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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탐정 유강인 19_06_불타는 커피숍과 결투

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by woodolee

조리대에 서 있던 주인장이 서둘러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사태를 파악하고 소리쳤다.


“지금 불이 났어요. 어서 빨리 피해야 해요! 조리실 뒤쪽에 문이 있어요. 어서!”


주인장이 말을 마치고 뒷문으로 달려갔다.


윤이슬도 주인장을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백미 노인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윤이슬이 백미 노인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불이 났어요. 어서 피해야 해요. 급해요!”


백미 노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대답 대신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호탕한 웃음소리가 작은 커피숍에서 울렸다.


현재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백미 노인이 여유를 부리고 딴청을 피웠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윤이슬이 백미 노인에게 다시 말했다.


“할아버지, 지금 뭐 하세요! 어서 피해야 해요. 불이 났어요. 어서 뒷문으로 도망쳐야 해요!”


백미 노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가 크게 호통쳤다.


“이슬아, 어서 자리에 앉아!”


“네에?”


윤이슬이 호통에 놀란 나머지 주춤했다.


백미 노인이 고개를 돌렸다. 출입문 틈으로 스멀스멀 들어오는 검은 연기를 매섭게 노려봤다.


화재에서 불보다 무서운 건 유독 가스였다. 유독 가스를 조금이라도 들이마시면 그 자리에서 실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위험한 유독 가스가 검은 연기 속에 있었다. 검은 연기는 죽음의 전령과 같았다. 전령을 맞이한 순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어서요!!”


윤이슬이 정신 차리고 다급하게 외쳤다. 그 외침에도 백미 노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검은 연기가 출입문을 넘어서 테이블 위로 올라탔다. 출입문 쪽 테이블을 점령하더니 구석 자리로 향했다.


마치 목표가 있는 거 같았다. 윤이슬과 백미 노인을 노리는 거 같았다.


“아! 큰일이다!!”


점점 다가오는 검은 연기를 보고 윤이슬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가 뛰기 시작했다. 백미 노인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카운터와 커피머신을 지나 뒷문으로 향했다.


주인장은 이미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윤이슬이 뒷문 앞에 다다랐을 때



“악!”



갑자기 커다란 비명이 들렸다. 뒷문이 활짝 열리더니 주인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피를 철철 흘리며 커피숍 안으로 들어왔다. 오른팔과 어깨에 깊은 상처가 있었다.


바닥에 선혈이 뚝뚝 떨어졌다.


“으으으~!”


주인장이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헉!”


윤이슬이 깜짝 놀랐다. 화재에 이어 주인장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주인장이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눈에 공포심이 가득했다.


윤이슬이 서둘러 뒷문을 살폈다.


뒷문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남자 세 명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둘과 남자 친구 이동호였다.


화장실에 간다던 이동호가 난데없이 뒷문에서 등장했다.


“흐흐흐!”


곧 비열한 웃음 소리가 들렸다.


이동호와 블랙맨이 윤이슬을 노려봤다. 이동호가 씩 웃더니 윤이슬한테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그런데 손에 뭔가가 번쩍였다.


그건 긴 칼이었다. 칼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칼에서 떨어진 선혈이 바닥을 적셨다. 주인장의 피가 분명했다. 그가 말했다.


“어서 와 이슬아. 너도 여기에서 죽어야겠다. 네 어머니처럼 저세상으로 가야겠다.

전설의 황금새가 죽었으니 그 새끼도 죽는 건 당연한 일이지.”


“뭐라고?”


윤이슬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가 뒷걸음쳤다. 앞과 뒤가 말 그대로 사지(死地)였다.


뒤에는 검은 연기가 있었고 앞에는 다정했던 남자 친구가 시퍼런 칼을 들고 서 있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윤이슬이 남자 친구를 보면서 치를 떨었다. 머릿속에 남자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그가 자주 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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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넌 너무 이뻐. 무엇보다 소중해. 정말 사랑해.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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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달콤한 말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잘 생겼고 누구보다 다정했다.


백미 노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슬아. 이제야 이동호, 저 파렴치한 놈의 정체를 알아챘냐? 놈은 정체는 살모사의 부하다. 저 세 놈 다 살모사 패거리다. 살모사 새끼들이지.”


“흑!”


윤이슬이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피눈물이었다. 생사의 기로에서 배신까지 당했다.


이동호의 눈에서 섬뜩한 살기가 보였다. 그가 어머니를 해친 게 분명했다. 차로 받아버리고 칼로 찔렀을 게 분명했다.


백미 노인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검은 연기가 이제 지척이었다. 그가 윤이슬에게 외쳤다.


“어서 답해라. 내 제자가 될 거냐? 아니면 여기서 같이 죽을 거냐? 모든 건 너에게 달렸다.

삶과 죽음은 바로 이 순간이다. 결코, 피할 수 없다.”


“으으으~!”


윤이슬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숨 막히는 검은 연기가 그녀 뒤로 다가왔다. 생사의 기로에 선 그녀가 이를 악물고 크게 외쳤다.


“할게요! 제자가 될게요. 엄마처럼 ….”


“그럼, 좋다, 나를 따라라!”


백미 노인이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렸다. 70대 중반 나이였지만, 그는 무척 민첩했다. 젊은 사람처럼 움직였다.


그가 뒷문을 향해 달렸다. 그 뒤를 윤이슬이 정신없이 따랐다.


“흐흐흐~!”


이동호가 입맛을 다셨다. 그가 칼을 높이 쳐들었다. 블랙맨 둘도 행동을 같이했다. 그들의 손에도 칼이 있었다.


3대 1의 싸움이었다. 백미 노인 혼자 장정 세 명과 싸워야 했다. 백미 노인은 체격이 볼품없었다. 키가 작고 왜소했다. 싸움이 될 턱이 없었다.


