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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탐정 유강인 19_07_유강인, 불속으로 뛰어들다

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by woodolee

서울청 형사들이 인도에 하나둘씩 모였다. 인도 옆은 대로였다. 형사 여덟 명이 한 사람을 기다렸다.


저 멀리에 흰색 세단이 보였다. 형사들이 흰색 세단을 보고 차렷 자세를 취했다.


20초 후


흰색 세단이 형사들 앞에 멈췄다. 차에서 한 사람이 내렸다.


네이비색 정장을 입은 멋쟁이 신사였다. 50대 중반 남자였다. 커다란 덩치에 후덕한 인상이었다. 눈이 가늘고 작았고 눈빛이 인자했었다.


중년 남자가 등장하자, 형사들이 일제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 중년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한 손을 들었다.


형사 선임인 이호식 형사가 앞으로 나왔다. 그가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반장님! 드디어 두더지를 생포했습니다. 놈이 머리를 내밀자, 바로 생포했습니다. 하하하!”


“그래, 수고했어. 이형사. 역시 우리 강력반이 최고야.”


멋쟁이 신사가 형사들을 칭찬했다. 그는 강력반 반장 박훈정이었다.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도 유형사가 큰일을 했다며 …. 유형사는 어디에 있지?”


박반장이 유강인을 찾았다. 그 소리를 듣고 유강인이 깜짝 놀랐다. 강력반 수장이 동료 형사 앞에서 자기를 칭찬했다. 이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동료들이 무척 부러운 눈빛으로 유강인을 바라봤다.


박훈정 반장이 다가오자, 유강인이 더 절도 있게 차려자세를 취했다. 턱을 잡아당기고 가슴을 폈다.


박훈정 반장이 유강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무척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유형사, 참 잘했어. 흉악한 연쇄살인마를 잡았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없지.

자네 덕분에 우리 강력반이 최고의 강력반이 됐어.”


“과찬이십니다. 반장님. 감사합니다.”


유강인이 박반장의 칭찬에 크게 답했다.


“반장님, 포상금이 나오겠죠?”


이호식 형사가 군침을 삼키며 박훈정 반장에게 말했다. 박반장이 고개를 끄떡였다. 당연하다는 소리였다.


반장이 고개를 끄떡이자, 형사들이 모두 기쁨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유강인을 바라봤다. 덕분에 횡재했다는 표정이었다.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때 웃음소리보다 더 큰 소리가 차도에서 들렸다. 그건 사이렌 소리였다. 무척 다급하게 울렸다.



앵앵!



사이렌 소리가 갑자기 들리자, 형사들이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 있나?”


차수호 형사가 대로를 살폈다. 저 앞에 붉은 차가 보였다. 소방차 두 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뒤에 구급차도 보였다.


“어, 불이 났나?”


차형사의 말에 다른 형사들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소방차 두 대가 형사들 앞을 지나갔다.


사이렌 소리가 무척 컸다. 상황이 다급한 게 분명했다.


“지금 탄 냄새가 나는 거 같은데 ….”


이호식 형사의 말에 형사들이 사방을 살폈다. 탄 냄새가 바람을 타고 몰려왔다. 소방차들이 달려간 방향에서 냄새가 났다.


“이런, 불이 났구나!”


유강인이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저 멀리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오른손 검지로 뭔가를 가리키며 외쳤다.


“선배님들, 저기에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요!”


형사들이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확인했다.


박훈정 반장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불이 난 모양이군. 소방차가 갔으니 잘 해결할 거야. 우리는 어서 돌아가자고.”


“알겠습니다. 반장님.”


이호식 형사가 씩씩한 목소리로 답했다.


형사들이 걸음을 옮겼다. 동료를 따라가던 유강인이 걸음을 멈췄다. 그가 고개를 돌려 불이 난 곳을 바라봤다. 그러자 차수호 형사가 말했다.


“유형사, 왜 그래? 불이 난 곳에 가고 싶어?”


“차선배님, 상황을 보고 싶습니다. 불이 난 곳이 여기에서 멀지 않아요.”


“그래. 그럼, 차 타고 가자.”


