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윤이슬이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작은 커피숍을 둘러봤다. 손님은 단 한 명뿐이었다. 오른쪽 구석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녀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손님을 주목했다. 왜소한 노인이었다. 그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얼굴에 새하얀 게 두 개 있었다.
새하얀 눈썹이 눈에 들어왔다. 백미(白眉)였다.
“배, 백미 노인!”
윤이슬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다급한 문자와 메일을 보낸 백미 노인이 실제로 다락방 커피숍에 있었다.
백미 노인은 70대 중반 남자였다. 허연 머리에 이마가 넓었다. 키가 작고 매우 말랐다. 하얀색 아웃 도어를 입었다. 마치 산속에서 도를 닦는 도인 같았다.
광대뼈가 도드라지고 뺨이 홀쭉했다. 그때 광채가 반짝거렸다. 작은 눈이 빛났다.
한눈에 보기에도 남다른 노인이었다. 어두컴컴한 조명 속에서 흰색 눈썹이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진짜로 있구나!”
이동호도 백미 노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긴장감을 느낀 듯 침을 꿀컥 삼켰다.
백미 노인이 문 앞에 서 있는 커플을 바라봤다. 반갑다는 듯 씩 웃더니 커피잔을 들더니 커피를 쭉 들이마셨다.
“휴우~!”
이동호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가 여자 친구에게 속삭였다.
“이슬아, 저 사람 눈썹이 새하얀 게 … 문자를 보낸 백미 노인 같아.”
윤이슬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떡였다. 그녀가 보기에도 커피를 마시는 노인은 백미 노인 맞았다.
다락방 커피숍에 다른 손님은 없었다. 손님은 단 한 명만 있었고 그 손님의 눈썹이 백설처럼 새하얬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당혹감과 놀라움, 두려움의 시간이 지나갔다.
손님 둘이 문 앞에 가만히 서 있자, 주인장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녀가 말했다.
“어서 자리에 앉으세요, 손님.”
무척 친절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커플을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가만히 서 있었다.
“흐흐흐!”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백미 노인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그가 한 손을 들었다. 커플 보고 어서 오라는 듯, 손짓했다.
윤이슬과 이동호가 서로를 쳐다봤다. 고개를 끄떡이더니 걸음을 옮겼다.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렸다.
둘이 노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윤이슬의 입술이 떨렸다. 그 모습을 보고 이동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어르신 … 윤이슬한테 문자와 메일을 보낸 백미 노인이 맞나요?”
백미 노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낭랑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내가 백미 노인이다. 너희들이 윤이슬과 이동호구나. 만나서 반갑다. 어서 자리에 앉아라.”
백미 노인의 말에 윤이슬과 이동호가 자리에 앉았다. 백미 노인이 이동호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 윤이슬의 남자 친구 이동호인가?”
“네, 맞습니다. 제가 이동호입니다. 그런데 저를 어떻게 아시죠? 저는 어르신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동호가 무척 궁금한 표정으로 답했다.
백미 노인이 즐거운 표정으로 답했다.
“흐흐흐! 다 아는 수가 있지.”
이동호가 입술에 침을 묻혔다. 침을 여러 번 묻히고 말을 이었다.
“어르신, 이슬이한테 할 말이 있다고 하셨죠? 어머님을 죽인 자가 누구인지 안다고 하셨는데 … 사실인가요?”
“그럼, 잘 알고 있지.”
“그렇군요.”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주인장이 메뉴판을 들고 왔다.
“주문하시죠. 손님.”
윤이슬이 메뉴판을 받았다. 둘이 콜드 블루를 시켰다. 주인장이 주문을 받고 커피 머신을 향해 걸어갔다.
또각또각 발소리가 커피숍에 울렸다.
주인장 발소리가 커피 머신 앞에서 멈췄을 때 갑자기 어두워졌다. 창문으로 보이는 밖이 어두컴컴했다. 두꺼운 먹구름이 햇살을 가렸다.
“흐흐흐!”
웃음소리가 들렸다. 백미 노인이 이 상황이 재미있는 듯 연신 웃어댔다. 그러다 이동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자네 … 이슬이를 사랑하나?”
“네에?”
이동호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주춤했다.
백미 노인이 괘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넌 이슬이를 사랑하지 않아 … 넌 미남계를 썼어. 교활한 놈. 아주 야비한 새끼!”
“뭐라고요?”
백미 노인의 말에 이동호가 깜짝 놀랐다.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변했다. 그 모습을 보고 윤이슬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백미 노인이 갑자기 이동호를 질책했다.
이동호가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급히 윤이슬에게 말했다.
“이슬아, 화장실 갔다 올게.”
이동호가 고개를 돌리며 화장실을 찾았다. 그러자 주인장이 출입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밖으로 나가셔서 오른쪽 건물로 들어가세요. 거기에 있는 1층 화장실을 쓰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이동호가 서둘러 답을 하고 걸음을 옮겼다. 무척 당황한 모습이었다.
백미 노인이 이동호의 뒤통수를 보며 크게 외쳤다.
“이동호, 넌 나를 잘 알고 있어. 그런데도 모르는 척을 해? 연기를 참 잘하는구나. 살모사가 그렇게 시키더냐?”