번쩍이는 세 개의 칼날을 보고 윤이슬이 눈을 꼭 감았다. 여기에서 죽는구나! 하며 엄마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엄마! 제발!!”


백미 노인이 이를 악물었다. 눈빛이 무섭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가 크게 외쳤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


“날 우습게 보지 마라! 내 솜씨는 아직도 쓸만해!”


이윽고 오른손을 품에 넣었다. 뭔가를 재빨리 꺼냈다.


그건 반짝이는 물체였다. 칼날이 번적였다.


백미 노인도 칼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그 칼은 작은 칼, 메스였다. 수술에 사용하는 날카로운 칼이었다.


번쩍이는 메스를 보고 이동호가 깜짝 놀랐다. 그가 외쳤다.


“백미 노인! 그 명성이 어디 가지 않았구나!”


“야아!”


이동호가 고함을 지르며 백미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블랙맨 둘도 그 뒤를 이었다.


“죽어라!!”


순식간에 격전이 벌어졌다. 백미 노인과 살모사 셋이 칼을 휘둘렀다. 어둠 속에서 칼날의 광채가 번쩍였다.


무시무시한 섬광이 허공에서 일었다.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


그때 광채가 번쩍이더니 호를 날카롭게 갈랐다. 전광석화 같은 솜씨였다.


“악!”


“윽!”


살모사 셋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백미 노인이 셋을 제압했다. 메스가 번개처럼 허공을 가르더니 셋의 오른팔을 갈랐다.


셋이 오른팔을 부여잡고 주춤했다. 백미 노인이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크게 외쳤다.


“이때다! 어서!!”


드디어 탈출구를 확보했다. 뒷문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윤이슬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때 검은 연기가 그녀를 덮쳤다. 죽음의 연기가 오른쪽 귓불을 타고 코로 향했다.


“숨을 참고 뛰어!”


백미 노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윤이슬이 서둘러 코와 입을 닫았다. 그리고 뒷문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죽음의 커피숍에서 빠져나왔다.


뒤이어 백미 노인도 따라 나왔다. 둘이 달리기 시작했다.



콰르르르!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커피숍 지붕에 불이 붙었다. 엄청난 화염이 지붕을 뒤덮었다. 지붕이 곧 무너질 것만 같았다.


“어서, 저 차로!”


백미 노인이 저 앞에 있는 차를 가리켰다. 하얀색 밴이었다. 매우 오래된 차였다. 흰색이 누렇게 변했고 보닛을 비롯해 여기저기가 찌그러졌다.


윤이슬이 백미 노인을 따라서 하얀색 밴을 향해 달려갔다.



우르르쾅!



커피숍 지붕이 속절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붉은 불과 검은 연기가 하늘로 용솟음쳤다. 지붕이 폭삭 무너졌다.


“으으으!”


신음이 들리더니 한 사람이 잔해 속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커피숍 주인이었다. 지붕이 무너지기 직전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녀가 팔과 어깨에 피를 철철 흘리며 제발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제발!!”


대로에 큰 변이 생겼다. 멀쩡했던 커피숍이 무너져내렸다. 큰불이 일었고 검은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불이다!”


행인들이 크게 외쳤다. 너도나도 119에 신고했다.


오늘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맑은 5월이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지저분한 하얀색 밴에 시동이 걸렸다. 차가 움직이더니 대로로 들어갔다.


그러자 커피숍 근처에 주차한 다른 차도 움직였다. 검은색 밴이었다. 고급 차였고 새 차였다. 먼지가 하나도 없었다.


검은색 밴이 하얀색 밴을 뒤쫓기 시작했다.


핸들을 돌리던 백미 노인이 사이드 미러로 검은색 밴을 확인했다.


“젠장!”


그가 이를 악다물더니 힘껏 가속 페달을 밟았다.


윤이슬은 뒷좌석에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저승사자와 같은 검은색 밴이 그녀를 바짝 뒤쫓았다.


다시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흐흐흐! 한번 해보자. 오랜만에 운전 솜씨를 발휘해 볼까나.”


백미 노인이 실실 웃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고 윤이슬에 말했다.


“이슬아, 걱정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내 제자다. 제자를 둘 다 잃을 수는 없다. 네 엄마를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윤이슬이 벌벌 떨었다.


백미 노인이 다시 앞을 바라봤다. 그가 핸들을 꽉 잡고 외쳤다.


“이제부터 윤이슬, 네가 황금새다. 전설의 황금새, 정연지의 뒤를 잇는다.

너는 고고한 학을 닮았으니 … 이제부터 너를 금학(金鶴)이라고 부르마.

네 엄마가 나한테 말했었다. 딸이 자기보다 실력이 좋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 피가 어디 가지 않았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딸은 다른 일을 해야 한다고 너를 항상 걱정했다, 나도 네 엄마의 말을 따르고 싶지만, 이젠 어쩔 수 없다.

안전벨트를 어서 매라! 이제부터는 광란의 질주다! 우리 앞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흑!”


윤이슬의 아랫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분노가 서린 앞니가 아랫입술을 베고 말았다. 마치 칼날과 같았다.


그녀가 안전벨트를 맸다.


차 두 대가 대로에서 추격전을 벌였다. 6차선 도로였다. 교통 상황은 수월한 편이었다.


하얀색 밴이 차선을 이리저리 변경하며 말 그대로 광란의 질주를 벌였다. 역주행도 불사할 태도였다.


여기저기서 클랙슨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차바퀴가 미친 듯이 돌아갔다.


두 밴이 시속 100km 아니 130km 이상으로 내달렸다. 그렇게 엔진의 한계를 시험했다. 사방의 장애물을 요리조리 피하며 거침없이 내달렸다.


굉음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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