“아닙니다. 뛰어가는 게 더 빠릅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유강인이 달리자, 차형사가 자기도 모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둘은 파트너 형사였다. 한 명이 움직이자, 다른 한 명도 덩달아 움직였다.


“어라? 유형사하고 차선배님이 어디 가는 거지?”


이호식 형사와 같이 걸어가던 우동식 형사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형사가 고개를 끄떡이며 입을 열었다.


“딱 보니, 유형사가 냄새를 맡은 모양이군. 진돗개처럼.”


우형사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런 거 같네요, 선배님. 유형사가 달리 진돗개 형사겠어요? 냄새를 잘 맡는 아주 똑똑한 진돗개죠.”


“그래, 수퍼 컴퓨터를 탑재한 진돗개야.”


한편 저 멀리에서 검은 연기가 계속 피어올랐다.


유강인이 정신없이 내달렸다. 그렇게 탄 냄새와 검은 연기를 뒤쫓았다.


2분 후 저 앞에 불이 보였다. 시뻘건 불이 활활 타올랐다.


“불!”


불이 난 곳은 대로에 있는 작은 건물이었다. 소방차는 이미 도착했다. 소방관이 대형 호스를 꺼냈다.


화염 속에 간판이 보였다. 다락방 커피숍이었다.


다락방 커피숍은 연쇄 살인범 두더지가 커피를 마셨던 곳이었다. 형사들이 잠복 작전을 펼치기 전, 잠시 들렀던 곳이기도 했다.


“하필 … 여기에서 불이 나다니!”


유강인이 깜짝 놀랐다. 다락방 커피숍은 2시간 전에 들렀던 곳이었다.


불이 거침없이 타올랐다. 어서 불을 꺼야 했다.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었다.


유강인이 긴장감을 느끼고 두 눈을 크게 떴을 때 뭔가가 보였다.


화염과 연기 속에서 기어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헉! 사람이.”


유강인이 위기에 빠진 사람을 확인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형편없는 몰골로 커피숍 근처 바닥을 기어 다녔다. 바로 커피숍 주인이었다.


주인의 어깨와 팔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그녀가 기어간 자리에 피가 흥건했다. 그렇게 기어간 자취를 남겼다. 얼굴은 온통 검었다. 숯검정이 얼굴을 뒤덮었다.


“으으으! 살려주세요.”


희미하지만, 다급한 목소리를 들렸다. 유강인이 주인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갔다.


주인이 있는 곳은 위험한 곳이었다. 불길과 검은 연기가 지척이었다.


“강인아, 안 돼! 가지 마!!”


차수호 형사가 그 모습을 보고 급히 외쳤다.


유강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화재 현장으로 달려갔다. 자칫하다간 큰일이 날 수 있었다. 한 명을 구하는 게 아니라 둘 다 위험할 수 있었다.


유강인의 두 눈에 검은 연기가 뚜렷하게 보였다. 바로 죽음의 전령이었다. 이 전령을 맞이하는 순간, 기절하고 죽을 수 있었다.


어서 숨을 참아야 했다.


유강인이 숨을 꾹 참고 내달렸다.


“으으으~!”


주인이 기력이 다한 듯 두 눈을 감기 시작했다. 이제는 기어 다닐 힘도 없는 거 같았다.


그러자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검은 연기가 그녀를 향해 슬금슬금 다가왔다. 불길은 다소 멀리 있었지만, 연기는 코앞이었다


‘제발!’


유강인이 사력을 다했다. 있는 힘을 다해 주인장에게 달려갔다. 한시가 급했다.


주인의 눈에 유강인이 보였다. 그녀가 마지막 힘을 다해 한 손을 들었다. 그리고 개미 목소리로 말했다.


“사, 살려주세요!”


유강인이 주인 앞에 걸음을 멈추고 서둘러 그녀를 업었다. 검은 연기를 피해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곳은 열기가 무척이나 강했다. 달걀이 곧바로 익을 거 같았다.


유강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화상을 입을 거 같았다. 어서 빨리 이곳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헉헉!”


유강인이 거친 숨을 내쉬며 40m를 내달렸다. 여인을 업고 뛰느라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검은 연기의 마수에서 벗어나자, 겨우 숨을 돌렸다. 천만다행으로 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119 구조대가 유강인을 향해 달려왔다. 구조대원들이 유강인에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맡겠습니다. 한 생명을 구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어요.”


