤이슬이 이성을 되찾고 앉을 자리를 찾았다.
수술이 끝날 때까지 일단 기다려야 했다.
저 앞에 대기석이 있었다. 이에 빈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두 손을 모았다. 엄마가 제발 무사하기만을 신에게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애타는 시간이 흘러갔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운명의 여신이 그녀를 찾아왔다. 좋은 소식일 수도 있고 나쁜 소식일 수도 있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다.
수술실 문이 활짝 열렸다. 의사 한 명과 간호사 두 명이 밖으로 나왔다. 수술 장갑과 수술복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무척 불길한 징조였다.
윤이슬이 그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의사에게 달려가 외쳤다.
“정연지 환자는 … 괜찮나요?”
그 소리를 듣고 의사가 고개를 돌렸다. 정연지를 보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집도의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윤이슬이 그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좋은 소식이 아니라는 것을 ….
집도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윤이슬을 바라보며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호자님, 의료진은 최선을 다했지만, … 생명을 살리는 데 실패했습니다. 지혈을 막고 상처를 봉합했지만,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죄송합니다.”
“네에? 뭐라고요?”
순간, 윤이슬의 하늘이 무너졌다. 블랙홀 같은 암흑이 다시 눈앞에 펼쳐졌다.
“마, 말도 안 돼, 그럴 리 없어!”
윤이슬이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져 그녀의 머리를 가차 없이 내리친 거 같았다.
언제나 함께했던 엄마가 오늘 그녀의 곁을 떠났다. 그것도 아무런 말도 없이 ….
“아, 아니야. 그, 그럴 리 없어. 이거 말이 안 돼 …. 엄마가 죽다니, 나를 버려두고 죽다니 …. 그럴 리 없어.”
윤이슬이 현실을 부정했다. 집도의와 간호사들이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집도의가 크게 숨을 내쉬고 걸음을 옮겼다. 윤이슬을 스쳐 지나갔다. 얼굴에 무력감이 느껴졌다. 한 생명을 살리지 못한 자책감이 그를 잠식했다.
간호사 한 명도 그 뒤를 따랐다. 마치 죄인인 듯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갔다.
졸지에 엄마를 잃은 딸의 무릎이 팍 꺾였다. 맥없이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보호자님!”
남은 간호사가 윤이슬의 팔을 잡았다. 윤이슬의 팔뚝이 붉어졌다. 피가 묻었다. 엄마가 흘린 피였다.
간호사가 말했다. 간곡한 목소리였다.
“보호자님, 어떻게든 힘을 내셔야 합니다.”
“…….”
윤이슬이 아무런 답도 못 했다. 정신이 멍해져 입만 마구 떨었다. 경련이 일어났다.
“아! 이런!”
간호사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슬픔을 참았다. 한 생명이 비참하게 죽자, 그녀의 딸이 좌절했다.
비통함이 수술실 앞에 가득했다.
하늘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린 사람과 이를 가엽게 여기는 사람이 수술실 앞에 있었다.
간호사가 슬픔을 참고 입을 열었다. 전할 게 있는 거 같았다.
“보호자님, … 정연지 환자분이 죽기 전에 남긴 게 있습니다.
임종 직전, 환자분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떨리는 손을 들더니 뭔가를 그리셨습니다. 이후 숨을 거두셨습니다.”
“네에?”
어머니가 남긴 게 있다는 말에 윤이슬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는 엄마가 유언과 같았다. 그녀가 급히 말했다.
“뭘 그리셨다고요? 그게 대체 뭐죠?”
“붉은 동그라미였어요. 피 묻은 손가락으로 들더니 시트에다 붉은 동그라미를 그리고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 순간, 모든 힘을 자아내서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그 모습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유족한테 남기는 메시지 같습니다.”
“붉은 동그라미라고요? 정말 붉은 동그라미였어요?”
“네, 동그라미를 그리셨습니다. 피로 그리셔서 동그라미가 붉었어요.”
“그걸 제가 볼 수 있을까요?”
“외부인은 수술실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 제가 사진을 찍어서 보여드릴까요?”
“간호사님, 제발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간호사가 수술실로 다시 들어갔다.
윤이슬의 눈동자가 바람의 촛불처럼 마구 흔들거렸다. 붉은 동그라미라는 말에 뭔가를 아는 듯했다.
5분 후
수술실에서 간호사가 나왔다. 윤이슬에게 사진을 보여줬다.
간호사의 말대로 피 묻은 손가락으로 그린 붉은 동그라미였다. 하얀 시트에 붉은 동그라미가 선명하게 보였다.
붉은 동그라미를 자세히 보던 윤이슬이 깜짝 놀랐다. 그 의미를 아는 듯했다. 머릿속에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한 달 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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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모임에 갔다가 올게. 저녁은 알아서 챙겨 먹어.”
“붉은 원을 말하는 거야?”
“어! …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어제, 물 먹으러 가다가 엄마가 통화하는 걸 엿들었어. 붉은 원에서 부른다고 했잖아.”
“아, 그렇구나.”
“그런데 붉은 원은 뭐 하는 데야?”
“아, 거기는 … 프랑스 자수 모임이야. 동호회야.”
“붉은 원이 프랑스 자수 동호회 이름이구나. 그러면 붉은 원은 자수로 만든 붉은 원이겠네.”
“그렇지. 역시 우리 딸은 눈치가 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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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원!”
윤이슬이 몸을 떨었다. 엄마가 죽기 전, 마지막 힘을 자아내서 그린 붉은 동그라미는 프랑스 자수 모임, 붉은 원을 말하는 거 같았다.