이동호가 대꾸하지 않았다. 급한 걸음으로 출입문을 열더니 밖으로 나갔다. 무척 서두르는 게 분명했다.
10초 후 콜드 블루, 커피 두 잔이 나왔다.
윤이슬이 덜덜 떠는 손으로 커피잔을 잡았다.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백미 노인과 남자 친구가 대립했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백미 노인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아까 한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이죠? 동호씨가 절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그렇지. 아주 정확해.”
백미 노인이 윤이슬을 보며 참 안 됐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앞에 젊은 여자가 있었다. 어머니를 불시에 잃고 남자 친구를 믿고 의지했다. 그게 소용없는 짓이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할아버지,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지금 너무나도 기분이 나빠요! 동호씨는 좋은 사람이에요. 동호씨를 모함하지 마세요.”
“이슬아, 곧 진상을 알게 될 거야.”
“진상이라고요?”
“응!”
진상이라는 말에 윤이슬이 멈칫했다.
그녀가 이 자리에 나온 건 진상을 알기 위해서였다. 어머니 죽음의 진상을 알려고 여기에 왔다.
“휴우~!”
윤이슬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긴장감에 겨드랑이가 축축해졌다. 타오르는 긴장감을 달래려는 듯 커피잔을 들어서 쭉 들이켰다. 커피를 반쯤 마시고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메일에 … 엄마를 죽인 자를 안다고 하셨죠? 그 사람이 대체 누구죠?”
“그들은 붉은 원이야.”
“붉은 원!”
붉은 원이라는 말에 윤이슬이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있어 붉은 원은 너무나도 불길했다. 한 달 전, 엄마가 말했었다. 붉은 원은 프랑스 자수 모임 동호회라고 …. 그런데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거 같았다.
붉은 원은 엄마는 남긴 유언과 같았다. 엄마는 죽기 전, 마지막 힘을 다해 피 묻은 손가락을 들었다. 하얀 침대 시트에 붉은 원을 그리고 죽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윤이슬이 당혹감에 굳어버렸을 때
백미 노인이 커피잔을 들었다. 그가 커피를 말끔히 다 마시고 입을 열었다.
“이슬아, 진상을 알고 싶으면 … 이 자리에서 내 제자가 돼라!”
“네에? 지금 뭐라고 하셨죠?”
“네 어머니, 정연지는 … 사실 내 제자였다. 일명 황금새라 불렸지. 황금알을 낳는 새였어. 손기술이 신의 경지에 달해서 신이 내린 얼굴을 만들었지.
스승인 나를 뛰어넘었어. 청출어람이야.”
윤이슬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생각했다.
‘엄마가 황금알을 낳는 황금새라고? 신이 내린 얼굴을 만들었다고?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윤이슬이 고개를 흔들었다. 백미 노인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모두 처음 듣는 말이었다.
“할아버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
윤이슬을 말을 하다가 갑자기 멈칫했다. 엄마가 남긴 거액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거금이었다.
‘엄마가 황금알을 낳았다고 … 그래서 300억을 번 건가?
엄마한테 … 비밀이 있었던 게 분명해. 300억을 벌었지만, 철저히 이를 숨겼어. 엄마는 분명 보통 사람이 아니었어.
이 사람 말대로 엄마가 황금새였던 건가? 그런데 그게 대체 뭐지?’
윤이슬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타올랐다. 까맣게 몰랐던 엄마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보험 설계사도 사업가도 아니었다. 남몰래 비밀스러운 일을 했던 게 분명했다.
그 일이 불법적인 일일 수도 있었다. 엄마가 범법자라는 생각이 들자, 윤이슬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윤이슬의 얼굴을 바라보던 백미 노인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슬아, 내 제자가 돼라. 그것만이 네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이 자리에서 죽는다.”
백미 노인이 말을 마치고 두 눈을 꼭 감았다. 더는 할 말이 없는 거 같았다.
“이, 이게 대체?”
윤이슬이 어쩔 줄 몰라 했다. 앞에 있는 백미 노인이 뜬금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 제자가 되라고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는다고 반협박을 했다.
‘이를 어떡하지? 그나저나 오빠는 왜 오지 않지? 오빠가 옆에 있어야 하는데 …’
윤이슬이 답을 하지 못하고 식은땀만 뻘뻘 흘렸다.
1분이 지났다.
윤이슬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정을 내리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음!”
백미 노인이 두 눈을 떴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를 악물었다. 비어있는 커피잔을 확인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왔군.”
“네?”
윤이슬이 그 말을 듣고 출입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동호가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때 매콤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출입문 쪽에서 풍기는 냄새였다.
“어? 이 냄새는?”
윤이슬이 냄새를 맡고 깜짝 놀랐다. 뭔가가 타는 냄새였다. 무척 지독했다. 그녀가 출입문을 자세히 살폈다.
“어!”
출입문에서 뻘건 게 보였다. 불길이 치솟았다.
불이었다. 다락방 커피숍 출입문에서 불이 났다.
화아악!
불길이 치솟았다. 검은 연기도 올라왔다. 붉은 불과 검은 연기가 다락방 커피숍을 덮쳤다.
“헉!”
깜짝 놀란 윤이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남자 친구 이동호가 돌아온 게 아니라, 무시무시한 불길이 그녀를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