“맞아요. 아주 위험한 일인데 보호 장비도 없이 불길로 뛰어들다니, 정말 용감한 일입니다. 경찰에 이 사실을 알리겠습니다.”


유강인이 씩 웃고 답했다.


“경찰에 알릴 필요 없습니다. 저는 서울청 형사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한 거뿐입니다.”


“아, 형사시군요. 경찰이셨네요.”


구조대원들이 감탄한 얼굴로 유강인을 쳐다봤다. 그리고 누구라 할 거 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형사라 하더라고 목숨을 걸고 화재 현장에 뛰어들 수는 없었다. 이는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잠시 후 구조대원들이 들것에 주인을 실었다.


주인은 의식을 잃고 사지를 쭉 뻗었다. 팔과 어깨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빨리 지혈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었다.


주인이 응급조치를 받자, 유강인이 참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숨을 골랐다.


“강인아! 괜찮아?”


차수호 형사가 유강인에게 달려왔다. 그가 유강인의 옷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옷에 피가 많이 묻어 있었다. 그가 급히 말했다.


“유형사, 이 피는 대체 뭐야?”


“구조한 분이 피를 많이 흘리셨습니다.”


“그래? 대체 어디를 다쳤길래 ….”


차형사가 급히 119구급차로 달려갔다, 차 안, 이동 침대에 주인이 누워있었다.


“저는 서울청 광역범죄수사대 차수호 형사입니다. 환자 상태를 좀 볼게요.”


“네, 그러세요.”


구급대원이 답하자, 차수호 형사가 차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의 상태를 살피고 화들짝 놀랐다. 상처가 심상치 않았다.


40초 후 119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현장에서 떠났다. 두 형사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차형사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유형사, 환자 상처를 보니 날카로운 칼에 베인 거 같아. 그런데 작은 칼이 아니야. 긴 칼이야.”


“긴 칼이라고요?”


“응, 그 흔적이 분명해. 긴 칼로 환자를 공격했어. 칼에 베인 상처가 선명해.”


“긴 칼이라면, 이건 단순 화재가 아닙니다.”


“그렇겠지. 보아하니 칼 다루는 솜씨가 전문가야. 예전에 칼을 잘 다루는 조폭 놈을 잡았는데 그 솜씨하고 아주 비슷해. 놈이 일본도를 휘둘렀어.

아주 날카로운 일본도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사람을 공격했어. 그때 피해자들 몸에 길고 선명한 상처가 생겼어.”


“그렇군요.”


유강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불이 나더니 칼에 맞은 환자까지 등장했다. 환자의 상처를 살핀 결과, 전문가 솜씨가 분명했다. 이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유강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저 커피숍에서 뭔 일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여긴 우리 관할이 아니야. 여기 경찰이 수사해야 할 사안이야. … 경기도 경찰이 잘하겠지.”


“그렇겠죠.”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하지만 뭔가가 걸리는 게 있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번 사건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저도 병원으로 가야겠습니다.”


“가서 뭐 하게?”


“환자분한테 사건 자초지종을 듣고 싶습니다.”


“유형사, 여기는 우리 관할이 아니잖아. 우리는 수사에 관여할 수 없어.”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저는 환자를 구한 사람입니다. 환자한테 무슨 일 있었는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그건 가능하잖아요.”


“그렇기는 하지. 국가 기밀이 아닐 테니, 생명의 은인이 사건에 관해 물어볼 수 있지.

알았어. 내 차를 타고 어서 가자고. 내가 이곳 경찰한테 잘 말해볼게.

서울청 형사가 한 생명을 구했다고 말하면 우리를 막지는 않겠지.”


“어서 차로 갑시다.”


“그래, 어서 가자고. … 지긋지긋한 두더지를 잡고 좀 쉬나 했는데 우리 유형사 때문에 또 바쁘네. 이거.”


“형사는 바쁠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범인을 잡죠. 형사가 한가하면 둘 중의 하나입니다.

세상이 태평성대거나 아니면 범인이 활개 치는데도 모른 척하는 직무유기죠.”


“아이고, 직무유기는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소리야. 어서 가자고.”


두 형사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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