“엄마가 붉은 원을 왜 그렸지? 마지막으로 남긴 거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 텐데? 그게 대체 뭐지?”
윤이슬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프랑스 자수 모임, 붉은 원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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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지가 죽은 후 곧바로 장례 절차가 진행됐다. 제일 병원 별관 장례식장에서 정연지 상이 치러졌다.
빈소를 차리자, 정연지 지인과 친구들이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중에 윤이슬이 아는 사람도 있었다. 엄마 직장 동료인 보험 설계사들이었다. 그들이 윤이슬의 두 손을 꼭 붙잡고 위로했다.
“이슬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니. 엄마가 이렇게 황망하게 죽다니!”
“흑!”
윤이슬이 가까스로 눈물을 참았다. 엄마가 죽었다고 계속 울 수만은 없었다.
하늘나라로 올라간 엄마가 자기를 내려다볼 것만 같았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엄마가 죽었다고 맥을 놓으면,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땅을 치며 구슬피 울 것만 같았다. 이에 눈물을 꾹 참았다.
그녀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이를 악물었다. 어금니와 앞니가 몽땅 깨질 거 같았지만, 참아야만 했다.
밤이 되자, 많은 사람이 갑자기 몰려들었다. 40명이 넘었다. 윤이슬이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갑자기 모여든 조문객들은 모두 검은색 정장을 입었다. 딱 봐도 최고급 제품이었다. 윤이 반질반질했고 소재가 가벼웠다.
그들이 차례대로 상주인 윤이슬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하얀 백합을 정연지 빈소에 바쳤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장례식장을 떠났다.
그들 중 상주인 윤이슬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식당에서 식사할 법했지만, 식사하는 사람도 없었다.
자정에 가까워지자, 장례식장이 한산해졌다.
조문객이 더는 없었다.
윤이슬은 무릎을 꿇은 채 빈소 앞에 있었다. 엄마 곁을 지키며 슬픔을 참았다. 엄마 시신은 화장할 예정이었다. 언제나 함께 한 엄마의 육신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생각에 슬픔이 다시 몰려왔다.
그렇게 비통함에 잠겨있을 때
윤이슬 친구인 장혜림이 다가왔다. 윤이슬과 장혜림은 같은 과 동기였다. 자수를 같이하는 절친이었다.
장혜림은 강의실에서 윤이슬과 함께 자수하다가 윤이슬의 비보를 옆에서 들었다.
“이슬아!”
윤이슬이 고개를 들었다. 친구 장혜림이 뭔가가 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친구가 침을 꿀컥 삼켰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슬아, 부조금 액수가 엄청 나!”
“뭐라고?”
윤이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부조금은 장혜림이 담당했다. 그녀는 자정쯤 부조금을 확인했다. 그러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사실을 상주에게 알려야 했다.
장혜림이 들고 있던 방명록을 윤이슬에게 건넸다. 방명록에는 조문객 이름뿐만 아니라 부조금 액수도 적혀 있었다.
“확인해봐.”
윤이슬이 방명록을 펼쳤다. 첫 장에 적힌 부조금은 놀라운 액수가 아니었다.
적게는 10만 원이었고 많게는 20만 원이었다.
윤이슬이 고개를 들어 친구를 봤다. 친구가 페이지를 계속 넘기라고 손짓했다.
“알았어.”
윤이슬이 페이지를 계속 넘겼다. 그러자 눈이 점점 커졌다. 부조금 액수가 갑자기 커지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500만 원이 등장하더니 1,000만 원이 등장했다. 2,000만 원도 있었다.
“이천 만 원!”
윤이슬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장혜림이 놀라움이 가시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확인해보니 제일 큰 금액이 삼천 만 원이야. 엄마가 보험 설계사라고 했잖아.
보험 설계사가 이렇게 큰돈을 부조금을 받는다고? 우리 아빠가 말했어. 부조금으로 10만 원만 낸다고 … 그게 평균이라고 했어.
혹 네 엄마가 재벌이었던 거 아니야? 넌 재벌 딸이고! 부조금이 지금 수억이야.”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윤이슬이 당혹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 섬뜩함을 느꼈다.
엄마는 분명 보험 설계사였다. 설계사 중 돈을 많이 버는 판매왕도 아니었다. 실적이 평범하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엄청난 액수의 부조금이 들어왔다.
그동안 모녀가 부족함 없이 살기를 했지만, 그들이 사는 집은 평범한 18평 빌라였다. 역세권도 아니었다.
분명 뭔가가 있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액의 부조금, 그리고 붉은 원.
윤이슬이 혼란스러운 듯,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때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누가 장례식장으로 들어왔다. 건장한 청년이었고 뛰어난 미남이었다. 그가 윤이슬을 보고 외쳤다.
“이슬아! 괜찮은 거야? 오빠가 늦게 와서 미안해. 출장 중이었어. 비행기 타고 오느라 많이 늦었어.”
“오빠!”
윤이슬이 크게 외치고 남자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품에 꼭 안겼다. 그녀가 흐느끼며 말했다. 어깨가 무척 흔들거렸다.
“오빠, … 엄마가 죽었어. 나 어떡해!”
남자가 윤이슬의 등을 두드리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이슬아. 오빠가 있잖아. 오빠가 이슬이를 지켜줄게. 어머님이 돌아가셨지만. 내가 있잖아. 오빠만 믿어. 어려운 일은 내가 다 할게.”
“오빠!!”
윤이슬이 남자를 더욱 꼭 껴안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장혜림이 두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청년은 윤이슬의 남자 친구였다. 남자 친구가 실의에 빠진 여자 친구를 위로하고 꼭 안아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